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따라하게 만들었는가
우리는 누구에게도 가르친 적이 없다.
화를 참지 말라고 한 적도, 때리라고 한 적도, 칼을 드는 법을 알려준 적도 없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것을 배운다.
직접 가르친 기억은 없지만, 우리는 어디선가 그들이 보게 했고, 듣게 했고, 따라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물어야 한다.
그들은 대체 누구를 보고 누구에게 배운 것일까?
청소년 모방 범죄는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예고 없던 폭발이 아니라, 오랫동안 축적된 관찰의 결과다.
그들은 본다.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영상을 사람들이 좋아요 누르는 장면을.
혐오와 분노로 구성된 언어가 영향력 있는 어른의 말이 되는 과정을과 거짓과 조작이 콘텐츠가 되고, 폭력이 조회수가 되며, 무책임이 유행이 되는 사회를.
아이들은 배운다.
“말보다는 자극이 빠르고, 감정보다는 파괴가 잘 통한다.”
가해 청소년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유튜브에서 본 거예요. 걔도 처음엔 그냥 장난이었어요.”
“진짜 다칠 줄은 몰랐어요. 진짜 될 줄은 몰랐고요.”
사람들은 말한다.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무섭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하지만 정작 그들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해본 것’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그냥’이라는 말 속에 우리가 만들어준 사회의 룰북이 있었다.
사건이 터지면 뉴스는 항상 말한다.
“청소년의 충격적인 일탈”, “도를 넘은 장난”, “자극적인 미디어의 부작용.”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한다.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누가,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바꾸자는 건지는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답은 사회 전체의 자기 반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기분 나쁘게 여기도록 학습된 세대다.
아이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공감을 배우지 못해서가 아니다.
공감이 필요 없는 사회 속에서 자라났기 때문이다.
좋아요는 감정을 요하지 않는다. 조회수는 판단을 요구하지 않으며 유행은 스크롤 한 번이면 충분하다.
감정을 설명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구조, 타인을 존중하지 않아도 외면당하지 않는 이 모든 시스템이, ‘비공감적 인간’을 길러낸다.
그중 일부는 어느 날 칼을 들고 나타난다.
이건 단지 청소년의 일탈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를 따라 한 것이다.
그들이 뱉은 말, 그들이 선택한 도구, 그들이 찍어 올린 영상, 그들이 자랑처럼 보낸 메시지.
그 모든 것에 우리의 말투, 우리의 논리, 우리의 욕망이 스며 있다.
우리는 누구를 따라 하게 만들었는가.
그 답이 불편할수록, 지금 당장 바꿔야 할 것들을 행동으로 옮겨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