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300년 왕국의 야망>
<손정의: 300년 왕국의 야망>이라는 책에 대한 소감을 간략히 정리하기 전에 이번 트레바리 모임[스타트업]을 관통하는 핵심 질문을 던져보자.
오리지널한 인간, 해당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독특한 아이디어를 제안해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인간은 어떤 사람인가? [<오리지널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기업은 어디에서 오는가? [<제로투원>]
기업의 비전은 어디에서 오는가? [공통]
성공하는 스타트업은 어떻게 시장을 찾아가는가? [<린스타트업>]
네 개의 큰 질문을 헐겁게 연결하면 ‘비즈니스로 세상을 바꾸는 비전을 가진 인간’으로 질문을 좁혀볼 수 있다. 왜 비즈니스인가? 정치, 사회, 문화 등 기존에 더 큰 힘과 패권을 가졌던 영역들에 비해 IT 기술을 등에 업은 비즈니스는 그 영향력이 비대하게 커졌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어떤 사업가가 세상에 없던 비즈니스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서 30년동안 독점기업으로서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이상으로 오랫동안 살아남는 기업을 만드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인간이 CEO로서 활약할 수 있는 시간을 뛰어넘어 생존하는 비즈니스모델과 조직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단순한 사업감각 외에 더 뛰어난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무엇일까? 손정의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비전이 없는 사람은 말이야, 본인은 열심히 땀 흘리며 산을 오르지만 제자리를 맴돌고만 있는 꼴이지. 그런 자세로는 자신을 둘러싼 원을 벗어나기 힘들어. 하지만 비전이 있으면 재빨리 높은 데까지 올라갈 수 있어. 결국 높은 산 정상까지도 정복할 수 있지.”
책에서 오다 노부나가의 사례를 논하며 손정의가 비전의 중요성을 역설한 부분이다. 비전의 중요성은 피터 틸도 <제로투원>에서 논한바 있다. 그렇다면 손정의는 비전이 정해졌다면 어떻게 행동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길까?
“손정의는 무언가 아이디어를 구할 때 대답을 무리해서 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능하면 최대한 폭넓은 가능성을 검토하려고 노력한다”
책에는 ‘1000번 노크’, 암컷 연어가 3000개의 알을 낳는다는 이야기, 그리고 3000개의 기업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나의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사용하며 수많은 사례를 충분히 연구하는 것, 그 사이에 주위의 비판이나 불만을 잠식시킬 수 있는 자신감은 아담 그랜트 교수의 <오리지널스>의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한다.
사실 <300년...>은 독자에게 그다지 친근한 책이 아니다. 손정의에 대해 처음 배우고 싶은 사람에게 적합한 책이라기보다는, 이미 그의 성장배경에 대해 익숙한 ‘덕후’들이 더 깊게 알아갈 수 있는 일화와 이야기들을 신변잡기식으로 나열하면서 적당히 내러티브를 만들어낸 구조라서, 흥미도 떨어지고 무엇이 핵심인지 파악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이목을 끄는 것은 단연 책의 제목인 ‘300년 왕국’이라는 손정의의 비전이다.
소프트뱅크를 어떤 방식으로 운용해왔는지 드러나는 대목들을 살펴보면 더욱 흥미롭다. 거대한 인류 수준의 변화를 읽어내고 지금 시너지가 나지 않더라도 미래에 가치가 상승할 기업에 투자한다. 굳이 소프트뱅크의 이름을 붙이거나 당장 수익을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기업이 소프트뱅크의 포트폴리오에서 빠져나가 새로운 길을 떠날 수 있는 가능성과 트랙도 염두에 둔다. 하나의 작은 비즈니스모델이 30년 정도의 성장 가능성을 가졌다면, 손정의가 보는 300년 왕국이라는 것은 30년 부족들이 얽히고 섥혀 시너지를 내는 가운데 반도체 설계회사인 ‘암’과 같은 회사가 그 뿌리에서 핵심 기술력을 제공하는 형태가 아닐까?
이 책에서 ‘컴퍼니 빌딩’이라는 용어를 읽은 기억은 없지만, 단어와 개념이 생기기도 전에 손정의는 오늘날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자 투자 전략인 컴퍼니 빌딩을 만들어낸 사람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의 책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앞으로 30년, 100년, 300년 기술 변화를 이끌 핵심 뿌리가 되는 ‘기초기술’은 무엇인가? 인공지능, 클라우드 컴퓨팅, 반도체, 5G, 블록체인, 메타버스 등이 아마 이에 속할 것으로 막연히 추측해볼 수 있을 뿐이다.
필자는 기술과 비전을 논하기 전에, 문제를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30년, 100년, 300년동안 인류가 해결하기 위해 분투해나가야 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이 문제를 고객이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비즈니스는 폴발적인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뭘까? 나는 그 문제가 외로움이라고 생각한다. 각종 기술의 발전으로 외로움은 해결되었기보다는 오히려 심각해졌다고 볼 수도 있다. <소셜딜레마>에서 지적한 것처럼, 기술은 외로움을 적대적으로 착취해 비즈니스에 데이터와 수익을 가져다주는 방식으로 작동한 적이 많다.
거창하게 사회혁신이나 소셜벤처를 논하지 않더라도, 사용자가 궁핍해지고, 인간의 조건이 퇴행하며, 장기적인 사용 경험이 좋지 않은 서비스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인간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더 나은 기술과 더 나은 비전을 가진 기업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할 것이다.
고속성장하는 기업은 IT 컴포넌트가 클 가능성이 높다고 전제한다면, 기술으로 외로움을 해결하면서도 부정적인 효과를 최소화하거나 오히려 인간의 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은 무엇인가? 국가도 해결하지 못하는 이 근본적인 문제에 과감히 달려들 수 있는 손정의와 같은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