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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AI가 기후 변화 해결사라고?

진짜 해결사는 인간이어야 한다.

by 한자루




AI가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잠시 멈칫했다.
그동안 AI가 바둑을 두고, 소설을 쓰고, 우리 대신 이메일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며 감탄하긴 했지만,
이제는 지구까지 구하겠다고?

한편으론 솔깃했다.
"AI가 기후 변화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줄 수 있다면?"
"태풍과 홍수 같은 재해를 예측하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법을 계산해 준다면?"

하지만 또 다른 생각이 스쳐 갔다.

거대한 서버룸에서 쉬지 않고 돌아가는 AI 훈련 시스템,
그 시스템을 식히기 위해 엄청난 양의 전기를 소비하는 냉각 장치들.
만약 AI가 기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면?
그렇다면 AI는 문제 해결사가 아니라,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내는 존재가 아닐까?


기후 변화는 복잡하다.
지구 온도 상승, 탄소 배출, 해수면 변화, 기상 패턴 등, 너무 많은 변수가 얽혀 있어, 인간이 손으로 계산하기엔 불가능한 문제다.

AI는 바로 이런 복잡한 문제를 푸는 데 강하다. 수십 년 치 데이터를 분석해 기후 변화를 예측하고,
태풍과 홍수의 경로를 계산하며, 산림 파괴를 감지하고, 재생 가능 에너지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찾아낸다.

우리는 AI를 활용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어느 지역이 가뭄에 더 취약한지, 어느 해변이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위험이 있는지, 어디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야 가장 효율적인지.

과거에는 연구자들이 몇 년씩 걸려 분석하던 일들을, AI는 단 몇 시간 만에 해낸다.

이쯤 되면 AI가 ‘기후 변화 해결사’라는 말도 괜히 나온 게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좀 아이러니한 문제가 등장한다.
AI가 기후 변화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데 도움을 주는 건 맞지만, 정작 AI 자체가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소비하는 괴물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2019년 매사추세츠대학교 애머스트 캠퍼스의 연구에 따르면, 대형 AI 모델 하나를 훈련하는 데 들어가는 전력량이 자동차 한 대가 5년 동안 내뿜는 탄소 배출량(약 284톤 CO₂)과 맞먹는다고 한다.


AI는 데이터를 학습하고, 훈련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전력을 소비하고, 그 전력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다시 탄소가 배출된다.

기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를 쓰는 건 좋은데, 그 AI를 돌리느라 또 다른 환경문제가 생겨나는 건 아닐까?

이쯤 되면 AI도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도와주러 왔는데, 내가 문제를 더 키우고 있는 건가?"


인터넷에서는 이런 농담이 떠돈 적이 있다.

"AI가 환경을 구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인간을 없애는 것이다."

AI가 기후 문제를 분석하다가 어느 날 결론을 내릴지도 모른다.
"인간이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없애야 합니다."

이쯤 되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농담이 불편한 이유는 그 논리가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석탄과 석유를 태우고, 편리함을 위해 일회용 제품을 쓰고, 환경 보호가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자동차 에어컨은 꺼지지 않는다.

AI가 냉정한 시선으로 데이터를 분석한다면, 과연 인간을 ‘문제 해결의 주체’로 볼까?
아니면 ‘문제의 근원’으로 볼까?


우리는 AI에게 기후 변화를 해결할 방법을 묻는다.
하지만 기술은 답을 주지 않는다.
기술은 그저 데이터를 분석할 뿐, 그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결국 인간의 선택이다.

AI가 에너지를 절약하는 데 쓰일 수도 있고, 반대로 AI가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괴물이 될 수도 있다.
AI가 환경 보호를 위한 도구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AI가 "인간이 문제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결국, 문제는 AI가 아니다.
우리가 AI를 어떤 방향으로 사용할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정말 변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가 핵심이다.

AI가 냉정한 결론을 내리기 전에, 우리는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정말 문제는 AI일까? 아니면 우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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