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간호사 나쁜 간호사..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중학교 입학 후 영어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법책을 공부하고 독해를 하고 시험을 보고… 수십 년간 입시를 위해 취업을 위해 했던 공부지만 막상 살기 위해 입으로 뱉어내야 하는 영어는 다른 게 다가왔다. 간호대를 입학하는 조건으로 해당 대학에 소속된 어학원을 졸업했다지만 사실 그곳은 천국이었던 것. 마치, 군대에서 훈련소 6주를 견딜 때는 지옥이 따로 없는 것 같았지만 막상 자대에 배치를 받고 선임들과 생활을 시작하면 동기들과 있던 훈련소가 그리워지듯이..
30대가 넘어 영어로 살려니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거기에 살면서 의학용어라고는 접해 본 적도 없던 인생이었는데 간호대를 들어왔으니 영어와 영어로 된 메디컬 텀을 익힌다는 건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그래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시간이 지나면서 에세이를 쓰는 것도 수업에 들어가서 견뎌내는 시간도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2007년에 입학했던 호주 간호대학은 주로 에세이를 작성해서 제출하면 성적이 메겨졌고 매 학기 실습이 주어졌다. 첫 학기엔 2주, 다음 두 학기는 각 4주, 그리고 마지막 학기는 8주의 실습시간이 부여 됐었다. 호주 간호대학은 3년 과정이다. 나는 한국에서 학사학위가 있어서 Graduate Entry라는 프로그램으로 들어갔는데 비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과정이었고 1년을 면제해 주어 총 2년의 대학 생활을 했다.
첫 학기 때 썼던 1000자짜리 에세이 제목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데 그 이유가 살면서 당연히 하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 글을 써 본 적이 없어서였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과 정답을 찾는 것에만 익숙했었기에 고작 A4 용지로, 보통 A4 정도면 250자 정도가 써진다, 4장 정도 쓰는 건데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 첫 번 째 토픽은 “What is nursing?”이었다.
18년 전 실습을 나가면 동양인 학생이 그리 많지 않았다. 시드니나 멜버른 같은 대도시는 모르지만 내가 있던 애들레이드는 그때만 해도 아시안이 그렇게 많던 시기는 아니었다. 대부분이 백인 간호사였거나 호주 로컬 출신들 혹은 영국,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같은 이민자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아시안 의사들도 드문 시기였기에 실습장에서 간호사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여러 감정들이 섞여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월이 십 년이 훌쩍 넘었어도 처음 실습 나갔던 로열 애들레이드 병원 (Royal Adelaide Hospital : RAH) 호흡기 병동의 널싱스테이션이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새벽 4시부터 일어나서 도시락 싸고 자주 있지 않은 버스를 5시를 조금 지난 시간에 올라타면 병원에 6시 30분쯤 도착했다. Facilitator의 간단한 오리엔테이션 후 병동에 남겨졌는데 그 어느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아서 널싱스테이션 구석에 몇 시간을 서 있었던 기억. 소개는 2학년으로 했지만 실질적으론 1학년과 다를 것이 없어서 병원의 시스템을 하나도 모르던 그날의 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실습에 대한 여러 기억은 다음 편에 써보려 한다.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라 친절한 사람, 관심 없는 사람, 무시하는 사람, 무례한 사람 등등…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 사람의 간호스킬 이런 것을 떠나서 나에게 친절한 간호사가 좋은 간호사였다. 호주 로컬 학생들은 간호사들하고 이런저런 농담도 하고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나누며 서로 가까웠지만 나는 그런 주변머리도 없었고 무엇보다 공통적인 토픽의 부재 그리고 성별이 다른 것이 chit-chat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얘기였다. 그래서 난 주로 질문을 많이 했는데 하루는 preceptor였던 간호사가 “넌 왜 이렇게 질문이 많아?”라고 물어보기까지 했었다.
같이 공부를 하던 내 또래의 형님 한 분과 8살 차이가 나는 남학생 / 여학생 그리고 두 살 어린 여학생.. 이렇게 잘 어울렸었는데 모두 한국 유학생이고 한 친구 빼고 같은 학년이다 보니 실습 나가서 누가 좋았고 누가 싫었고 이런 얘기를 했었는데 결론은 우리에게 “친절”한 간호사들이 주로 좋은 간호사였었다. 물론, 친절했던 간호사들이 우리 얘기도 더 많이 들어주고 설명도 많이 해 주었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그런 면으로도 좋은 간호사였지만 혹 그중에 설렁설렁해도 우리를 괴롭히지 않으면 좋은 간호사로 간주했었다.
우여곡절의 2년의 시간을 보내고 결국 졸업을 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에세이의 무덤은 결국 사라졌고 졸업하지 못하고 영주권도 받지 못하고 다시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졸업과 함께 같이 사라졌다. 졸업과 동시에 널싱보드에 등록을 했고 간호사로 취업을 했고. IELTS 시험을 보고 그렇게 5 개월 후 그렇게 바라던 호주 영주권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