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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러 Sep 14. 2023

엄마라는 우선순위

화천 산천어 파크골프 대회 출전 동행기

#"대회 접수 좀 해줘"


두 달 전쯤, 엄마에게 급한 연락을 받았다. "대회 접수 좀 해줘". 화천에서 파크골프 대회가 열리는데, 접수를 인터넷으로만 받고 있으니 대신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아이폰을 쓰시면서도 웹 활용력은 거의 없는 분이다. 애플 생태계가 직관적이라는 건 IT를 몰라도 쓸 수 있다는 점이지 않을까 싶다. 나의 어머니처럼.


문제는 선착순이라는 것. 홈페이지 주소 접속부터 접수 페이지를 찾아 클릭하는 것도 힘든 마당에, 선착순이라니 마음이 급하셨을 것이다. 역시 모두 마감됐다. 어차피 취소자는 분명 생길 테니, 대기자 명단에는 넣어드렸다. 그 뒤로 대회 주최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으셨고 정식 참가자가 등록됐다. 강원도 화천이라니. 멀다 멀어.



#골프 대신 파크골프


파크골프를 재밌게 치고 계신다고 했지만, 듣기만 했을 뿐 대회까지 찾아다니실 줄은 몰랐다. 물론 운동을 잘하시는 분이다. 테니스 경력만 해도 30년이 넘을 것 같다. 젊은 적에는 테니스 동호인으로 도민체전에도 나가셨을 정도다. 하지만 워낙 힘든 운동이라 나이 드시면서 점점 멀어졌다.


다른 어른들처럼 골프를 해보시긴 했다. 하지만 너무 비싸고 운동이 되지 않는다며 취미 삼지 못하셨다. 아마 카트 타고 다니고 앞뒤 팀에 쫓기듯 쳐야 하는 환경 때문이었으리라. 아들로선 가족 동반 라운딩을 기대했지만 어쩔 수 없지.


그 뒤로 이것저것 운동 거리를 찾더니 파크골프에 정착하셨다. 파크골프는 카트 없이 걸어야 하고 생각보다 템포가 빠르다. 마침 진도 내 파크골프 구장도 생겨서 운동처럼 다니셨나 보다. 그런데 생각보다 잘 치시는 것 같다.



#60타를 치신다고요?!


그런데 정말 잘치셨다. 평균 60타 찍으신다는데, 이건 골프로 따지면 싱글 이상의 실력이다. 경쟁하는 재미도 붙이셨는지 지역 대회도 곧잘 참가하셨고 대회마다 1등을 못했다며 상금이 적다는 말씀까지도 듣게 됐다.


그런 와중에 마침 서울 올 일이 생겼고 겸사겸사 멀지만 화천도 가면 좋겠다 싶어서 대회까지 참가하신 것이다. 화천 산천어파크골프장은 1년 내내 대회가 열릴 만큼 나름 좋은 구장이라 유명한 것 같았다.


처음 생각과는 달리 서울에서 화천은 가까웠다. 집에서 서울-양양 고속도로 타고 1시간 30분 거리였다. 경기 시간인 12시이니 아침에 가기에는 조금 빠듯할 것 같아 전날 출발해 인근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왜냐면 코스 탐방도 필요했으니까.




#그냥 직선으로 가면 될 것 같은데, 꼭 그렇지도 않은


골프 치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스코어를 높이려면 자연을 이기려고 하면 안 된다. 코스 지형을 이해하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꼭 욕심내는 곳에 해저드가 있고 함정이 있다. 그렇게 타수가 계속 쌓이면 라운딩을 망친다.


이번에 보니 파크골프는 그게 전략의 핵심이었다. 멀리서 보면 평탄하게 직선으로 가면 될 것 같지만 절대 아니다. 코스의 오르막, 내리막, 경계 라인의 위치 등 코스 내 요소들이 상당히 중요했다. 인생처럼 말이다.


골프로 따지면 어프로치 이후의 그린 전략이 파크골프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았다. 특히 볼을 필드 위로 태워서 가야 되는 것이니 비거리도 골프만큼 중요하지 않았다. '어떻게 붙이느냐', '어디로 보내느냐'가 정말 중요했다.



#평소보다 과감할 필요


숙박은 춘천에서 하고 아침에 화천산천어파크골프장으로 이동했다. 가다 보니 주위에 군시설이 많이 보이고 산세가 험해진다. 새삼 38선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아침부터 내린 비로 파크골프장의 잔디는 젖어있었다. 이러면 볼이 잘 구르질 않을 것이다. 골프로 따지면 평소보다 과감하게 홀을 공략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매번 홀 앞에서 볼이 멈춰 서고 만다.


접수 등록을 마치고 보니 참가자가 상당히 많다. 종목이 종목이니만큼 선수들의 연령대가 상당히 높다. 아무래도 이 공간에서 내가 제일 어린것 같다. 잠깐이나마 일반부로 '나도 참가해 볼까' 했는데, 그러지 않길 잘한 것 같다.




기대했던 갤러리 동행은 못했다. 동호회인 대회라서 작은 걸로도 시시비비가 많은 탓인지 코스에는 선수만 들어갈 수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멀리서만 지켜봐야 하는 게 불만스러웠지만, 말 나와서 실격이라도 당할까 무서워 조심해야 했다. 골프와는 달리 스코어도 심판이 확인하고 적어준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경기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참가 선수들이 모두 한가닥 하는 고수들이라서 그런 것 같다. 기다리는 동안 오전에 끝난 남자부 결과를 보니 1등이 53타다. 언더파인 셈인데, 17개 홀에서 PAR를, 나머지 하나는 버디를 잡은 점수다. 운동 자체의 난이도를 떠나서 대단한 것 같다.



#엄마라는 우선순위


엄마는 무사히 경기를 마쳤다. 결과는 70타. 아무래도 결선 진출은 힘들 것 같다. 처음 온 구장, 비 오는 구장, 비거리 문제로 고전했다. 아들 입장에서 비 오는 잔디밭이라 미끄러지지 않으실지 걱정했는데, 엄마는 경기에 대한 불만이 더 크다. "과감하게 쳤어야 했는데!"


대회 1등 상금은 3천만 원. 혹시나 했지만 역시 로또 같은 것이었나 보다. 세상에 고수는 많으니까.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힘들었지만(링크) 엄마의 화천 대회 출전 동행기는 이렇게 잘 마무리됐다.


돌아오는 내내 엄마는 내게 고마움을 전했다. 이렇게 멀리 와서 좋은 파트골프장에서 칠 수 있었던 건 아들 덕이라고. 정신없었던 내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예전이었다면 나는 일이 있었을 것이고, 미팅이 있었을 것이고, 바빴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와 함께하질 못했을 것이다.


우선순위에 대해 고민해 본다.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우선순위로 삼고 살았을까? 그래서 행복했을까? 행복했다면, 또 행복하지 않았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지금껏 나는 가족을, 엄마를, 아빠를 내 삶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뤄왔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고, '나중에 잘해드리자'며 헛된 다짐을 했겠지. 그래. '나중에'라도 뭔가 있긴 있을 것이다. 안마의자건, 돈이건 엄마에게 드릴 뭐든. 하지만 그것들이 엄마와 함께 찍은 몇 장의 사진과 1박 2일을 기억하는 내 마음보다 소중할 수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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