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햇살과 지금의 나
어린 시절의 여름은 참으로 특별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여름날들은 마치 끝없이 펼쳐진 시간의 바다처럼 느껴진다.
매일매일이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했고, 하루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우리는 그 느린 시간을 한껏 누리며 살아갔다.
매 순간이 찬란하게 빛났고, 그때의 우리는 아직 세상의 복잡함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존재들이었다.
어린 시절의 여름은 마치 한 편의 동화 같았다. 그때는 작은 일에도 크게 웃었고, 햇살 아래에서 땀을 흘리며 뛰어노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다 내 것인 양 기뻐했다. 두 발로는 뜨거운 땅을 밟고, 손으로는 초록빛이 가득한 풀을 만지며, 한가로운 바람 속에서 마음껏 소리를 질렀다.
여름의 모든 것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햇살이 찌는 듯이 내리쬐는 순간에도, 우린 그 속에서 자유로움과 기쁨을 느꼈다.
그 자유가 영원할 거라 믿었고, 그 여름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때는 시간이란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다. 시간의 무게를 느낄 필요도 없었다.
해가 지면 아쉬워하면서도, 내일은 더 재미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우리는 어른들이 항상 말하는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시간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충분했고, 여름은 무한히 길게 펼쳐진 터널 같았다.
그 터널을 지나면서도 우리는 그 끝을 걱정하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그렇게 우리는 순수한 믿음 속에서 여름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다르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여름의 끝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제는 여름이 되면 다가올 가을을 떠올리게 되고, 눈앞의 순간보다는 그 뒤에 있을 무언가를 생각하게 된다. 아이였던 나와 어른이 된 나는 시간에 대한 감각이 전혀 다르다.
어린 시절의 여름은 무한한 시간이었지만, 어른이 된 지금의 여름은 짧고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일 뿐이다.
우리는 그때처럼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게 되었고, 여름의 끝을 더 이상 무심코 넘기지 않는다.
나는 가끔은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어린 시절의 여름, 그 끝없이 펼쳐진 자유의 시간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
어린 시절의 여름은 단지 더운 날씨와 긴 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순수했던 시간,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시절의 나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그때 나는 바람 한 줄기에도 기뻐했고, 맨발로 뜨거운 땅을 밟으며 자유로움을 느꼈다.
더위조차도 마치 나를 둘러싼 커다란 요람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의 나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시간의 무게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여름이 사무치게 그리운 것은 아마도 그때의 나를 다시 만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의 나는 현재의 나보다 훨씬 가벼웠다.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매일매일 무언가를 이뤄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 살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는 더 이상 무한하지 않다.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고, 우리는 그 부족한 시간을 쪼개어 더 많은 일을 해내야만 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여름은 그 모든 것과 거리가 멀었다.
나는 무엇을 이뤄야 할 필요도 없었고, 시간의 한계를 걱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하루를 온전히 즐기면 그만이었다.
목표도, 성취도,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 살아갈 수 있었던 그 시절의 나.
그래서 어쩌면 그때의 여름이 이토록 그리운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서 더욱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때의 여름이 완벽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어린 시절의 여름이라고 해서 늘 행복하고, 기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지루하고, 때로는 외로웠던 순간들도 있었다.
친구들과 다투기도 했고,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이루지 못해 실망했던 순간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이 지난 지금에선 그 여름이 마냥 아름다웠다고만 기억된다.
그 여름이 특별했던 이유는 모든 순간들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가 그 기억 속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들만을 골라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 시절의 여름을 그렇게 아름답게 기억하는 걸까?
그것은 아마도 현재의 삶이 그때보다 아름답거나 그리 완벽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의 나에게는 끊임없는 책임감과, 해야 할 일들,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들이 꼬리표 처럼 붙어 있다.
지금의 여름은 더 이상 한없이 늘어진 시간의 그림자 속에서 자유롭게 흘러가는 날들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과거의 여름을 떠올리며 위로를 찾는다.
그때의 순수한 나, 자유로웠던 나를 다시 만나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시간이 왔다.
어린 시절의 여름은 그때의 나에게 남겨두고, 현재의 나로서 새로운 여름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의 나를 다시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시간에 머물수만은 없다.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나 자신을 위로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는 이제 새로운 여름을 맞이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어른이 된 지금의 여름은 어린 시절의 여름과는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다름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행복을 찾을 수 있을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어린 시절의 여름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은 자유로움과 순수함이다.
그리고 그 시절의 여름을 떠올리는 지금, 우리는 그 기억을 단지 추억으로만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여름 속에서도 그 자유로움을 다시 찾아야 한다.
시간이 지나도, 우리의 내면에는 여전히 그때의 나처럼 순수한 부분이 남아 있다.
오늘 나는 그것을 다시 꺼내어, 그 시절 여름 속으로 놓아주려고 한다.
그 속에서 다시 나 자신을 만나기를. 그리고 지금의 여름에서 그 순수한 나를 다시 만나기를.
그 시절의 여름은 여전히 나에게 푸른 파도소리처럼 많은 것을 속삭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