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검승부의 긴장과 설득의 희열이 그립다
토론은 정말로 유익할까?
일하는 사람에게 토론은 도움이 되나?
2022년의 해가 뜬 지 벌써 9일째, 연초 계획은 미뤄두고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씨 같은 프로젝트들을 쳐내느라 머리가 아픈 일상을 보내고 있다. 채용공고 지원, 플랫폼 기고, 코칭 프로젝트, 토론 강의, 자격증 취득 정도로 요약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 각각의 업무량이 많다기보다는 서로 기본적으로 다른 도메인 지식과 흐름을 가지고 있는 프로젝트들을 동시에 진행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 같다. 시간을 쪼개서 효율성을 높이기보다는 '사고의 흐름'을 위주로 작업 순서를 정하는 편인데 서로 크게 연관이 없는 일들을 쳐내다 보니 머리가 괜스레 더 복잡한 느낌이다.
내일은 한 대학에서 다음 주에 진행될 토론대회에 참여할 학생을 대상으로 오리엔테이션 및 교육을 진행한다. 형식 토론에 전혀 경험이 없는 학생과 약간의 경험을 가진 학생들로 나뉘어 있는 강의인데, 당장 다음 주에 대회가 진행되고 전혀 경험이 없는 학생들을 위해 강의식이 아닌 실전 워크숍으로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고민이 많다.
페이스가 빠르고 논쟁에 할애할 시간이 없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다 보니,
토론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자문하게 됐다.
스타트업, 사회혁신, 교육이라는 내 커리어 키워드를 중심으로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작년 초였다. '지속 가능한 학습'이라는 미션을 도출한 것은 작년 여름, '일하는 사람의 성장 파트너'라는 미션으로 벼려낸 것은 작년 말이었다. 일터에서는 사실상 숙의 과정을 모두 과감하게 건너뛰고 '빠른 실행과 피드백에 기반한 학습' 방법을 적용해 일하다 보니 회의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설득하기 위해 시간을 쏟는 과정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문하게 되었던 것 같다. 게다가 절대다수의 시민들에게 적용되기에 숙의민주주의 모델을 적용하는 정책 영역과는 달리 초기에 극소수의 특정 페르소나를 기반으로 시장성을 검증해야 하는 스타트업에서는 '민주적 토론'이 궤가 안 맞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까지 함께 일해온 토론교육회사에서 올해 동안 맡아온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있었지만 짧은 강의나 심사, 프로젝트 매니징 일을 하면서는 그다지 깊게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던 데 반해 지금은 커리어 방향을 크게 다시 기획하는 시기인 데다가 이틀 동안 전일로 진행되는 워크숍에 그다음 주에는 심사도 직접 맡기로 해서 더 큰 책임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다시 토론의 가치를 고민하며 떠오른 이미지들은 크게 두 개의 범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 대학원에서 경험했던 세미나식 토론이 그립다. 특정 주제에 대해 가진 제한된 정보와 편향, 직감 정도만 믿고 토론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조사와 리딩을 통해 심사숙고한 학술적인 주장을 두고 진검승부를 벌이는 경험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둘째, 최근 토론대회에서 보았던 생소한 모습의 토론현장이 떠올랐다. 올해 프로젝트 관리나 심사를 맡았던 토론대회들에서는 사실 '왜 토론을 이렇게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가지게 됐다. 미국의 정책토론 형식인 CEDA형식이 한국에 넘어와서 자리 잡은 한국어 토론 문화는 기본적으로 객관적인 근거와 로고스(논리)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설득의 3요소에는 로고스(논리) 외에도 파토스(감정), 에토스(도덕적 자격)가 포함되는데, 토론 형식에 따라서 강조되는 요소가 다르다. 예를 들어 전 세계적으로 대학생 토론에서 널리 쓰이는 의회식 토론 형식(parliamentary debate)의 경우, 논리 외에도 감정과 도덕에 대한 호소를 매우 중요시한다. 단순히 준비한 자료를 빠르게 읽는 것이 게임의 룰이 되어버린 미국의 정책토론(policy debate)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내가 목격한 한국어 토론의 현주소는, 감정과 도덕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 '설득'이 매우 협소하게 논리, 근거, 통계로 해석되기 때문에 형식 토론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듣고 싶지도 않고 들어도 무슨 얘기인지 알 수도 없는 매우 협소하고 자폐적인 상태다. 유튜브에 송출하거나 방송으로 내보내더라도 말이 너무 빠르고 논리가 복잡해서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미리 자료를 준비한 것이 아닌 대중이 무엇을 얻어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중적인 가치가 매우 떨어진다.
토론은 '민주시민을 위한 현장 교육'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해당 사안이 왜 중요한지, 어떤 첨예한 논리와 이권이 충돌하는지를 보여주면서도 각 입장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중간 지점에서의 타협이 가능한지를 탐구하는데 도움이 된다. 좋은 토론은 토론자들이 서로를 설득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토론을 지켜보는 이들이 자신과 타인의 입장을 더욱더 숙고해 '더 나은 주장(better argument)'을 만들 수 있는 에듀테인먼트로 작용하는 것이다.
승부를 위한 토론, 상과 상금을 타서 더 좋은 로스쿨에 가기 위한 토론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일부 토론 방송에서 강조하듯이 토론의 대립적인 측면, '기싸움'으로 격돌해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드라마틱한 부분에서 어떤 교육적 가치나 카타르시스적인 효과가 구현될 수 있을까?
내가 가장 희열을 느꼈던 교육 현장의 모습은 토론의 승패나 심사를 결정하는 대회가 아니었다. 오히려 일방향적인 교과서 수업에서 벗어나 내 머리로 논리를 짜고 근거와 비유와 스토리를 덧붙여 하나의 케이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학생들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지켜볼 수 있었던 수업이었다. 일부 나와 케미가 맞았던 학생들과의 동반 성장 경험, 더 나은 주장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함께 갈고닦아야 할 토론이라는 일종의 무도를 함께 걷는 경험이 가장 의미 있었다.
일하는 사람에게 토론은 어떤 도움이 될까?
학창 시절, 그리고 대학원생으로 토론의 가치를 체험했고 한국에서 건강한 토론 문화를 만들어가는데 아주 작은 역할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나의 미션은 토론과는 너무 거리가 멀기에 내가 배워온 것들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근본적인 질문이 던져진 셈이다.
토론의 가치가 정치적, 민주적, 교육적이라고 정리한다면, 이 셋과는 거리가 매우 먼 회사, 특히 스타트업이라고 하는 공간에서 토론은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져야 하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나는 '왜 일하는 사람은 생각을 하지 않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가지고 있다. 회사라는 공간에서 내 짧은 경험으로는, 일하는 사람은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근본적인 문제에 질문하고 답하는 것은 일하는 사람의 업이 아니며, 오히려 질문함으로써 업무의 기본적인 전제를 깬다면 회사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음 예시 질문과 제안을 살펴보자.
'공포 마케팅은 다음과 같은 사회적 해악을 일으킬 수 있는데, 꼭 그렇게 마케팅해야 하나요?'
'이 기획이 사회적으로 어떤 임팩트를 가지게 될지 더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임팩트를 고민하는 회사라면 직원들도 하나의 인격체이자 성장 가능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함께 갈 수 있는 조직문화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회사가 정말로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야 할 때입니다.'
회사의 대표님과 정말 친하다거나, 이사라거나, 외부 컨설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월급 받고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제기할 수 없는 질문과 제안들이다. '회사에서 직원으로 일한다는 게임'의 기본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비판적인 생각이란 해서는 안되며 어떻게('how to')라는 질문만이 허용된다.
이런 협소한 게임 내에서는 why-토론은 의미가 없고 개방적인 형태의 how-to-토론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어떤 방법이 적절한지에 대한 개방적인 아이데이션이나 토의 과정 외에도, 최종적으로 추려진 A안과 B안을 검증하는데 어떤 형태로 테스트를 해야 하며, 어떤 변수를 중점적으로 볼 것이며, 테스트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한 큐레이션 된 토론이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토론에 관한 방대한 지식이 제공하는 다양한 테크닉과 방법론을 적용해볼 수 있게 된다.
어떻게 다양한 의견이 제시될 수 있는 맥락을 만들 것인가?
이견을 갈등과 마찰이 아닌 생산과 창조의 씨앗으로 작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언어를 사용해 이견을 확인하고 관여engage하며 해결책을 도출할 것인가?
어떻게 질문할 것이고 어떻게 답할 것인가?
문사철로 대표되는 '인문학'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미국에서 사회과학을 배웠기에 훨씬 더 뾰족하게 리서치 어젠다를 잡아 방대한 지식을 축적해온 지적 전통을 짧고 부족하게나마 경험했다. 위에서 언급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득의 3요소를 비롯해, 수사학(rhetoric)이라는 독립적인 연구분야가 있는가 하면, 사회과학에서도 발화자의 언어와 의미에 집중해 다양한 개념과 프레임워크를 제시하는 리서치 어젠다가 넘쳐난다.
서구사회가 자랑하는 토론에 대한 지적 전통은, 정말 회사라는 곳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일까?
<원칙>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레이 달리오는, 브릿지워터라는 자신의 투자사에서 직원들이 서로의 부족한 점을 적극적으로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명제에 대해 토론회를 열었다고 한다.* '회사에서 무슨 토론이야'라는 반응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우리나라의 문화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조치가 아닌가.
변화가 매우 빠르며 논쟁보다는 '빠른 실행과 피드백을 통한 학습'이 기본적인 방법론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이는 스타트업이라면 어떨까? 깊게 숙고해서 논의할 시간에, 빨리 목업(mock-up)을 만들어서 시장의 반응을 살핀 다음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짧고 효율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낫다. 레이 달리오의 회사는 큰 투자회사이고, 구성원들이 고학력이라 토론에 필요한 기초적인 지식과 노하우를 가질 것이라고 추측한다면, 개발자, 디자이너, 마케터 등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기본적으로 다른 이들 간에 애초에 논쟁이라는 것이 가능키나 한지 문제를 제기해볼 수도 있다.
나는 변화가 빠른 시대에 토론이 무의미하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토론의 방식과 흐름, 그리고 요구되는 스킬의 구체적인 모습이 달라졌을 뿐이다. 오랜 시간 숙고해 한번에 제대로 논쟁하는 것이 민주사회에서 대중적 에듀테인먼트로서의 토론의 모습이었다면, 불확실한 환경에서 실행으로 얻은 피드백에 기반해 점진적으로 변혁을 주도하는 기관이라면 완전히 다른 문법의 토론을 받아들여야 한다.
핵심은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이 다양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어떤 관점으로 비전과 미션을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핵심 팀 멤버의 숙고는 필요하다는 점이다. 또한 다음과 같은 태도나 방법이 요구되는 것은 아닌가 한다.
- 모든 구성원들은 계속 다양한 미디어와 채널을 통해 시장, 고객, 제품의 가치에 대해 학습해야 한다.
- 고객과 가장 가까운 이들이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생산해 궁극적으로 수렴될 수 있는 공식/비공식적인 프로세스가 마련되어야 한다.
- 빠르게 소통하고 결정하되 불필요한 감정 소모는 하지 않고 오히려 팀워크를 다질 수 있는 소통의 언어와 문화가 필요하다.
오히려 스타트업에서는 더 많은 토론, 더 능수능란(skillful)한 토론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어떻게 효율적이고 창조적으로 소통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 아담 그랜트의 <오리지널스>에 나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