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 쪽으로

비가 지난 자리에서

by 초연

오래 비가 머물던 자리에도

어느 날은

가벼운 빛이 먼저 내려앉는다


젖은 잎들은

금방 마르지 못해도

바람을 덜 무서워하게 되고


한 번 어두워졌던 창도

아침이 오면

조용히 제 빛을 되찾는다


사람 마음도 그런가 보다


다시는 환해지지 않을 것 같던 저녁을 지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웃게 되는 날이 있고


조심스러운 말 한마디가

무너진 마음 한쪽을

생각보다 오래 붙들어 주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완전히 괜찮아진 사람이라기보다


괜찮아지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에 더 가깝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햇살은 늘

다 마른 곳에만 먼저 닿는 것은 아니니까


중요한 건

처음으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다시 따뜻해지는 일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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