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감정노동자의 비명

“죄송합니다”라는 말 뒤에 감춰진 폭력

by 한자루




“이따위 서비스 하려고 여기 다녔어?”
“너 고객한테 말대꾸했지?”
“사장 나오라 그래, 니 얼굴 보기 싫으니까. 사장 나오라 그래.”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뿐이었다.

“죄송합니다.”

그러고 나서도 한 번 더. “죄송합니다.” 그리고 다시, “죄송합니다.”

그 말은 사과가 아니라
사회가 감정노동자에게 강요한 ‘표현 허용치’다.


감정노동자란, 말 그대로 감정을 억누르고, 감정을 대신해주는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 말을 편하게 듣는 순간, 그 말은 무기가 된다.

고객의 기분이 나빠졌다는 이유로, 회사의 실수가 감춰져야 한다는 이유로, 소통이 아니라 '하대'가 관행이 되었다는 이유로 그들은 늘 죄송하다고 말해야 한다.

실제로 잘못하지 않았어도. 상대가 분명히 무례했어도.그들은 책임이 아니라, 감정의 쿠션을 떠안는다.

고객은 왕이 아니다. 하지만 이 사회는 고객에게 감정의 지배권을 줬다.

반말을 해도, 욕을 해도, 인격 모독을 해도, “고객이 화났다”는 이유로 직원이 경고받는다.

그 순간, 우리는 말한다.
“기분 풀어드릴게요.”
“그냥 죄송하다고 하세요.”
“사과라도 하세요, 일 커지기 전에.”

그 말들은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사람을 무너뜨리는 말이기도 하다.


감정노동은 업무가 아니라 구조다.

그리고 이 구조는 플랫폼, 기업, 소비자가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고 분노를 배출할 수 있게 해준다.

말하자면 친절이라는 가면을 씌운 감정 쓰레기통이다.


어떤 상담원은 전화를 끊고 구급차에 실려 갔다.
어떤 알바생은 퇴근 후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
어떤 항공 승무원은 고객의 협박에 트라우마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뉴스는 말한다.
“업무 중 갈등.” “소통 실패.” “서비스 미흡.”

아니다.
이건 단순한 스트레스가 아니다. 이건 폭력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내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다그치고, 굴복시키고, 침묵하게 만들 수 있는 사회가 되었을까.

감정은 거래할 수 없다. 감정은 전달될 수는 있어도, 배상되거나 요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용서받기 위한 말이 아니라 비명을 삼킨 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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