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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벗 Dec 27. 2021

비전으로 세상을 바꾸는 방법론, 창업

<제로 투 원>을 읽고

비전으로 세상을 바꾸는 방법론, 창업


창업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보통 스타트업으로 불리는 기술 벤처창업이 있는가 하면, 사회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회적 기업이나 소셜벤처도 있다. 지역소멸에 대응하기 위한 하나의 움직임으로 로컬 비즈니스도 늘어가고 있다. 콘텐츠로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는 진입장벽과 비용이 매우 낮아졌기 때문에 1인 뉴스레터나 블로그에서 시작해 창업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스타트업은 무엇을 하는 주체인가? 보통 개인 고객의 페인 포인트나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문제 해결형 조직이 스타트업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정의에서 ‘문제 해결’은 광의이기 때문에 사회가 정확히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개념화하기는 어렵다.


페이팔의 창업자 피터 틸은 <제로 투 원>에서 그 누구보다도 명확한 답을 내놓는다. 스타트업이란 기술을 통해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 가치를 제공하고 그 보상으로 몇십 년간의 독점 시장이라는 활동 무대를 얻는 기업이다. 숫자 0에서 1이 생겨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듯이, 인터넷을 만들어내거나 SNS를 창조하거나, 인터넷 검색 포털을 개발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흥미롭게도 피터 틸은 <린스타트업>이나 ‘빠르게 실패하라(fail fast)’와 같은 실행 중심의 방법론에 대해 크게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시장조사를 혐오했다던 스티브 잡스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자 하는 이라면 세상에 던지는 자신만의 비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객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다면 ‘더 빠른 말’이라는 대답이 나왔을 것이라는 헨리 포드의 말과도 같은 맥락이다.


‘제로 투 원’ 기업의 비전은 어디서 나오는가? 피터 틸은 스타트업의 초기 팀은 전문 집단이기도 하지만 ‘신념 집단’이라고 말한다. 초기 팀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미친’ 아이디어를 그 누구보다 믿어야 한다. 그 어떤 전문가 집단이나 정부 조직, 대기업과 같은 거대 집단도 단일 문제에 대해서는 소수의 ‘신념 집단’과 같은 집중력과 문제해결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대중의 지지도나 사내 정치, 전문 지식이라는 지나치게 무거운 짐을 모두 털어버리고 기술 하나로 뾰족한 문제 한 가지에 집중하는 이들이 오히려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높다는 논의는 신선할 뿐만 아니라 혁신적이기까지 하다.


<제로 투 원>은 두 가지 논쟁거리를 던져준다. 첫째, 기술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신념 집단’은 얼마만큼 사회 문제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가? 이 책은 2014년에 출간되었고, 따라서 최근의 ‘ESG 변혁’이나 ‘사회적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염두에 둔 내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피터 틸은 어디까지나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중하면 사회 문제도 자연히 해결되며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사회적 가치’에 기대 ‘기부 자금’ 덕에 생존하는 행태는 옳지 않다고 보는 듯하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떠오를 정도로 고전적인 주장이다.


그러나 지금은 수많은 소셜벤처가 기술과 문제해결력, 그리고 임팩트 디자인(impact design)을 함께 가져가고자 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피터 틸의 보수적인 주장이 옳을지, 사회적 가치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모든 기업이 추구해야 하는 당연한 목표가 되며 소셜벤처들이 유니콘으로 재탄생하는 시대가 올진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둘째, 주로 공대 출신인 소수의 ‘신념 집단’이 일으키는 세상의 변화는 얼마나 지속 가능한가? 역시 피터 틸의 책은 <소셜 딜레마>와 같은 문제제기 이전에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일직선상에 놓고 분석하기는 어렵지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만약 소수의 ‘신념 집단’이 결국에는 핸드폰과 SNS에 중독된 10대와 이로 인해 발생하는 수많은 사회문제를 ‘그로스 해킹’이라는 논리로 정당화하려 한다면 어떨까?


주지하듯이 <소셜 딜레마>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가 사용자의 체류시간을 늘리고 인게이지먼트를 증가시키기 위해 어떤 전략을 써왔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윤리적인 논의가 어떻게 배제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정말로 페이스북, 페이팔, 구글, 인스타그램이 인간의 조건을 향상시켰는가? 대나무로 만든 칫솔이나 양털로 만든 신발, 환경을 위해 ‘이 자켓을 사지 말라’는 파타고니아와 같은 소셜벤처 성격을 가진 제조 기업과 비교하면 어떤가?


필자는 교육 분야의 기업들이 기술을 교육에 적용해 매출과 성장을 추구하는 행태가 인간의 성장과는 큰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AR, VR, 메타버스 등의 기술을 교육에 접목하고 있는 에듀테크 회사들이 정말 인간의 조건을 개선하고 있는가? 공포 마케팅에 의존해 급성장을 누리고 있는 직무교육 회사들이 정말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고 삶에 도움이 되는 스킬을 가르치고 있으며 학습자들은 실제로 수업을 완주하고 있을까?

기업이라면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고 자생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은 옳은 말이다. 하지만 지난 시대의 ‘제로 투 원’ 기업들의 기술만능주의가 발생시키는 문제를 보면 이제는 ‘제루 투 투’의 기업들이 시대가 아닌가 한다. 독창적인 기술로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조건을 개선하고 ESG 관점에서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선제적인 임팩트 디자인(impact design)이 필요한 시대가 온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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