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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Aug 24. 2024

20년 만에 뺀 발바닥 티눈·사마귀

"이렇게 큰 게 20년 동안 제 발바닥 안에 있었다고요?"


20년 묵은 양발바닥 티눈과 사마귀를 뺐다.


겉보기에 한쪽은 새끼손가락 손톱 만큼 컸고, 다른 한쪽은 그 절반만 했다. 생활에 지장이 있을 만큼 통증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까슬하고 걸리적거리는 그것은 발바닥을 만질 때마다 신경 쓰였다.


언제 생겨났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가장 높은 확률로 군대에서 생긴 것일 게다. 한 달 간격으로 100km 정도 행군을 했던 적이 있는데, 귀찮다고 발관리를 하지 않았던 탓이다.


그래도 그때는 작았겠지만, 이후로 미뤄두고, 두고, 두고, 두고, 둔 게 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의사 말로는 처음에는 사마귀였다가 걷다 보니 티눈까지 겹쳐진 것이라 했다.


커졌다기보다는 깊어졌다는 말이 맞겠다. 치료 후에 의사가 보여준 '티눈+사마귀' 크기는 딱 타이레놀 절반이었다. 의사도 이 정도면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속이 후련하면서도 슬펐다. 치료를 위해 맞는 마취주사는 정말 아팠지만, 이 정도 빼려면 그 정도는 당연하다 느낄 정도였다.


그것이 발바닥에 박혀 있던 시간들을 생각해 보면 뭔가를 열심히 하고 살아왔지만 뭐 하나 이룬 게 없다. 그 시간에 대한 후회와 원망은 저 티눈·사마귀에 대치됐다. 기분이 좋다. 빼버렸다는 것 자체로 다른 사람이 될 것 같다.


누군가 말했다.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머무는 공간을 바꾸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쓰는 시간을 달리 해야 한다고.


그래서 티눈·사마귀 뺀 기념으로 다짐했다.


'이제 카톡으로는 대화하지 않는다. 만나거나 전화를 걸거나, 아예 하지 않을 거다. '


이 말인즉슨, 관계의 애매함을 배제하겠다는 의지다. 나는 상대를 배려한다는 같잖은 겸손으로 선카톡으로 일정이면, 뭐면 물어보곤 했는데 그건 서로에게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20년 동안 발바닥에 달고 다닌 티눈·사마귀처럼.


그러니까 그 짓을 그만하기로 했다. 지금을 살기로 했다. 이제 기다리는 건 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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