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우월감의 착각
“그건 아니지.”
“이건 좀 선 넘었네.”
“사과는 제대로 하든가.”
인터넷에선 매일 누군가가 재판을 받는다.
법정도 없고, 증거도 없고, 판결문도 없지만 판사만은 넘쳐난다.
그리고 그 판사들은 자신의 말이 정의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는 틀리지 않았다’는 감정 안에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누군가를 평가하려면 적어도 책임이 필요했다.
직책, 직업, 혹은 전문성 같은 조건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SNS와 댓글 창은 ‘감정만 있으면 판단이 가능하다’는 착각을 퍼뜨렸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유 없이 화내고, 사실 없이 단정하고, 비판과 조롱을 구분하지 않는다.
이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팩트만 말했을 뿐인데요?”
“잘못한 사람이 문제죠.”
“나는 할 말을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그 말은 분노를 정당화하려는 장치다.
자신들도 완벽하게 지키지 못하는 도덕적 기준을 높게 설정하고, 상대가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공격은 ‘비판’이 되고, 비판은 ‘정의’가 된다.
이 구조 안에서는 어떤 말도 폭력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감정은 옳으니까.”
우리가 흔히 놓치는 건 이거다.
정의는 방향이 아니라, 과정이다.
정의롭다는 건 내가 옳은 쪽에 있다는 게 아니라, 내 판단이 충분히 의심받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태도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의심보다 확신을 먼저 퍼뜨리고, 과정보다 결론을 먼저 내린다.
그리고 그 결론은 대부분 누군가를 향한 비난이다.
온라인 공간의 선과 악의 이분법적 디지털 환경이다.
그래서 단순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 사람은 나쁜 사람, 저 사람은 착한 사람, 나는 나쁘지 않은 사람.
이 서사 구조 안에서 비판은 정체성이고, 분노는 소속이다.
그 구조는 ‘생각하는 존재’보다 ‘옳은 존재’가 되기를 쉽게 만든다.
자신이 옳다고 느끼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그 감정이 타인을 해치는 데 쓰이는 순간, 그건 더 이상 도덕이 아니다.
그건 우월감이다. 심판자가 되는 건 어렵지 않다.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이 정말 ‘정의’였는지 아닌지는 말을 맞은 사람이 아니라
말을 던진 후의 당신이 판단해야 한다.
정의란, 우리가 옳다고 느낄 때일수록 더 천천히 말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