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과 취업

두 번째 학사모를 쓰다.. 그리고 간호사가 되다.

by 연금술사

큰 뜻을 가지고 시작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훌륭한 성적은 아니었지만 생존을 위해 시작한 간호 공부였지만 무사히 학업을 마쳤다. 성적은 우수하진 않았어도 다행히 시대를 잘 만나 간호사가 모자랄 때라 성적이 그렇게 크게 중요하진 않았다. 졸업을 하느냐 마느냐가 제일 중요한 때였다. 난 그 전쟁터에서 맨 뒤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2년을 공부하는 동안 몇몇의 학생들은 유학을 포기했던 친구들도 있었고 굳이 가지 않아도 될 험한 길을 선택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학업을 포기한 친구도 있었다. 아무리 간호사가 모자라서 졸업만 해도 취업이 되는 시기였다 하더라도 구설이 많이 학교를 선택하거나 영어공부를 등한시하거나 하는 것도 허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호주의 12월은 한 여름이다. 학기는 한국처럼 운영이 되니 매해 마지막 달이 그 학년의 마지막 달이 되는 셈이다. 2008년 12월에 졸업식을 했는데 한 여름에 정장을 입고 학사가운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한국처럼 동기라는 개념이 없으니 가까운 친구 혹은 가족 단위로 졸업식 며칠 전 학교에서 사진 몇 장 찍는 것이 내가 다녔던 학교의 졸업식 풍경이었다.


졸업식은 생각 외로 거창했다. 한국에서 대학 졸업식 때는 학생이 워낙 많으니 졸업장도 석박사가 아닌 이상 어디 정해진 곳에 가면 나누어 주었는데 호주의 대학 졸업식은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의미를 부여했다. 졸업식은 학교에서 하지 않고 시티 컨벤션센터에서 치러졌다. 모든 졸업생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대학 총장부터 모든 인사들이 나와 있었다. 이런저런 환영인사 축하인사가 끝나고 졸업장을 수여하는 순서. 학생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하며 강단으로 불렀다. 졸업장을 건네며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넸다. 나에겐 너무나도 새로운 경험이었고 감동이었다. 조금이라도 인기 있는 학생이 나오면 환호성으로 축제가 따로 없었다. 그 자리엔 인종, 종교, 지역, 출신에 대한 차별도 없었다. 모두 주어진 학업을 무사히 마친 졸업생들을 온전히 축하해 주는 자리였다.


12월에 졸업식을 하고 이듬해 1월 27일 첫 출근을 했다. 정형외과 병동.. 취업을 시켜준 병원도 고마왔고 몇 년간의 방황이 마무리 지어진 순간이었다.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병원에서 유니폼을 받았다. Flinders Medical Centre의 마크가 새겨진 파란색 셔츠와 진한 감색의 바지. 수년 전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와 같은 감격이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다.


“이 병원에 뼈를 묻으리라…”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Graduate Program으로 고용되는 건 정규직이 아니었다. 그런데 난 그것이 정규직이 된 줄 알고 정말 열심히 근무를 했다. Graduate Program은 간호대를 졸업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1년간의 training progam인데 난 이것이 정규직을 하려면 무조건 해야 하는 과정으로 착각을 했던 것. 처음 6개월은 정형외과 병동 그리고 나머지 6개월은 수술실에서 보냈다.


정형외과 병동은 많은 간호사들이 기피하는 병동 중에 하나이다. 말 그대로 골절환자가 대부분인데 거기에 Mental issue가 같이 있는 사람들도 있고 무엇보다 거동이 쉽지 않은 환자들이 많으니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정신적으로도 힘들 때도 있고. 골절과 정신병 혹은 치매 같은 것들이 함께 있는 환자를 보는 날은 나도 제정신을 차리고 있기가 쉽지 않았다.


간호사로 생존을 해야 했고 밉보이면 내 삶이 원하지 않는 롤러코스터를 다시 탈 수 있다는 생각에 약점부터 숨겨야 했다. 바로 영어.


출근하고 핸드오버받고 오전 일과던 오후 일과를 시작하면 주로 환자 주변에서 맴돌았다. 널싱스테이션에 머무는 시간을 최소화했다. 그 이유는 간호사들이 거기 앉아서 일을 하기도 하고 스몰톡도 하는데 무슨 얘기하는지 들어오지도 않을뿐더러 알아듣더라도 그것에 반응할만한 배경이 적었다. 그래서 그곳은 나에게 가시방석과 다름이 없는 곳이었다. 서류작성을 하거나 컴퓨터 기록을 해야 할 때를 제외하곤 항상 환자들 주변을 맴돌았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당시 같이 일했던 정형외과 간호사들이 잘 훈련된 간호사들이 많아서 배울 것이 많았다는 점이다. 아시안 간호사가 나를 제외하곤 중국인 간호사가 한 명 있었고 나머진 로컬출신 이거나 유럽에서 건너온 사람들이었다. 한두 명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굉장히 호의적이었고 물어보는 것에 대해 최선을 다해 가르쳐 주었고 곤란하게 하는 사람은 적어도 나에겐 없었다.


남호주 남쪽에 있던 핵심병원 정형외과 병동, 그곳이 나의 첫 번째 간호사 커리어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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