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스마트폰은 낯설지 않았습니다. 픽셀(Pixel)과 넥서스(Nexus)라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디바이스 라인업으로 유명합니다. 넥서스 시리즈는 최소한의 성능과 운영체제 구현을 보여주기 위한 레퍼런스 기기였지만, 이후 정식 스마트폰의 이름을 받은 '픽셀' 시리즈 역시 환영 받지 못했습니다. 주요 시장인 미국에서도 3% 수준의 미미한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상태입니다. 매번 출시할 때마다 '구글의 스마트폰, 이번엔 다를까?'하며 기대를 모았지만, 애플과 삼성에 매번 밀려났습니다. 세계 IT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구글에겐 익숙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러나 구글의 칩은 낯섭니다. '텐서'는 구글이 자체 설계한 시스템온칩(SoC)의 이름입니다. 지금까지 구글의 스마트폰은 퀄컴 칩이 쓰였습니다. 구글 스마트폰의 실패(?)가 칩 때문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최근 구글은 자사의 스마트폰 라인 픽셀 시리즈에 텐서가 탑재될 것이라 밝히며, "텐서를 사용하면 우리가 항상 상상했던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텐서라는 이름은 구글 데이터 센터에 사용되는 AI 딥러닝용 반도체 TPU(Tensor Processing Unit)에서 가져왔습니다. TPU는 2018년에 구글이 인공지능(AI)과 기계학습(ML) 빠른 처리를 위해 설계된 칩으로, 하나의 서버 랙에서 100 페타플롭의 연산 능력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1페타플롭(PetaFlop)은 1초 안에 할 수 있는 1000조번 연산 처리할 수 있는 단위입니다. 다른 하드웨어 플랫폼에서는 학습하는 데 몇 주가 걸렸던 모델이 TPU에서는 몇 시간이면 수렴 단계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CPU와 GPU와 함께 같은 에너지로 더 빠르게 AI 연산 처리가 가능한 것입니다. 즉 TPU는 AI의 가속기 역할을 하는, 일명 '가속기 칩'입니다.
이를 통해 구글의 스마트폰 칩인 텐서가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 왜 구글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스마트폰을 이제야 만들 수 있다는 것인지 유추할 수 있습니다. 텐서는 스마트폰에서 AI를 활용하기 위한 칩인 셈입니다.
릭 오스테로 구글 디바이스·서비스 담당 수석 부사장은 꾸준하게 "구글은 장기적으로 하드웨어를 만들겠다"며, "컴퓨팅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항상 기술이 훨씬 더 유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구글의 새로운 스마트폰 그리고 자체 스마트폰 칩 텐서는 릭 오스테로 구상의 시작점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텐서는 새로운 스마트폰에서 이전과는 월등한 사진 및 비디오 처리 개선, 기계 학습 작업 가속화, 음성 인식 개선 등을 이뤄낼 것이라고 구글은 설명했습니다. 공개된 기능 중 하나로, 스마트폰 카메라 촬영 시 동시 이미지를 캡처해 AI 학습을 통해 화질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비디오 촬영 시에도 태양 광채 및 저조도 상황에서 손실을 줄일 것이라 설명합니다. 이는 나아가 스마트 글래스와 결합해 AR 기능에도 적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 텐서는 구글의 AI 스피커 '구글 홈' 등 다른 장치에도 장착되어 구글 어시스턴트가 이전보다 복잡한 음성 인식과 맥락적 알고리즘을 처리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입니다. 장치 간 통합 하드웨어는 장치 간의 상호 운용성을 높이니까요. 텐서는 구글 번역, 사진 촬영, 받아쓰기 등 기능 향상에도 활용될 것입니다. 어쩌면 음성 인식, 언어 번역, 데이터 분석에 이르는 일련의 기능에 대한 사용자 경험이 AI 머신러닝 가속도에 달려 있다고 한다면 왜 구글이 텐서를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릭 오스테로가 "텐서는 게임을 얼마나 빨리 할 수 있는지, CPU와 배터리 수명이 얼마나 효율적인지가 아니라, 오늘날 사람들이 어떻게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미래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하면서 만들어졌다"고 설명한 이유입니다. 나아가 "AI는 완전히 차별화될 것"이라 밝히기도 했죠.
마침 구글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북부에 하드웨어 연구개발(R&D) 센터가 포함된 신규 캠퍼스 '미드포인트'를 짓고 있다는 소식은 텐서를 고리로 하드웨어를 연결하려는 AI 구상을 증명합니다. 구글이 제출한 예비 계획에 따르면, 미드포인트에서는 구글 하드웨어와 구글 커넥티드 홈 비즈니스 '네스트' 관련 사업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구글 텐서는 오늘날 대부분의 스마트폰 칩과 마찬가지로 삼성의 5nm 제작 과정을 이용해 제작하는 옥타코어 프로세서입니다. 외신에 따르면, 엑시노스 9855 칩과 동일할 것이라 전했습니다. 엑시노스 9855 칩셋은 화이트채플(Whitechapel)이라는 코드명을 지니고 있는데, 구글 텐서 칩 역시 같은 코드명을 쓰기 때문입니다.
엑시노스 9855 칩의 성능은 삼성 갤럭시S21 시리즈에 탑재된 엑시노스 9840(엑시노스 2100) 칩과 2022년에 출시될 갤럭시S22에 탑재될 예정인 엑시노스 9925(엑시노스 2200) 칩의 중간에 위치합니다. 텐서는 3분기 중 구글 픽셀 시리즈의 픽셀6과 픽셀6 프로를 통해 공개됩니다.
이미 구글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와 지메일, 유튜브 등 구글 서비스로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거의 완전히 장악하고 있습니다. 구글은 자신들의 소프트웨어가 텐서 칩에 어울리도록 조정할 것입니다. 그리고 텐서 역시 자신이 가진 AI 특징을 강화해 점점 더 AI와 머신러닝에 적합한 소프트웨어에 반응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구글플레이 앱에서도 말이죠.
물론 아직 많은 부분이 미공개로 남아 있기에 텐서 역시, 애플의 M1 칩처럼 초기 반응은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새로운 하드웨어 생태계가 시작됐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