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학

한의학 혹은 중의학.. 그리고 현실

by 연금술사

호기롭게 사표를 던졌지만 넘어야 할 일들은 많았다. 무엇보다 부모님을 어떻게 모르게 할 것인가가 우선이었고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이었다. 우리 세대부모님들이 그렇듯 자식 특히 장남에게 기대하는 바는 당신들의 삶 자체였다. 직장에서 상사와의 갈등은 결국 퇴사의 촉매가 되었고 마음속에 꿈틀거리던 한의대에 대한 꿈을 이루겠다고 뛰쳐나간 것이었다. 물론, 2000년대 초반에 한의대 열풍도 한 몫했다. 그때 마지막 봤던 책이 “직장 질 때려치우고 한의사 되기” 같은 책이었으니까.


퇴사를 하고 아침엔 출근하는 척 나와 동네 도서관으로 향했다. 수능을 봐야 하니 수학 정석을 사서 독학을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부모님은 눈치를 채셨고 분위기는 엉망이 되어버렸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자식 된 도리를 다 못 했었구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어쩌면 그때가 내 삶에서 처음으로 내 인생을 결정해 보겠다고 친 사고였었던 것 같다. 그전 까지는 학교 다니고 학력고사 보고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가고 졸업하면 직장을 구하고.. 남들 하니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을 하고 살았던 인생이었달까.


그때 나는 두 가지를 나 스스로에게 테스트를 했었다. 첫 번째는 한의대를 가겠다는 거였지만 그 두 번째는 내가 사업이란 것에 적성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직장이라는 조직을 뛰쳐나왔으니 이젠 스스로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알아봐야 했다. 그래서 보험 영업이란 걸 시작하게 됐다. 사람을 만나고 물건을 팔고 설득하고.. 석 달을 해 보았는데 결론은 “영업에 적성이 없다”였다. 물건을 팔기 위한 일보다 양심의 가책이 더 힘들었다. 보험 영업이란 일은 나에게 맞지 않는 일이었고 사업이란 일은 적성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한의대를 가기 위해 당시엔 상위 1% 이네에 들어가야 했다. 수학문제 두 개만 틀려도 떨어지는 그런 시대였으니까. 강남 대성 학원에 현역 고 2 아이들과 반배치 고사를 함께 보았다. 대학 다닐 때도 과외 같은 일은 안 해서 영어는 문제없었지만 고등학교 수학은 이미 잊힌 지 오래였다. 당연히 반배치 고사에서 꼴찌반 당첨. 그래도 괜찮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3개월의 학원 생활을 하며 수학 정석을 학원을 다니며 혼자 독학하고 암기과목들을 공부했다. 그즈음 나 스스로에 대한 수준을 가늠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나이가 30대였기 때문에 두 번 세 번씩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2001년도의 기출 수능을 혼자 시간을 맞추어 문제를 풀어보았다. 현역 아이들은 부러워하는 점수였지만 나에겐 많이 부족한 점수였다.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 불확실한 수능을 계속 준비해야 할까.. 아직 시간이 있다지만 상위권 1%에 들어가는 건 다른 문제였다. 공부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잘한다로 이루기엔 실질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다.


인생이 재미있는 건 이런 고민이 생길 때 예상치 못한 길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것이 지옥길이 될지 천국길이 될 진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내 눈에 나타난 중국 중의학 대학 광고. 신문을 읽다 우연히 본 광고는 학생모집 광고였다. 그 길로 수능을 정리하고 중국 유학이라는 길을 선택했다. 한국에서 모집한다는 예과반이란 곳엘 가서 6개월을 학습했는데 중의학을 주제로 한 중국어를 배웠다 (당연한 일이었고). 사실 사기였을지도 몰랐을 그런 길을 선뜻 선택한 건 절박한 마음이 컸던 듯하다. 6개월을 다니며 한국의 학원 담당자와 갈등도 많았다. 그곳에 있던 학생들 중 내가 제일 연장자였기에 그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앞장서서 싸울 수 밖 없었다. 사실 예과반이란 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예과반이 아니었다. 그냥 어학원인 것을 그렇게 불렀던 것이었다. 그렇게 6개월의 연수를 마치고 중국으로 가서 1년 6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 학업을 중지하고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그때가 2005년의 여름… 그 해의 여름은 유난히도 나에겐 덥고 희망이 없던 때였다. 모든 것이 실패했고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 시간은 지났고 나에게 남은 것은 없었고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었다. 막막했고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호기로움은 사라지고 떨어진 자존감은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추락했었다. 현실은 냉혹했고 책임져야 할 일들은 피할 수 없었다.


한국으로 귀국 후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지만 2년 6개월 가까운 경력 단절은 그 어느 곳에서도 받아주질 않았다. 그 짧은 사이에 대한민국 일자리 시장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뭔가는 해야 했고 그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