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죽이는 건 칼보다 문장이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하루에 수백 개의 댓글을 읽는다.
그 중엔 이런 말이 섞여 있다.
“살 가치 없다.”, “그냥 사라져라.”, “무덤에나 가라.”
이 문장들은 정확하다. 가리고 있지 않다. 정말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그런데 이 문장들은, 법적으로는 괜찮다.
그게 문제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화가 나 있다. 정치, 연예, 기사 댓글, 커뮤니티.
어딘가를 향한 불만이 넘쳐나고, 그 불만은 타인을 향해 쏟아지는 방향성 없이 발사된다.
그 대상이 공인이든, 유튜버든, 일반인이든 ‘이슈가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은 단지 쏟아지는 분노의 접시가 된다.
댓글은 마치 반사신경처럼 작성된다.
주먹을 쥐는 대신, 문장을 날린다.
종종 사람들은 말한다.
“비판할 자유가 있다.”, “공인이면 감수해야 한다.”, “팩트 말한 거 가지고 왜 그러냐.”
하지만 대부분의 악플은 사실이나 논리와는 무관한 정서적 공격이다.
“생긴 것부터 불쾌하다.”, “말투가 역겹다.”, “어디서 감히 티를 내냐.”
이건 의견이 아니라 감정의 폭행이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런 감정은 다수가 모이면 현실을 바꾼다는 점이다.
악플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사례는 반복된다.
아이돌, 배우, 운동선수, 크리에이터.
그리고 그들은 떠난 후에야 사람들은 말한다.
“그럴 줄 몰랐다.”, “악플 때문인 줄은 몰랐다.”, “이 정도로 힘들었을 줄은…”
하지만 그 말들은 죽은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다.
오직 그들의 메신저 창, 댓글란, DM 속에서만 지금도 그 문장들이 남아 있다.
가장 잔인한 폭력은 정당하다고 믿는 감정에서 나온다.
나는 얘가 싫었고, 얘는 문제가 있었고, 그래서 나는 말할 권리가 있었고, 그 말이 그를 죽일 줄은 몰랐다.
이 4단 논리는 가해자 없는 죽음을 만든다.
말의 끝은 죽음인데, 시작은 감정이라 책임이 분산되고, 의도는 흐려지고, 범인은 사라진다.
우리는 사람에게
“이제 사라져라”, “목숨 끊어라”, “진짜 너 하나 없어진다고 아무 일도 안 생긴다” 같은 말을 하고도,
“그럴 뜻은 아니었다”고 말하면 면책된다.
그게 이상하지 않은가?
어떤 칼은 베이지 않으면 무죄고, 어떤 말은 죽이지 않으면 괜찮다는 법리.
그 틈에서 문장이 칼보다 가벼운 세상이 유지된다.
익명성은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
하지만 감정을 분출하는 사람들은 그 책임이 ‘다수성’ 안에 흩어진다고 믿는다.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
“어차피 다들 말하고 있는데 뭐.”
그 순간, 그 사람은 ‘폭력의 일부’가 된다.
의도가 없더라도, 방아쇠에 손을 올린 사람 중 하나로 남는다.
사람을 죽이는 건 칼일 수도 있다. 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을 죽이는 건 말이다.
특히, 내가 아닌 수십 명이 똑같은 말을 할 때.
그 말이 쌓일 때. 그 말이 반복될 때.
죽음을 만든 범인은 딱 한 사람이 아니라
“별거 아니었다고 말하는 모두”일지도 모른다.
악플은 비난이 아니다. 그건 집단적 감정이 만든 총이다.
그리고 그 총은 지금도, 누군가의 머리 위를 겨냥한 채 떠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