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럽게 구독할 수 있는 서비스는 없을까
요즘 주말에는 가능하면 새로운 경험의 기회를 만드려고 노력한다. 미술관이나 전시에 가거나 영화를 본다. 자주 먹던 음식이 아닌 새로운 것을 접하려고 한다. 사고가 감정, 감각보다 훨씬 더 많이 발달한 나같은 사람에게, 가끔씩 삶은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은 재택근무를 하는 일도 많아졌고, 회사도 디지털 콘텐츠를 만드는 플랫폼이다. 손에 잡히는 무언가가 없는 일상, 두통이 잦고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작은 스트레스 요소에도 과민반응하는 나를 발견한다.
삶은 결국 경험의 총합이다.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시간, 공간, 관계를 바꿔야 한다. 시간을 다르게 보내보고, 다른 공간을 경험하거나 기존의 공간을 재배열하며, 기존의 관계를 재배열하거나 새로운 관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만든다.
‘시간, 공간, 관계의 재배열’은 다른 말로 하면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근데 일과 공부는 홀로 열심히 갈아넣어서 어떤 경지에 오르는 것이 가능했다면, 라이프스타일이야말로 홀로 개선할 수 없는 분야다. 삶의 방향이 ‘자아의 확장’이라면 나의 라이프스타일은 둘러싼 사회적 환경과의 상호작용의 비중이 훨씬 더 크기 때문.
같은 맥락에서 ‘좋은 삶’은 ‘괜찮은 사회 환경’ 내에서만 가능하다. 전쟁이 일어나는 나라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국의 문화적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되돌아보게 되는 지점이다.
내게는 주변 사람들이 삶에 찌들어 있거나 여가로 회피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식, 부동산, 스포츠, 자동차, 테슬라 외에는 흥미로운 대화거리가 없거나, 일에서 의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열심히 라이프스타일을 베껴서 인정투쟁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은 라이프스타일도 인정투쟁이다.
좋은 라이프스타일이 가능하려면, 좋은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기업이 많아야 한다. 애플을 보자. 컴퓨터, 태플릿, 그리고 핸드폰을 통해 애플은 ‘좋은 삶’의 가능성을 제안하고 있다. 애플이 1세대 라이프스타일 기업이었다면, 이제는 더 많은 회사들이 다양한 형태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 물질주의에서 탈물질주의로, 산업화 사회에서 탈산업화 사회로 중심이 옮겨가면서 제품의 기능이나 효용보다는 제품을 통해 좋은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할 수 있는 기업의 역량이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라이프스타일 제안 기업들은 어떠한가? 사실 2030 여성을 대상으로 한 ‘힐링’ ‘정신건강’ 트렌드가 명확히 보이지만, 얼마나 많은 업계의 기업들이 좋은 제안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특히 내가 몸을 담고 있는 콘텐츠 비즈니스를 들자면, 경제 분야로 수익화에 성공한 버티컬 미디어가 대세이고 콘텐츠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해 시장을 개척하는 회사가 얼마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영상 콘텐츠는 내가 잘 모르고, 사실 웹툰, 웹소설도 잘 모르지만 떨쳐내기 어려운 편견이 있다. 웹툰이나 웹소설로 흥행하는 것들은 미생과 같은 수작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이 어리고 미성숙한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특히 외모지상주의적, 인생의 게임화, ‘환타지 세계에서 내가 짱’ 등 다양한 콘텐츠 흐름을 보면 유니콘이든 뭐든 콘텐츠 시장이 충족시키는 욕망과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이 그렇게 멋져보이지는 않는다. 이세계에서 무한회귀하는 웹툰이나 웹소설을 열심히 본다고 지금 여기의 내 삶이 나아지는가?
라이프스타일 제안에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업계는 미디어다. 아직 ‘정보 전달’이나 ‘권력 견제’ 등 산업화 시대, 민주화 시대의 올드한 기능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나 이코노미스트를 보면, 미디어 브랜드의 가치제안은 ‘good, examined life’라는 생각이 든다. 수천년 전, 소크라테스가 거리를 누비며 청년들에게 ‘생각 좀 하고 살면 삶이 더 나아질 거다’라는 미디어의 역할을 했다면, 오늘날 디지털 전환에 성공한 세계적인 미디어 브랜드는 ‘세상의 변화에 대해 알고 공감의 폭을 넓혀 더 좋은 삶을 살수 있는 콘텐츠 제공’이라는 미션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는 뉴욕타임스가 쿠킹이나 퍼즐 게임 등을 제안하는 것이 단순한 비즈니스 전략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난다.
사회는 복잡하고 다양해졌고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전문 지식의 절대량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반면 교육은 이 변화를 따라올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informed life를 살며 삶에서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미디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다.
다음 선거에서 좋은 표를 던지기 위해 시민이 여가 시간을 다 써가면서 정보를 찾고 공부를 해야할까? 교양 있는 시민이 되기 위해 하루 종일 뉴스만 보는 것이 과연 좋은 삶일까? 오히려 지금 한국의 현실에선 교양과 상식이 있고 좋은 삶에 대한 욕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정치와 언론에 큰 환멸을 느끼고 있을 것 같다.
중산층 미디어 audience(수용자라는 표현보다 원문이 더 좋다)는 다음과 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침에 산책도 좀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은 후에 정보가 정확할 뿐만 아니라 피로감이 덜하고 심지어 아름다운 일러스트나 영상도 곁들여진 미디어로 세상을 알아가고 싶다. 내가 가져보지 못한 새로운 관점을 큐레이션해주고, 전문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대화해보고 싶은 저널리스트와 작가들의 글을 읽을 수 있고,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큐레이션 받고 싶다. 친구들과 대화하며 내가 이 미디어를 구독한다는 점이 나를 높은 가치와 취향을 드러내주기를 바란다.
뉴욕타임스의 쿠킹, 퍼즐 게임 번들링 전략은 ‘중산층 시민의 informed 라이프스타일 제안’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코노미스트는 타겟층이 약간 더 엘리트에 가깝지만, informed, examined life를 제안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정보 저널리즘을 넘어 서비스 저널리즘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독자가 필요한 정보라면 요리법이든 정치 뉴스든 가리지 않고 큐레이션하는 정신을 포용하고 있는 용어다. 나라면 더 나아가서 저널리즘 서비스, 종합 라이프스타일 미디어, 좋은 삶의 파트너라고 미션을 잡을 것 같다.
손석희가 뉴스룸을 진행하던 시절, 앵커브리핑의 퀄리티에 압도된 기억이 있다. ‘뉴스는 정보만 전달할뿐’이라는 구시대의 강박을 벗어나 뉴스가 이야기이자 메시지로 다가왔던 경험이었다.
이 맥락에서 미디어가 메세지라는 (’미디어’를 더 협소하게 받아들인다면) 말을 다르게 해석해볼 수도 있겠다. 메시지가 없는 미디어는 미디어가 아니다. 그리고 이제 교육받은 중산층은 단순한 ‘정보전달’을 메시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메시지는 ‘좋은 삶’의 지향점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굳이 필요 없는 TMI, 사건사고 정보로 귀중한 audience 시간을 빼앗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한국에 라이프스타일 미디어가 생겼으면 좋겠다. 주말에 시간을 내어 몰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디지털 미디어, 친구들과 대화의 수준을 확 올려줄 수 있는 미디어, 구독료가 아깝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치 있는 변화를 지지한다는 관점에서 내가 자랑스럽게 구독할 수 있는 미디어가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