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천국이라는 도피처,
그리고 불편한 통치

그리고 정말로, 그 나라를 원하고 있는가?

by 한자루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 옵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이 눈으로 볼 수 있게 오는 것이 아니다. ‘여기 있다!’ 또는 ‘저기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7장 20-21절




우리는 종종 ‘죽음’이라는 거대한 절벽 앞에서 지도를 꺼내 듭니다.

그리고 그 너머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천국’이라는 목적지를 좌표처럼 찍어보려 애씁니다.

나는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그리스도인들 뿐 아니면 누구나 한 번쯤 조심스럽게 스스로에게 물어봤을만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질문에는 하나의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죽어서 가는 곳”으로 이미 정해놓았다는 것입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성경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말하고, 심지어 “너희 가운데 있다.”고까지 말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죽음 이후로 밀어놓습니다.

마치 지금의 삶과는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천국이 우리와 조금 멀리 있기를 원하는지도 모릅니다.

천국이 좋지만 아직 그 나라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가 정말로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라면,

그 나라는 지금의 나를 그대로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원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계”라기보다,

지금의 나를 유지한 채 고통만 사라진 세계에 더 가깝습니다.


내 욕망은 그대로인데, 불안만 없어지는 세계.

내 방식은 그대로인데, 결과만 좋아지는 세계.

그것을 우리는 천국이라고 부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면서도,

동시에 그 나라가 지금 당장 임하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지금 삶에서 내려놓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이 말은 위로이기 전에 불편한 선언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가까이 와 있다면, 질문은 바뀌어야 합니다.

언제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느냐가 아니라, 지금 이 삶을 누가 다스리고 있느냐입니다.


우리의 삶은 작은 왕국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왕국의 주인입니다. 그래서 왕좌에서 내려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손해를 보게 될 때, 자존심이 상할 때, 조금 덜 가져야 할 때, 우리는 금방 알게 됩니다.

우리 삶이라는 왕국의 왕이 누구인지.

그런데 이상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분명 손해인데도 정직을 선택할 때, 외면할 수 있었는데도 누군가의 아픔 앞에 멈춰 설 때, 미워하는 것이 더 쉬웠는데 조금 더 이해하려 애쓸 때.

그 순간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질서가 작동합니다.

내가 다스리던 방식이 아니라, 다른 기준이 들어와 있는 느낌.

그 짧은 순간에 우리는 스치듯 경험합니다.

아, 이게 하나님 나라일지도 모르겠다고.


자 이제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우리는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죽음 이후의 정보를 묻는 질문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과 맺고 있는 관계의 깊이를 비추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질문을 할 때 사실 이런 것을 함께 묻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그분의 사랑을 정말 신뢰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관계가 죽음 이후에도 이어질 수 있는가?


이 질문에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장 38–39절

이 말씀은 관계에 대한 선언입니다.

죽음조차 하나님의 사랑을 끊어내지 못한다는 것, 그것은 인간의 육체적 생명의 한계가 하나님의 사랑의 한계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지금,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삶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너의 육체적 삶이 끝난다 해도 너는 여전히 나의 사랑 안에 머문다.”


이 말씀은 죽음 이후의 삶이 막연한 공백이나 소멸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어지는 실제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존재합니다. 천국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은 막연한 희망이나 죽음 이후의 가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 있는 확실한 현실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일지 모릅니다.


나는 정말 그 나라를 원하는가.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계를, 정말로?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단순히 끝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더 이상 나의 주인이 아닌 세계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문제는 천국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약속된 현실입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지금 이 삶에서, 나는 누구의 통치를 선택하고 있는가.

그리고 정말로, 그 나라를 원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