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불을 질렀고, 누가 침묵했는가
어느 날 아침, 이름도 얼굴도 알려지지 않았던 한 사람이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이유는 단 하나, 누군가가 고발했다는 사실.
그 고발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글이 빠르게 퍼지고, 캡처되고, 공유되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사라졌다.
우리는 지금, 사실이 검증되기도 전에 누군가를 심판하고, 사과할 기회도 없이 불태우는 디지털 화형식의 시대에 살고 있다.
중세 유럽에서 이단자를 불태울 때, 진짜 목적은 죄의 입증이 아니었다.
공공의 증오를 ‘정화’라는 이름으로 소비하는 일이었다.
지금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불타는 사람들’도 같다.
누군가 실수를 했다. 혹은, 실수를 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구워야 했다.
그래야 이 세계가 안전해진다는 착각 속에서, 우리는 불을 키운다.
타인의 파멸을 ‘정의’로 부르며.
인터넷에는 세 가지 특성이 있다.
익명성(책임을 지지 않는다.), 속도( 감정이 사실보다 빠르다.), 집단성(나 혼자 한 게 아니라는 안도.)이다.
이 조합은 언제든 누군가를 수천 개의 손가락이 겨누는 표적으로 만들 수 있게 한다.
그 손가락들은 말한다.
“불쌍하긴 한데, 본인이 문제 만든 거잖아.”
“사실이면 어쩔 거야?”
“나 하나쯤이야.”
그리고 그 말이 반복될수록 그 사람은 사라져도 괜찮은 존재가 된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잘못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하지만 정당한 비판과 집단적 인격 말살은 전혀 다른 문제다.
타인의 주소, 학교, 가족까지 퍼트리는 행위, 하루 수백 건의 DM과 댓글로 ‘죽으라’고 말하는 행위, 해명 기회를 주지 않고 조롱부터 시작하는 태도.
이건 정의가 아니라 복수의 유희다.
사람을 공격하면서 자신이 옳다는 감정에 취해버리는 구조.
디지털 화형식의 또 다른 문제는 끝이 없다는 점이다.
원글 작성자는 사라지고 퍼뜨린 사람은 기억하지 않는다.
플랫폼은 관심을 잃고 대상만 남는다.
그 사람은 어디선가 직장을 잃고, 가족에게 외면받고, 죽음을 고민하며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느냐”라고 묻는다.
그 물음에 대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수를 지적할 수는 있다.
비판도 가능하다.
하지만 한 사람의 삶 전체를 여론으로 지워버리는 순간, 그건 더 이상 ‘정당한 분노’가 아니다.
그건 단지 자기 기분을 누군가의 인생에 투사한 행위다.
사람을 태운 자리에는 잿더미도 사과도 남지 않는다.
그저, 다음 사람을 기다리는 빈 공간만 남는다.
그다음 사람이 나일 수도 그리고 당신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