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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Apr 26. 2021

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마지막 축제를 보내며

지난주 목요일, 2021년 교향악 축제가 끝났습니다. 전국 21개의 교향악단이 하루씩, 21일 동안 밤의 오케스트라가 되어주었죠. 벌써 33년이나 된 축제가 걱정과 우려 속에서도 무사히 잘 끝나게 되어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너무 기쁘고 다행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축제 마지막 날 밤의 감상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축제의 마무리는 KBS교향악단이 나부코 오페라 서곡과 브람스 3번을 준비했고, 협연으로는 깊고 깊은 음색의 연주자 손민수 피아니스트가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 어렵다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으로요.


 연주곡인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 유명하죠.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웅장하면서도 들을 때마다 희망을 느낍니다. 가사  부분인 '가라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처럼요. 연주된 서곡 역시  마음 그대로 요약한 듯했습니다. 그건 이별의 앞둔 이의 가진 헛된 희망의 예고편이었습니다.


다음 곡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입니다. 피아노 연주 자체도 어렵고,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사이 균형 잡기도 쉽지 않습니다. 같이 살지 못한다면 서로를 죽여야 하는 그런 곡입니다.


난곡이니 만큼 연주는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부분은 잡아 먹혔고, 어느 부분은 이상하다 싶은 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손민수 피아니스트와 교향악단은 대단했습니다.


연주를 모두 마친 피아니스트는 일어서 관객에게 인사를 하며 휘청거리더군요. 제대로 살아낸다는  저렇구나 싶었습니다. 존경스럽고 부러웠습니다. 어떻게 참아내며 버티고 일어설까. 며칠이 지난 지금도 그가 사하는 모습이 선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브람스 교향곡 3번입니다. 3번의 3악장은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테마곡을 쓰이기도 해서 아마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우아하고, 부드럽고, 그리고 우울한 정서를 담아낸 곡입니다. 저도 정말 사랑하는 곡입니다. KBS교향악단의 연주 역시 중후했습니다.


브람스 교향곡 3번은 심포니 치고 특이하게도 조용하게 마무리됩니다. 특이하죠. 흔히 피날레와 함께 터져 나오는 박수갈채를 상상하잖아요. 하지만 저의 상상은 얼마나 어리석은지.


4악장을 마치자, 3초 동안 예당은 그야말로 진공이 되어 시간이 멈춘 듯했습니다.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가슴은 먹먹해지고 눈물이 흘렀습니다. 첫 이별 후 그 날처럼요. 이내 관객의 박수가 터지자, 그 소리에 숨여 오열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 앞에서 한낮 글이란 얼마나 무력한가요? 이유를 적을 수 있는 문장을 찾을 수 없네요. 그냥 사는 게 그렇잖아요. 그래요. 굳이 쓰라면 불확실한 미래, 그 속의 허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버텨야 하는 우리의 시간들, 그리고 스스로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축제는 끝났습니다. 예당을 걸어 나와 지하철 역으로 향하는 밤길에 봄바람을 맞습니다. 몰래 마스크를 벗어 뺨에도 닿아 보고요. 한참을 울고 나서 그런지 눈가에 느껴지는 작은 서늘함도 좋더군요. 기분 좋은 느낌으로 가득한 밤으로 그날을 기억합니다.




[다음주 찾아갈 연주회]

4월 27일, 양성원 피아노 리사이틀, 예술의전당

4월 29일, 모차르트 레퀴엠, 예술의 전당

5월 2일, 이국정원, 예술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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