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쓰는 리뷰
영화에 대해 말하려면 어차피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으니, 기왕이면 그 속에서 다뤄진 몇몇 인물들에 대해서 먼저 말해보려 한다.
제시 오언스. 히틀러가 아리안 족의 우수성을 알리는 자리가 되길 원했던 베를린 올림픽 육상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흑인 선수다. 타이거 우즈. 골프황제라고 불리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던 그도 역시 흑인이다. 마지막으로 오바마. 퇴임하기 직전, 지지율 60퍼센트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던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다. 시대 순으로 따지면 1963년의 제시 오언스, 1997년의 타이거 우즈, 2009년엔 오바마, 그리고 2017년엔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렇다. 트럼프가 취임했다. 그리고 트럼프를 뽑은 사람들은 말한다.
난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야. 난 오바마도 좋아하거든. 할 수만 있었으면 그 사람을 또 뽑았을 거야."
재밌는 건 이런 말이 진심이라는 거다. 영화에 등장하는 백인들은 흑인인 주인공에게 단순히 환심을 사기 위해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어찌나 진심인지 자신이 흑인이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다. 그리고 '흑인이 유행'이라는 이 진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인종차별적 사고를 극적인 사건으로 버무리면, 영화 <겟 아웃>이 된다.
인터넷에는 늘 이상한 글이 떠돌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밀도가 일정 수준을 넘게 되면 그건 사회의 문제다. 겟 아웃에 대한 리뷰를 찾아보면 이런 글을 발견할 수 있다. "단순한 스토리에 뻔한 인종차별 소재를 다룬 B급 영화." 대체 우리가 언제부터 인종차별에 대한 전문가가 됐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감독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했던 섬뜩한 문제의식은 흥행과는 별개로 한국에서는 잘 와 닿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사실, 다른 종류의 차별에 대한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여자를 혐오한다고? 내가 여자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여기에 담긴 여성 혐오 또한 한국사회에서는 최근에야 이슈가 될 수 있었다. 한번 비교해보자. 영화에서 흑인을 좋아한다는 백인들의 말에 담긴 진심만큼이나 여자를 좋아한다는 위의 말도 진심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흑인을 피부색만 보고 나쁜 사람으로 취급하는 걸 싫어하듯이, 한국사회에서도 그런 종류의 성차별은 싫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들은 차별이 구시대의 유물이라 말하며, 자신은 오히려 상대를 존중하고 선망한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영화 속 대사를 조금 빌려오면, 심지어 그게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더라도 차별은 차별이다. 피부색을 패션처럼 취급하고 많은 편견들에 기반해 상대를 정의 내리면서 '조금만 고치면 괜찮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시점에서, 등장인물들은 이미 상대를 대상화시키고 있으며 자신과 동등한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자백한다. 그래서 선망과 차별은 동전의 양면처럼 한몸이다.
영화 속에서 이런 차별의 정교함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화이트워싱 문제를 뒤집어 놓은 것 같은 설정이다. 기존의 화이트워싱이 흑인이나 아시아인 히스패닉 캐릭터의 피부색을 백인화 시키는 것이라면, 영화에선 이와 반대로 피부색은 유지하고 그 내부를 백인화 시키는 정반대의 스토리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런 촌극은 같은 뿌리에서 탄생한다. 비백인 소수 인종의 특정한 요소만을 분리해서 소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착각.
그 속에서 진심어린 선망은 혐오가 되고, 정교화된 차별은 공포로 재현된다. 러닝타임 104분에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단순한 스토리의 이 영화가 그 어떤 영화보다 섬뜩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