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기획 팀장 일기 시즌 2 - 8편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오후 1시 10분.
재경팀 주임 한 명이 조심스레 내 자리를 찾아왔다.
손에 든 출력물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팀장님… 이거 잠깐 봐주실 수 있을까요?”
“무슨 자료야?”
“임원 보고용인데… 부장님이 저한테 다시 써오라고 하셔서…”
출력물에는 붉은 펜으로 적힌 말이 있었다.
“이런 표현을 보고에 쓰면 안 되지. 말의 무게를 모르나?”
문제는 내용이 아니라 표현이었다.
보고에서 표현은 한 사람의 감각과 의도를 평가받는 창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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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출력물을 내려놓고 물었다.
“너 이거 쓸 때 무슨 생각이었어?”
“… 사실 그대로 쓰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래. 너는 맞았어.”
그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런데 보고는 ‘맞는 말’보다 ‘받아들여지는 말’이 더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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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펜을 잡고 문장을 하나씩 고쳐 나갔다.
원래: “비용 증가 위험이 매우 크며 현재 구조로는 대응 불가”
→ 수정: “비용 증가 요인이 존재하며 현재 구조에서는 대응 여력이 제한적일 수 있음”
원래: “지금 방향은 잘못됐음”
→ 수정: “현재 방향은 목표와 일부 괴리가 있어 조정 필요성 검토 중”
원래: “리스크 대응 미흡”
→ 수정: “리스크 완화 방안 보완 여지 존재”
그는 말했다.
“… 팀장님, 내용은 같은데 느낌이 완전히 달라요.”
“그래. 보고는 느낌을 조절하는 기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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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은… 사실 그대로 쓰면 안 되나요?”
나는 조용히 답했다.
“사실 그대로 쓰는 게 가장 좋지.
하지만 사실을 그대로 쓰면
누군가는 상처받고,
누군가는 오해하고,
누군가는 잘렸을 수도 있어.”
그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보고는 진실을 왜곡하지 않되,
그 진실이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는 방식을 찾는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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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부장에게 메시지가 왔다.
“아까 자료… 네가 손봤지?”
“예. 실무자 표현은 조금 완충했습니다.”
“고맙다. 난 애들까지 혼내고 싶진 않아서.
대신 너한테는 말해도 되잖아.”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마음이 묵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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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전, 일기에 적었다.
“오늘 나는 누군가의 말을 고쳐준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상처를 대신 받아들였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전략기획팀장은 말의 무게를 조절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무게를 대신 견디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