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직이 된 가장 그리고 공사장
중국유학을 실패하고 돌아온 곳에 내가 설자리가 없었다. 알량한 대학 졸업장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고 2년 반의 공백은 있던 경력마저 없는 샘 되어버렸다. 그래도 가장이 되었으니 뭐라도 해야 했다. 여기저기 이력서를 돌렸다. 물론 거의 모든 곳에서 연락조차 없었다. 그렇게 삶이 나락으로 떨어져 갈 때쯤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중견기업이었지만 당시 내가 생각해 봤을 때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회사라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여기 가서 면접을 잘 봐서 꼭 일 할 수 있도록 하자…
면접을 약속한 시간에 회사에 도착했다. 떨렸지만 신입사원 때 면접처럼 열의와 열정 그리고 첫 직장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한 대답을 잘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호기로움은 한순간에 절망으로 바뀌었다. 회사 관계자가 면접 전에 할 것이 있다며 나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네주었다. 경영학 관련 문제였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경영학 원론과 경제학 원론 그리고 주식 시장 분석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 문제를 펴는 순간 내 온몸이 떨렸다.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 대학을 졸업한 지 그때가 이미 5년 가까이 흘렀고 그동안 경영학이나 경제학이나 이런 것들을 다시 공부한 적이 없었다. 당연히 문제를 보는 순간 나의 무지에 치를 떨어야 했다. 주어진 20분.. 무엇을 해야 할까.. 결국 시험지에 이렇게 쓰고 그 자리를 몰래 도망치 듯 빠져나왔다.
“죄송합니다. 저는 이 자리에 있기엔 너무 부족한 사람인 듯합니다. 시간을 뺏어 죄송합니다.”
이 한 줄을 쓰는 시간이 나에겐 천년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누가 들어와 뭐 하냐고 물을까 조마조마했고 한 줄을 쓰고 몰래 빠져나올 때도 가슴이 쿵쾅거렸다.
거리로 뛰어나와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이리 맑고 사람들은 자기 삶을 위해 각자의 방향을 향해 가는데 난 갈 곳도 갈 준비도 능력도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머리와 가슴을 꽉 채웠다. 부끄럽고 한심했다 하지만 어디 숨을 곳도 없었다. 내가 선택한 일로 벌어진 결과를 이제 현실로 직접 느꼈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집으로 돌아와 면접에서 되지 않았다며 헛웃음으로 마무리 지었다.
하루는 장인께서, 당시 가진 것도 없어서 처가살이를 하고 있었다, 당신께서 작은 공사를 계약했는데 거기서 일 해 보라고 하셨다. 소규모 전기 설치 회사였는데 당시 강남 쪽의 신축 건물에 작업이 들어가 있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얼마나 다행인가 그래도 이렇게 이제 얼마라도 벌게 됐으니..
새벽에 일어나 작업복을 챙겨 뼈대만 올라간 건물의 지하로 들어가 인부들이 있는 곳에서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안전모도 썼다. 작업장갑도 착용했다. 평생 공부만 했지 이런 일은 해 본 적이 없으니 며칠은 경력 많은 분들을 따라다니며 허드렛일을 돕고 전선의 피복을 벗기는 방법을 배우고 공사장에 있는 다른 업체들과 어떻게 일하는지를 보았다. 한 여름이었다. 조그만 움직여도 땀이 쏟아졌고 쉴 곳은 그늘 어딘가였고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유일하게 에어컨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래도 일이 끝나면 샤워를 할 수 있는 시설은 있었다.
책임을 져야 했기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마음은 항상 괴로웠다. 계속 이렇게 지내야 하는 건지 이 일을 계속하면 어떤 비전이 있는 건지. 일머리는 있어서 보고 배우면 곧 잘 따라 했지만 마음은 항상 불안했다. 이렇게 인생이 정해지는 것 같았다.
공사장 인부들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시간이 있으면 대게 낮잠을 잔다. 공사장 어딘가에 박스나 누울 수 있는 뭔가를 깔아 놓고 잠깐의 휴식을 취한다. 처음엔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어느 순간 익숙해져 가는 내 모습을 보고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렇게 누워서 시멘트 기둥과 바닥 밖에 없는 건물의 천장을 보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어쩌다 인생이 이렇게 됐을까.. 탈출구가 필요했고 장기적인 계획과 실행이 필요했다. 젊음을 막노동으로만 보낼 수는 없었다. 스스로가 이 직업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삶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바닥이었던 시간이었다. 가까운 친구들과도 연락을 하지 않았고 부모님 께도 부끄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자존감은 항상 숨을 곳을 찾아다녔다.
4개월 정도를 현장과 사무실을 번갈아 가며 일을 했었다. 고민과 갈등은 많았지만 끝까지 해보려 노력은 했다. 하지만 건설현장의 체계 없는 일의 순서, 어디까지가 도덕의 선인지에 대한 모호함, 그리고 융통성이라는 이름의 불합리.. 이것들이 일을 하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 내 일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결국 아내와 상의를 했고 외국행을 결정했다. 그렇게 무엇을 해야 하나 알아보다 우연히 알게 된 것이 호주라는 나라, 애들레이드라는 도시 그리고 간호학이었다.
돌다리를 건너도 두들겨 보는 심정으로 많은 시간을 들여 호주 간호사의 전망을 조사했고 이민 블로그, 카페, 해외 간호사 준비 커뮤니티 등을 통해 간호대 졸업 후 취업은 무조건 된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렇게 2006년 2월 호주 애들레이드로 떠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