밤이 길어지는 보고서의 법칙

전략기획 팀장 일기 시즌 2 - 6편

by 초연

밤 11시 40분.

회사 불은 이미 대부분 꺼져 있었다.

하지만 전략기획팀 사무실만은 예외였다.

어두운 복도를 따라 우리 팀 자리만

섬처럼 밝게 떠 있었다.


노트북 화면에서는

PPT 37페이지가 아직도 “수정 중”이었다.

오늘이 마감이 아니라

“오늘까지는 보내달라”는 말이 더 정확한 그런 자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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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팀에서 급히 보낸 메시지가 울렸다.


“팀장님, 앞부분 가정치 수정됐습니다.

반영 부탁드립니다.”


“어디까지 바뀌었나요?”


“전부요…”


전부.

그 단어 하나에,

내 몸 안의 체력이 20%는 더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숨을 한번 길게 들이쉬고

시트들을 다시 열었다.

숫자를 하나 바꾸면

네 개의 시트가 흔들리고

그래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보고서에서 가장 잔인한 시간은

새벽이 아니라

“다시 처음부터”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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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2시 30분.

슬라이드를 넘기고 있는데

뒤쪽 자리에서 팀원의 의자가 삐걱 소리를 냈다.


“팀장님… 죄송한데 한 가지만 여쭐게요.”


그는 눈이 벌겋게 충혈돼 있었다.


“이 결론으로 밀어붙여도 될까요?

저희는 맞다고 생각하는데…

근데… 혹시 팀장님은 다르게 보세요?”


나는 잠시 화면을 보다가 말했다.


“나도 네 의견이 맞다고 생각해.

다만, ‘맞는 의견’이 항상 ‘지지받는 의견’은 아니지.”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정답을 바꾸는 게 아니라,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말의 순서와 온도를 조절하는 것이야.”


그 말을 들은 그는

조금 표정이 풀린 채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전략기획팀의 보고서는

항상 ‘진실’보다 ‘수용 가능성’을 먼저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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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 40분.

드디어 마지막 페이지까지 도달했다.

하지만 그 순간

휴대폰이 진동했다.


계열사 강팀장이었다.


“팀장님, 아직 회사예요?

피곤하시죠… 너무 늦게 가시는 거 아니에요?”


나는 타이핑하다 멈춰서

휴대폰을 잠시 쳐다봤다.


나는 답장을 짧게 썼다.


“응… 조금만 더 하면 끝나.

너한테 온 메시지가 오늘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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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슬라이드를 정리하며

오늘의 일기를 열었다.


“보고서는 밤이 가장 길다.

밤이 길다는 건,

내 판단의 무게가

오늘보다 더 무겁다는 뜻이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그래도 누군가의 메시지 한 줄 덕분에

오늘의 나는 아직 버틸 만하다.”

새벽 2시의 고요가 사무실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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