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수도를 옮기는 목수

조코 위도도

by 한자루
출생 : 1961.06.21. 인도네시아
수상 : 2016년 아자어워드 자랑스러운 아시아인상 정치부문상
경력 : 2014.10.~2024.10. 인도네시아 대통령
2012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주 주지사
2010 인도네시아 자바주 수라카르타시 시장
2005 인도네시아 자바주 수라카르타시 시장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그를 애칭처럼 줄여 “조코 위”라고 부른다.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더 자연스러울 정도로, 그는 국가 권력의 상징이라기보다 동네 형 같은 존재감을 가진 정치인이다.

인도네시아 현대정치를 이야기할 때, 조코 위도도만큼 ‘정치학 교과서의 기대치를 벗어난 인물’도 드물다.
그는 엘리트 가문 출신도 아니고, 군 장성도 아니었고, 심지어 부유층도 아니었다.
원래 직업은 목수, 그리고 가구점 사장.
그러니까 “정치판은 금수저들이 하는 것”이라고 믿던 인도네시아 국민 앞에서 그는 조용히 말없이 등장해 말했다.

“저는요. 그냥 가구 만들다 왔습니다.”

그 담백함은 놀라움이었고, 신선함이었고, 때로는 반칙에 가까운 설득력까지 있었다.

하지만 그 온화한 얼굴 뒤에는 인도네시아라는 거대한 퍼즐을 조용히, 그리고 집요하게 맞춰온 특유의 정치 철학이 숨어 있다.

그리고 나중엔 나라 전체를 ‘조립식 가구’처럼 차근차근 다시 조립한 대통령이 되었다.




조코 위는 슬럼가에 가까운 강변에서 자랐다.
곤돌 지역의 작은 판잣집.
물은 수시로 불어나 집을 삼켰고, 가족은 몇 번이고 쫓겨나듯 이사를 다녔다.

그는 훗날 이렇게 회상한다.

“나라가 약하면, 가난한 사람은 더 쉽게 떠밀립니다.”

이 경험은 그의 정치 철학의 뼈대를 만들었다.

기반시설이 약하면 국민이 위험하다.
부패는 가난한 사람을 가장 먼저 공격한다.
정치는 삶의 현장에서 시작된다.


조코 위의 도로, 항만, 철도 국가사업에 집착한 인프라 정책은 어린 시절 홍수와 철거를 겪으며 생긴 ‘삶의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즉,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이미 정치를 삶의 물리적 문제로 이해하는 법을 배웠던 것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그는 목수였다.
조코 위는 나무를 만지며 정치보다 더 정교한 ‘사람의 결’이라는 것을 배웠다.

고객이 화를 내며 옷장이 삐걱거린다고 항의했던 날, 그는 침착하게 말했다.

“제가 틀렸다면 고치고, 제가 맞아도... 그래도 고치겠습니다.”

그 답변에는 수십 년 후, 국가적 갈등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그의 태도가 담겨 있었다.
조코 위는 설득하기보다 고쳤고, 분노하기보다 손질했다.
국가 운영조차 마치 오래된 책상을 수리하듯 신중한 손끝으로 진행하려 했다.

세상이 갈라지고 정치가 과열될수록 그의 방식은 오히려 더 독특하게 빛났다.


조코 위의 정치적 출발점은 자바주 수라카르타시 시장이 되면서부터였다.
그는 시장실보다 현장을 더 자주 찾았고, 공무원 회의보다 시민의 집에 먼저 방문했다.

정장을 고집하는 정치판에서 그는 체크 셔츠를 입었고, 과장된 제스처 대신 조용한 미소, 뒤에서 고함치던 정치인들과 달리 앞에서 침묵했다.

인도네시아 정치가 오랫동안 힘 있는 집단의 자산이었음을 생각하면 조코 위의 등장 방식은 거의 사건에 가까웠다.

정치판에 등장한 그의 모습은 VIP라기보다는 친절한 동네 아저씨에 가까웠다.

정장 대신 체크셔츠, 연설 대신 미소, 권위 대신 성실함.

그는 시장이 되었고, 주지사가 되었고, 결국 대통령이 되었지만 여전히 SNS에는 “오늘은 나시고랭이 땡기네요” 라는 글을 올렸다.

국민들은 생각했다.
“아… 저 사람은 진짜 우리 동네 슈퍼 앞 벤치에 앉아 있어도 자연스럽겠다.”

그리고 2014년 대선에서, 국민들은 “가장 덜 정치인 같은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대통령이 되었다고 모든 것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규모의 민주주의 국가 중 하나지만, 문제는 너무 크고, 너무 다양하고, 너무 시끄럽다는 데 있다.

가짜뉴스, 종교 갈등, 정치적 혐오의 파도가 언제나 넘실거렸다.

인도네시아 정치에서 부패는 거의 기후 현상에 가깝다.

비가 오는 것처럼, 부패도 ‘그냥 존재하는 것’이었다.

조코 위는 이에 맞서기 위해 KPK(부패척결위원회)를 적극적으로 지지했지만, 정치 세력 간 충돌로 개혁 속도는 종종 늦춰졌다.

그는 전쟁터의 장군이 아니라 매일 의자를 조금씩 옮기는 내부 개조자 같은 방식으로 싸웠다.

종교적으로도 조코 위는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공격을 수차례 받았다.

“중국계의 꼭두각시다.”, “기독교로 개종했다.” 등 근거 없는 음모론도 퍼졌다.

하지만 그는 맞대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중용·온건·실용으로 일관하며 종교 갈등을 최소화하려 했다.

그 덕에 비판도 많았다.

“대통령님, 너무 조용합니다.”
“지금은 침묵할 때가 아니죠.”

하지만 조코 위는 결코 고함치는 정치인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소리 대신 시스템을 움직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최대 난제 중 하나는 자카르타 침수와 도시 과밀 문제였다.

자카르타는 이미 가라앉고 있었다.
지반이 내려앉고, 홍수는 반복되고, 도시의 수명은 한계에 다다른 듯 보였다.

그는 이를 바라보고 목수 시절의 직관을 꺼내 들었다.

“이 집은 더는 수리로 안 됩니다. 새로 지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국토 면적보다 넓은 나라에서 국가의 ‘수도’를 통째로 옮기는 세계적 규모의 리모델링이 시작되었다.

조코 위는 “자카르타는 더 이상 수도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2022년 공식적으로 수도 이전 법안을 통과시켰다.

새 수도 이름은 누산타라(Nusantara).

동칼리만탄(보르네오 섬)에 위치해 있으며, 환경 파괴 우려에도 불구하고 ‘균형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추진되었다. 대통령궁, 장관급 청사 일부, 행정도시 인프라(도로·전기·수자원·통신) 등은 이미 착공되어 상당 부분이 완성되었다.

조코 위의 임기 마지막 해였던 “2024년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을 누산타라에서 개최한다.”고 발표했고 실제로 국경절 행사 일부가 새 수도에서 진행되기도 했다.
차기 정부도 사업 자체는 취소하지 않고 “속도 조절” 형태로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는 이미 새로운 방향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면적이 유럽만 하고, 종교도 다양하고, 부족, 언어, 도시가 모두 다르다.

이 난리를 조용히 다루는 대통령이 있다는 것 자체가 사실 기적에 가깝다.

조코 위가 10년 동안 만든 변화는 TV 뉴스에서 손뼉 칠 만한 드라마는 아니었지만, 국가의 골조를 바꿔놓을 만큼 꾸준했다.

그는 말 대신 도로로 말했고, 강경함 대신 인내로 리더십을 증명했다.

조코 위는 대단한 연설가도 아니고, 이념적 논객도 아니다.
대신 그에게는 독특한 철학이 있다.

“좋은 정치는, 시민이 정치 얘기를 잊어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그의 목표는 무대 중앙이 아니라 무대 장치 뒤에서 조용히 조명 각도를 조정하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정책의 우선순위도 명확했다.

인프라 구축 (철도, 항만, 고속도로, 산업단지), 실용주의적 경제정책, 중국·일본·서구를 오가는 균형 외교, 중앙집권보다 행정 효율, 종교 갈등 완화.

특히 인도네시아처럼 무슬림이 다수이지만 종교적 스펙트럼이 넓은 나라에서 조코 위의 중도적·저자극적 리더십은 독특한 가치가 됐다.

2024년, 그는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다.
하지만 그가 남긴 기초는 여전히 견고하고 인도네시아는 그 위에서 새로운 집을 지을 준비를 하고 있다.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조코 위는 메탈리카 광팬이다.
그가 라이브 공연을 보러 간다고 하면 경호실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대통령님, 메탈 공연장은 너무 시끄럽습니다!”
“괜찮아요. 나라 정치도 지금 충분히 시끄러우니까요.”
조코 위는 메탈리카의 리프를 듣고 자랐고 그 덕분인지 정치는 조용해도 추진력만큼은 묵직했다.
그리고 그는 정장을 버리고 체크 셔츠를 입었다.
정치가 이미지로 움직이는 시대에 그는 어떤 이미지도 만들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이미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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