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함께 변해가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마주했을 때, 내가 알던 나의 얼굴이 낯설게 보였다.
눈가에 자리 잡은 가느다란 주름과 미세하게 달라진 피부의 결.
거울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은 여전히 나지만, 그 얼굴은 더 이상 젊은 시절의 나와는 다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이렇게 서서히 찾아와, 어느 날 변해버린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된다.
하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단지 외모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내면의 깊은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변화하고, 생각하는 방식 역시 달라진다.
젊은 시절에 그토록 애태우며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이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느껴지고,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설정하게 된다.
그 우선순위는 과거와는 다른 기준에서 나온다.
이제는 바삐 달려가는 것보다, 멈춰 서서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남길지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가며 좋은 점이 있다면, 이제 머리만 보아도 그 끝에 어떻게 흘러갈지 꼬리까지 짐작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어떤 일은 아픔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감사한 일로 남게 되고, 또 어떤 것은 기쁨으로 시작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픔으로 변하기도 한다.
싹을 보면 그것이 어떤 꽃을 피우고, 어떤 열매를 맺을지 알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이가 들면서 지혜가 늘어간다는 뜻이 아닐까.
모든 싹은 처음엔 여리고 초록이다.
그 싹이 자라면서 어떤 것은 가시를 내고, 어떤 것은 꽃을 피우며, 또 어떤 것은 충실한 열매를 맺는다.
이것은 삶의 간단한 진리다.
이런 진리만 알고 있어도, 어떤 씨앗을 고르고, 심고, 뿌려 가꾼 뒤에 나중에 그 결과가 내 바람과 다르더라도 절망하거나 당혹스러워할 일이 적어진다.
가시를 내는 것으로 울타리를 만들고, 꽃을 내는 것은 화단에 심으며, 열매를 맺는 것은 논과 밭에 옮기면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어떤 일에 마음 졸이거나, 너무 기뻐하며 기대하는 것보다,
그 모든 일들을 차분히 마음에 담고, 온전히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고, 우리의 삶도 그렇듯 자연의 일부이다.
시간을 겪으며 알게 된 진리는 늘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서 우리는 삶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가을에 잎이 떨어지지만, 우리는 그 잎이 언제 떨어졌는지 모를 뿐 아니라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어느 순간 나무 아래에 흩어진 낙엽을 발견할 뿐이다.
나뭇잎은 차분히 자신의 역할을 마치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나무는 그 순간을 억지로 붙잡지 않으며, 잎이 떨어지는 시간을 계산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어느 날 쌓인 낙엽들을 바라보며 시간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이 드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늘 젊음이 우리 곁에 머물 것 같았지만, 어느 순간 우리 자신도 모르게 세월의 흔적을 느끼고,
그제야 삶이 흘러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강물은 바위에 부딪히고, 굽이쳐 흐르지만 결코 자신을 재촉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마치 그 강물처럼 흐름을 받아들이고 매 순간을 음미하는 일이다.
삶의 굽이마다 우리는 새로운 기쁨과 슬픔을 만난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은 결국 나를 더 깊은 사람으로 만든다.
깊이 있는 나이 듦이란 소유보다 내려놓음을, 성취보다 평온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가진 것을 지키려는 마음에서 벗어나 비우고 내려놓는 여유로 부터 온다.
마치 가을의 나무가 잎을 하나씩 떨구고, 결국에는 겨울의 빈 가지로 서 있듯, 우리는 더 이상 잃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오히려 그 비움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진정한 나이 듦이란 단순히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이 듦은 우리가 얼마나 격렬하게 삶을 경험했는지, 얼마나 열정적으로 살아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삶의 매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기쁨과 슬픔, 사랑과 아픔을 모두 경험한 사람만이 진정한 나이 듦을 완성할 수 있다.
자연의 흐름이 그러하듯, 우리는 현재를 충실히 살아야만 비로소 성숙한 나이 듦에 도달할 수 있다.
시간의 흐름에 단순히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 속에서 내 삶을 격렬하게 느끼고, 경험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나이 듦의 과정인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나이 듦이란 아름다운 여정이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끝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보다 성숙해 가는 나 자신을 발견해 가는 과정이다.
더 이상 세상의 기대에 부응할 필요도, 완벽해야 할 이유도 없다.
내가 걸어온 길을 소중히 여기고, 그 길 위에서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마치 가을이 깊어갈수록 나무들이 더 아름다운 색을 띠는 것처럼,
우리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 깊어지고, 풍부해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