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의 시간

천천히라는 말

by 초연

빨간 불 앞에서

사람들은 한순간

같은 표정을 갖는다


서두르던 발도 멈추고

손에 들린 것들도 가만해진다

휴대폰 화면이 밝아졌다가

다시 꺼진다


그 짧은 정지 속에서

나는 종종 생각한다

삶은 달리는 일이 아니라

멈춤을 잘 쓰는 일이라고


초록 불이 켜지면

모두가 다시 흩어지지만

방금의 고요는

어딘가에 남아


오늘의 말을 덜 날카롭게 만들고

오늘의 선택을 덜 급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큰 결심 대신

작은 규칙 하나를 둔다


급할수록

한 번 더 멈추기


그리고 그 한 번이

하루를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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