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덫
조직에서 가장 위험한 말 중 하나는
“저 사람은 일 잘해”라는 평가다.
처음에는 칭찬처럼 들린다.
성과를 인정받는 기분도 든다.
나 역시 그 말을 들을 때
조금은 안도했다.
‘그래도 내 가치는 증명됐구나.’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 말이
전혀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일은 더 많이 온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일이 몰려도 “너니까 맡기는 거야”
기준이 높아져도 “너라면 이 정도는 하지”
실수가 생기면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크다”
일을 잘한다는 평가는
어느 순간부터
면책이 아니라 구속이 된다.
일을 못하면 혼나고,
일을 잘하면 더 많이 떠안는다.
이 구조 안에서
‘잘함’은 보상이 아니라
의무가 된다.
괴물은
‘일 잘하는 사람’을 이렇게 사용한다.
회의에서는
그 사람을 기준으로 삼는다.
“저 사람은 했잖아요.”
“저 정도는 기본 아닌가요?”
그 말이 나오는 순간,
기준은 전체의 평균이 아니라
한 사람의 최대치가 된다.
그리고 그 최대치는
늘 같은 사람에게 요구된다.
그 사람은
불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결과를 낸다.
조용히 해결한다.
끝까지 책임진다.
이런 사람은
통제하기 너무 쉽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일을 ‘선택’ 하지 않는다.
이미 선택은 끝났고,
그에게 남은 건
수행뿐이다.
“이건 네가 제일 잘 아니까.”
“네가 해주는 게 제일 안전해.”
이 말들은
신뢰처럼 들리지만
실은 역할 고정이다.
그렇게 사람은
하나의 기능이 된다.
대체 가능한 사람이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부품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때부터 그 사람은
점점 소진되기 시작한다.
나는 한때
‘일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항상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고,
항상 문제를 정리했고,
항상 책임의 끝에 서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역할에서 벗어나려는 순간,
평가는 바로 바뀌었다.
“요즘 좀 예전 같지 않네.”
“집중력이 떨어진 것 같아.”
“관리해 줄 필요가 있겠어.”
성과는 그대로였지만
태도가 문제라는 말이 나왔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일을 잘해서 인정받은 게 아니라,
통제하기 쉬워서 선택받았다는 것을.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덫의 가장 큰 문제는
이게 스스로에게도 작동한다는 점이다.
그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내가 안 하면 일이 안 돌아가.’
‘여기서 내가 빠지면 문제 생길 거야.’
이 생각은
책임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조직이 심어준 믿음이다.
그리고 이 믿음은
사람을 쉽게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
이제 나는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나오면
한 번 더 묻는다.
그래서,
그 잘함의 대가는 무엇인가?
보상인가,
아니면 더 많은 짐인가.
존중인가,
아니면 더 단단한 역할 고정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조직은
결국
일 잘하는 사람을
가장 먼저 닳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