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기획 팀장 일기 시즌 2 - 13편
아침 9시 05분.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다.
“팀장님, 회장님께서 직접 자료 하나를 요청하셨습니다.
가능하시면 오전 중으로 부탁드린다고…”
회장이 직접 요청하는 날.
그건 단순 보고가 아니라 ‘방향 검증’이 필요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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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청 메일 제목은 간단했다.
[회장님 요청] 시장 리스크·환율·CAPEX 상관도 분석
그러나 뒤에 적힌 말이 무거웠다.
“최대한 솔직하게. 내부 버전 그대로로.”
그 말은 완충 없이 핵심만 내놓으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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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를 정리하며 나는 가장 나쁜 가정부터 다시 계산했다.
왜냐하면 회장님의 첫 질문은 대부분 이렇기 때문이다.
“이 수치, 정말 최악을 반영한 거 맞나?”
그 질문 앞에서 흔들리면 회의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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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50분. 비서실 연락.
“회장님이 자료 검토하시고 12시 30분에 잠깐 보자고 하십니다.”
점심은 없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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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30분, 회장실.
그는 내 자료를 세 번째로 보고 있었다.
“여기 변동폭… 왜 이렇게 잡았지?”
나는 준비한 답을 꺼냈다.
“작년 환율 민감도와 전방 수요 감소 시나리오를 결합한 결과—”
그러나 회장님은 말을 끊었다.
“그래서… 네 결론은 뭐지?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야 한다는 건데?”
숫자가 아니라 ‘방향’을 묻는 질문이었다.
나는 말했다.
“지금은 공격과 방어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없습니다.
속도는 줄이되, 멈추지 않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그게 네 결론이구나.
그럼 나는 그걸 믿어도 된다는 거지?”
그 말은 책임을 넘기는 말이었다.
“예. 믿으셔도 됩니다.”
그는 미묘한 숨을 내쉬었다.
“… 그래.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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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을 나서자 비서실 직원이 말했다.
“팀장님, 점심 못 드셨죠? 그래도 잘 끝난 것 같아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응. 잘 끝난 것 같긴 한데…
오늘 하루치 체력을 다 쓴 느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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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전, 일기에 적었다.
“회장이 직접 자료를 요청하는 날은
숫자를 정리하는 날이 아니라,
내 판단을 증명하는 날이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그 판단에 ‘믿어도 되냐’는 질문이 붙는 순간, 나는 오늘보다 더 무거워진 내일을 감당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