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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벗 Apr 13. 2021

스타트업 초보 에디터의 좌충우돌

함께 일한다는 축복과 저주에 관하여


동료는 나의 성장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특히나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의 경우, 함께 일하는 사람과 많게는 한주에 두세 번씩 회의를 하며 합을 맞춰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크고 작게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 누구와 함께 일하고 있는가'는 나의 성장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다. 내 업무에 대한 의식적, 무의식적 기준은 주위 동료들이 보여주는 모습에 기반해 세팅될 수 있으니, 이들이 보여주는 열정, 에너지, 성과, 생산성 등에 의해 나도 암묵적으로 제한되거나 힘을 받는다. 물론, 얼마나 마음이 맞는지, 서로 감정 소통이 되는지, 서로 단점을 보완해주거나 퍼포먼스에 대한 유의미한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 요소도 있기 때문에 단순히 '유능한 동료'를 갖는 것이 1순위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는 걸 좋아하는 내 경우엔 '아이디어의 핏'이 잘 맞는 동료가 있는 것이 나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타인은 지옥이다.' 

동료들 간에는 잦은 소통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서로 지식기반이나 업무영역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잘 모르는 부분이나 역량이 부족한 영역, 러프한 상태의 아이디어 등 많은 것들을 보게 된다. 마음만 같아서는 전반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지만 사실 친한 친구 중에서도 너무 다르고 얘기하기 꺼려지는 주제가 있는 이들이 많은데, agreeable 한 동료를 만나기가 그렇게 쉬우랴. 


문제는 무언가 근본적으로 호흡이 맞지 않는다고 느낄 때다. 호흡을 계속 맞추려고 잦은 소통을 하고 개인적인 시간을 갖기도 하는데 서로 멀게만 느껴진다면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 것일까? 회의에서 보통 서로의 아이디어에 동의하기보다는 반대하는 경우가 많고, 그 이유가 어떤 근본적인 성향이나 스타일의 차이에서 기인한다면? 갈등 아닌 갈등으로 인해 내가 옳다고 믿고 나아가고자 했던 방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면? 


길게 설명하긴 힘들지만, 에디터 업무에서 곧 기획자 일을 소화해내야 하는 상황이 되어서 그로스 해킹, UX, 인스타 마케팅 등 생소한 주제를 주말에 공부하다가 회사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한 회의에 제안하기에는 사실 조금 많기도 하고 러프한 것들을 가져갔다. 사실 나이브한 나의 기대는 '그로스 해킹이 이렇게 중요한데, 성장을 위한 아이디어를 한 아름 가져왔으니 토론해봅시다'였다. 구체적인 아이템은 별로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최고의 상품성을 추구하면서도 MVP만 완료되면 테스팅과 저비용의 사용자 소통을 통해 성장을 꾀하는 전략이 지금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러프한 수준의 아이디어를 가져가서 바로 아이디어 수준에서 토론이 되기를 기대하긴 했는데, 나이브한 생각이었나 보다. '정확히 뭘 하자는지 구체적이지 않다' 등의 얘기를 들었고, 쓰기는 어렵지만 정말 예상하지 못한 반응도 있었다. 사실 아직 지금도 정확히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회의에서 새로운 제안을 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 거지? 아마도 소통 부족의 문제인 것 같다. 




지금 상황에서 몇 가지 드는 생각은 다음과 같다. 


첫째, 더 잘 듣는 연습은 필요한 것 같다. 내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서라도, 설령 의견은 바뀌지 않을지언정 상대가 무슨 말을 왜 하는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더 잘 듣는 연습이 필요하다. 체계적으로 듣고 입장과 맥락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가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둘째, 이상적으로는 내 얘기의 핵심을 큰 노력 없이도 알아들을 수 있는 '찰떡' 동료를 만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내 의도와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내 생각에는 당연한 것들이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이 내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을 가끔 듣는다. 


셋째, 내가 가진 생각들을 검증, 정리, 확장하는 연습이 더 필요하다. 공유하기 전에 더 깊게 들어가야 하나? 회사 입장에서는 비용이기도 하다. 사실 아이디어 게이트키핑의 문턱이 높다면 피로함에 아이디어를 내고 싶지 않아 질 수 있다. 그러느니 내 개인 프로젝트에 집중하는 것이 이득이 될 터. 그렇지만 이왕 샛길로 접어든 아이디어라면, 조금 더 공을 들여 한차례 더 고민해보고 '반론을 예상해보는' 연습을 자체적으로 탑재해야 할 것이다. 아마 듣고 들었던 비슷한 얘기가 나올 텐데, 그 주장과 논리를 어떻게 반박할 것인가. 



'지옥'이지만 나의 성장 밑거름이기도 한 동료.
많은 경우에 나는 동료를 선택할 수 없다. 

선택할 수 없다면, 만들어야 한다. 소통방식을 통해, 태도를 통해, 말이 통하고 아이디어 티키타카가 되는 사람으로, 조금씩 맞춰나가는 과정은 필요하다. 


소통에 관한 한, 통속적인 이야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아주 구체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직군이 다른 사람들과도 앞으로 함께 일하는 기회가 생길 가능성이 있고, 그래서 역량을 키워나가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팁과 전략이 필요하다. 


어떻게 더 잘 들을 수 있는가? 어떻게 더 잘 의도를 전달할 수 있는가? 앞으로 계속 던져야 할 질문이다. 물론 아직까지 내 의견은 소통이 아이디어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다는 것. 소통으로 아이디어나 가올 정도의 합이라면, 사실 이렇게 고민할 필요도 없는 경우일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질문들은 아주 구체적인 맥락에서 던져야 한다. X님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을 것인가? Y님에게 내 의견을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나? 


토론 강사생활을 꽤나 오래 했고 대학원 세미나에서도 학술적 토론을 경험했다. 그러나 업무 영역에서 듣기와 말하기는 상당히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소통으로 깨어나는' 연습, 맥락에 맞게 적절히 전달 방식과 메시지를 즉흥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훈련,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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