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첫 번째 직장

정형외과 병동, 멘탈헬스 환자들 그리고 보름달이 뜬 밤.

by 연금술사

2009년 1월. 인생에 생각지도 않았던 호주에 와서 어학연수 포함 3년을 공부한 끝에 남호주 공립병원에 취직이 되었다. 간호사도 인턴처럼 Graduate Program이란 것이 있는데 1년 동안 병원에 취직을 해서 교육도 받고 일도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Educator들이 정기적으로 병원 생활은 잘하는지 애로사항이 없는지에 대한 얘기도 하고 병동에서는 교육차원에서 Senior들과 함께 일하도록 팀을 만들어준다. 그런데 난 그런 것도 모르고 취직이 된 것이 곧 퍼머넌트 일자리를 구한 건 줄 알고 정말 기뻐했고 일할 때도 찬밥 더운밥 가리질 않았다.


처음 6개월은 정형외과 병동에 있었는데 대부분의 환자들은 뼈가 부러져서 거동이 쉽지 않은 환자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기피하는 병동 중에 하나였다. 이유는 아침마다 환자를 씻길 때도 혼자 못 움직이는 환자가 많았고 먹어야 하는 약들도 수술 후 먹는 항생제부터 시간 맞춰 먹어야 하는 진통제까지 투약 종류도 많았다.


병동에서 하루의 일과는 아침에 출근하면 나이트 팀으로부터 핸드오버를 받고 각자 할당된 환자 차트를 확인한 후 Cheat Sheet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했다. 몇 시에 투약해야 하는지 샤워는 했는지 밥은 먹었는지 그런 스케줄을 보기 쉽게 만들어서 각 병상이 있는 방에 붙여놓았다. 4주 근무에 나이트 근무는 4일이 주어졌고 연속 4일 나이트를 끝내면 좀비처럼 다닌 기억이 난다. 취업하고 한 달 후 둘째가 태어났고 둘째 덕에 8주를 쉬었다. 물론 휴가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때만 해도 호주 정부에서 주어지는 양육비로 8주를 지낼 수 있었다.


어학원 1년 그리고 대학을 2년을 다녔어도 영어를 사용하는 건 언제나 스트레스였다. 17년이 지난 지금도 그 스트레스는 여전하다. 그래서 난 항상 간호사들이 데스크 업무를 하는 곳 말고 환자 병상 옆을 맴돌았다. 호출 벨을 누르면 실시간으로 달려갔고 항상 병상을 돌며 필요한 건 없는지 물었다. 어쩌다 널싱스테이션에서 뭔가를 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할 땐 선임 근무자들에게 이런저런 질문들을 했다. 살면서 있는 시시콜콜한 얘기를 할 정도의 주변머리도 없었고 생존을 위한 생업전선이었기에 그다지 나눌 얘기도 많지 않았다. 요즘은 한국의 위상이 좋아져서 KPOP이나 한국 드라마 같은 걸 얘기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2009년만 해도 Korea라고 하면 남한인지 북한이니 물어보거나 아예 어딘지 모르거나 뭐 하는 나라인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더욱이 문화를 공유하고 공통의 대화주제를 끌어내기는 더욱이 어려운 때였다. 그렇게 지내다 하루는 동료 젊은 간호사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항상 궁금한 것만 있는 것 같아. 질문 말고 다른 얘기 할 얘긴 없어?”


그 친구가 악의를 가지고 한 얘긴 아니었는데 그들에겐 내가 그렇게 보였던 것이었다. 그런데 어쩌랴.. 난 그들과 특별히 나눌 얘기가 없는 걸.


이틀을 Special이라고 해서 특별한 상황인 환자를 돌봐야 하는 날이었다. 그 방엔 병상이 4개였는데 정신분열(Schizophrenic), 두 명의 치매 (Dementia) 환자 그리고 망상 (Hallucination) 이렇게 4명의 환자를 봐야 했다. 하루는 낮에 하루는 밤 근무였었다. 정신분열 환자는 약을 주면서 “이 약은 무슨 약이고 지금 내가 줬으니 먹는 시간이야”라고 반드시 얘기해 줘야 했는데 그날 밤 깜빡하고 그 말을 하지 않았다가 밤새도록 “나 아직 약 안 먹었어. 왜 약을 안주는 거야” 이 얘기를 들었다. 치매 환자는 고관절이 부러졌음에도 끊임없이 침대에서 나오려 했다.


마지막 망상 환자에게 약을 주려고 침대 발치에 서 있었는데 갑자기 그 환자가 “너 뒤에 온 사람은 누구야? “라고 물었는데 그때의 그 섬뜩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스페셜한 환자들과 하루를 보내면 내 정신도 이미 가출이 돼서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칠 수밖에 없었다.


익숙해지면 뭐든지 또 해내는 것이 사람이다. 정형외과여서 체력적으론 힘들었고 그래서 많은 신규 간호사들이 기피하는 병동이었다. 거기에 이렇게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환자까지 함께하면..


간호사나 널싱홈 케어러들 간에는 보름달 뜬 밤은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사실 그냥 달이 차고 지는 현상인데 정말 신기한 것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없던 일도 생긴다.


널싱홈에서 일했을 때는 치매 환자들이 잠도 자지 않고 무지성으로 돌아다니는 걸 봤고 정형외과 병동에선 밤새도록 환자들이 진통제를 달라며 잠을 못 이루고 호출벨을 눌러댔다. 미신 아닌 미신이 생길 지경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났고 보름달이 뜬 밤 근무가 걸리면 그저 하늘에 운을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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