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기획 팀장 일기 시즌 2 - 15편
밤 10시 20분.
사무실엔 아무도 없었다.
내 자리 주변만 작은 섬처럼 밝아 있었다.
프린터기 팬 돌아가는 소리,
냉난방기 진동음,
키보드에 닿는 손가락 소리만 남아 있었다.
낮 동안에는 회의, 보고, 전화, 메신저가
내 생각을 계속 밀어냈다.
하지만 밤이 되면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비로소 진짜 생각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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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 속 파일들이 보였다.
‘전략기획팀장_보고_v19_최종’
‘내년사업계획_본부별 리스크정리_최종 2’
‘VAT_Risk_EarlyWarning_Final_v7’
‘최종’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믿을 수 없었다.
최종은 없다.
단지 ‘당분간 멈춘 버전’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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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팀장님, 오늘 말씀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많이 배워갑니다.”
보낸 이는 오늘 회의에서 가장 긴장했던 대리였다.
낮에는 조직의 판단과 요구, 방향성 속에서 숨이 막혔는데
밤에는 그 한 문장이 유난히 크게 다가왔다.
아, 내가 버티고 있는 이유가 이런 거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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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기획팀장은 낮엔 누구에게도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다.
모두가 방향을 묻고,
판단을 요구하고,
정답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간만큼은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에게만 묻는다.
“나는 지금 잘 가고 있는 걸까?”
“오늘의 판단은 맞았을까?”
“내일의 나는 조금 더 단단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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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05분.
노트북을 닫고 일기를 열었다.
“모두가 퇴근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오늘을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전략기획팀장은
낮에는 조직을 지키고, 밤에는 스스로를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