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 중에서 화와 분노의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고통받는 이들이 많다. 사실 마음의 투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때, 화와 분노는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며 가장 고통받는 이 또한 상대가 아닌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화와 분노를 달고 산다. 현대인들이 화와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데에 있어서 결정적 원인 중의 하나는 현대의 신발이다. 현대의 신발은 상반신과 하반신 간의 균형과 조화를 상실하게 만듦으로써 둘 사이를 조절하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길항작용이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게 만든다.
자연스러운 걸음걸이와 동떨어진 방향으로 나아가는 현대의 신발은 수승 하강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하는 인체에 오히려 열이 위로 뜨게 만드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 식혀지지 않는 열이 자꾸만 위로 솟아오르면, 인체 내에서는 살기 위해서 열을 방출하게 만들고, 이러한 열을 방출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부정적 감정의 수단, 화와 분노를 상대방이나 외부 대상에게 표출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신발의 굽이 낮은 신발을 신고서 걸음을 걷다 보면, 저절로 수승화강의 원리가 호흡 속에 스며들고 화를 내려야 낼 수가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화와 분노는 대개 감정의 억압, 보다 자세히 말해서는 성적 욕구의 억압으로 생기는 데 여기서 말하는 성적 욕구는 삶을 향한 충동을 의미하는 리비도의 개념에 가깝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리비도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이고, 이 표현 방식은 각자의 삶에서 상이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누군가는 일을 하는 동기 부여로서 이 리비도를 활용하고, 누군가는 창작활동을 하는 데에 쓰기도 하고, 누군가는 무언가를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데에 이 리비도를 쓴다. 원초적 충동, 리비도는 존재를 지속하고자 하는 욕망의 발현인데 화와 분노가 많이 쌓여있는 사람의 경우, 이 리비도가 제대로 발현이 되지 못한 경우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리비도를 올바른 방식으로 해소하거나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무의식과의 원활한 교류와 소통이 중요한데, 이 무의식은 의식적으로 닿을 수 없는 영역에 있으므로 우리들은 발 반사구를 활용해야 한다. 발 반사구 중에서 발 뒤꿈치는 생식기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발뒤꿈치에 대한 자극은 화와 분노의 폭발력을 수용할 수 있는 무의식의 통로를 열어줄 수 있다. 부정적 감정을 잠재우고, 더 나아가서는 성욕을 인간의 본성에 적합한 방식으로 승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올바르게 만들어진 신발은 걸을 때마다 발 반사구를 체중에 해당하는 무게로 자극시키므로 지속적으로 무의식과의 소통이 원활하도록 돕는다. 발 반사구는 무의식과 맞닿아 있는 부위인 만큼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신경계가 손보다 더 예민한 만큼 무의식에 억눌려 있는 억압을 해소하는 데에 있어서 그 효과는 배로 커질 수 있다. 단지 신발 하나가 아니라 신발 하나가 그만큼 삶 전반에 끼치는 영향력이 매우 유의미하다는 것이다. 걷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신발을 바꾸는 일이 인생 전반의 질적 수준을 개선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성 에너지가 발 반사구와 함께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작용해서 자아실현 혹은 성 에너지의 승화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알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