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고양이를 안고
전투기를 세는 대통령

차이 잉 원 (Tsai Ing wen)

by 한자루
출생 : 1956.08.31. 대만
학력 : 런던정치경제대학교 대학원 J.D.
수상 : 2022년 포브스 Forbes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2021년 2020 존 매케인상 공공 서비스 리더십상
경력 : ~2022.11. 대만 민주진보당 주석
2016.05.~2024.05. 대만 총통


차이잉원을 한 줄로 소개하라고 하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고양이를 안고 ‘전쟁은 원치 않습니다.’라고 말하지만, 뒤에서는 ADIZ(방공식별구역)에 들어온 중국 전투기 숫자를 세고 있는 사람.”

겉모습은 유순한 집사, 속은 완전히 국제정치의 최전선에 서 있는 전략가.
이 대비만큼 차이잉원을 잘 설명하는 문장은 없을 것 같다.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해보자.
1956년 타이베이에서 태어난 차이잉원은 9남매 혹은 11남매 중 막내였다.

복잡한 가족력은 잠시 미뤄두자.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다.

어차피 막내는 항상 조용히 눈치 보며 자라는 법을 배우니까.

아버지는 자동차 정비·중고차 사업을 하던 사업가, 어머니는 가정을 돌보는 전형적인 대만식 대가족의 중심이었다.
집안은 가난하지 않았지만, 막내딸에게 기대되는 인생 시나리오는 대략 정해져 있었다.

‘착하게 자라서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하기’. 그런데 아버지가 한마디가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났다.

“법을 공부해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될 거다.”

그 한마디에 인생이 틀어진 것이다.

차이는 타이베이의 명문 여고를 거쳐 국립대만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미국 코넬대에서 석사, 영국 LSE에서 박사까지 따낸다.
요약하면 “결혼 대신 국제법과 무역법을 택한 막내딸”이다.

박사를 마치고 돌아와 그녀가 처음 한 일은 선거가 아니라, 조용한 문서 작업이었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협상, 양안 무역 규정, ‘중국과 싸우지도, 그렇다고 그대로 굴복하지도 않는 문장’을 만드는 일.

이 시절 그녀는 대만 정부의 고문, 각종 위원회를 거치며 ‘말수 적고, 계산은 정확한 기술관료’로 이름을 알린다.

중국과 싸우지도, 그렇다고 맞아주지도 않는 그 애매한 문장을 만드는 일.
그녀는 대만 정부에서 “전략적 애매함의 엔지니어”로 자리 잡는다.


정치판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2000년대다.

장기간 집권하던 국민당(KMT)이 정권을 잃고 민주진보당(DPP)이 집권하자, 차이는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하는 대륙위원회 주임위원, 국가안전회의 자문 등을 맡으며 ‘대중(對中) 전략 설계자’ 포지션을 굳힌다.

이때부터 그녀는 하나의 문장에 집착한다.
“현상 유지(status quo).”

대만은 스스로를 ‘중화민국’이라 부르고, 중국은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그 애매한 상황 그대로를 유지하겠다는 것이었다.
“독립도 아니고, 통일도 아니고, 그 중간 어딘가에서 계속 버티기.”


차이잉원이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건, 사실 고양이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고양이가 그녀를 ‘팔아먹기 좋은 정치상품’으로 만들어줬다.

차이에게는 ‘차이 샹샹(Think Think)’과 ‘차이 아차이(Ah Tsai)’라는 두 마리 고양이가 있다.

한 마리는 회색 줄무늬, 한 마리는 치즈색. 둘 다 유기묘 출신이다.

선거가 다가오자, 참모들은 정책 브로슈어를 들고 있는 후보 사진보다, 고양이를 안고 있는 후보 사진에 ‘좋아요’가 몇 배 더 많이 붙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대만 선거 역사에 드문 장면이 등장한다.
대통령 후보가 고양이와 함께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등장해 “생각하는 대만(Thinking Taiwan)”을 이야기하고, 유권자들은 세금·연금 개혁보다 후보의 집사력(집사로서의 능력)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물론 그녀가 고양이만 키운 건 아니다.
가이드 도그로 은퇴한 강아지 셋도 입양했다. “입양해서 평생 책임지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이쯤 되면 ‘군견·경호견을 데리고 다니는 지도자’가 아니라 ‘유기묘·유기견과 함께 사는 지도자’다.

이미 이미지 싸움부터 달랐다.

그리하여 대만 역사상 처음으로 고양이가 실질적 선거운동 본부장인 선거가 탄생한다.

중국 관영매체가 차이를 비난하면 대만 누리꾼들은 반격한다.
“고양이 건드리지 마라. 우리 총통님 화나게 하지 말고.”


2016년, 차이가 총통(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동시에, ‘중국 공산당이 가장 싫어하는 타입의 리더’도 탄생했다.

그녀가 당선된 날 중국은 빠르게 성명을 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거부한다면 응징하겠다.”

대만은 긴장했고 국제 언론은 예측을 쏟아냈다.

그런데 차이잉원은 마치 휴대폰 배터리 잔량을 보고 말하듯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는 이미 존재하는 민주주의입니다.”

짧았다. 조용했다.
그러나 그 한 문장은 베이징의 신경을 정확히 긁었다.

이후 중국 군용기가 ADIZ에 상시 출몰하기 시작했고 차이잉원은 고양이를 안고 평화를 말하면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늘 몇 대 들어왔나요?”를 묻고 보고받아야 했다.

평화의 얼굴을 한 냉정한 관리자의 탄생이었다.


그녀의 정치적 철학을 아주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민주주의는 시끄러워도, 중국보다 낫다.”

그녀는 취임 연설에서 이렇게 말한다.
“중화민국(대만)은 민주주의 국가다. 우리는 현상 유지를 원하지만, 중국이 일방적으로 이를 바꾸려 한다면 우리는 주권을 지킬 것이다.”

중국 입장에선 이런 말이었다.
“싸움은 안 걸겠지만, 맞고 가만히 있지도 않겠다. 그리고 당신들이 말하는 ‘92 공식’ (1992년에 중국과 대만이 “하나의 중국은 존재한다”는 점에 합의했다는 주장)은 우리 버전이 아니다.”

이 애매하고도 단단한 태도는 홍콩 시위 이후 더 강해진다.
2019년 홍콩의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그리고 그 뒤를 이은 국가보안법. 그 장면은 대만 유권자들에게 아주 간단한 예고편이었다.

“만약 우리가 중국이 말하는 ‘일국양제’를 받아들이면,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다.”

차이잉원의 전략은 단순하다.

“독립은 선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중국에 예스도 하지 않는다.”

이 태도는 마치 엘리베이터에서 옆 사람이 싫어도 몇 층까지는 같이 타야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겉으로는 미소를 짓지만 엄지손가락은 ‘문 닫힘’ 버튼 바로 위에 올려져 있는 상태.

미국은 그녀를 ‘민주주의의 방패’라고 부르고 중국은 그녀를 ‘분리주의자’라 비난했다.

대만 국민은 이렇게 요약한다.
“중국이 화내면, 차이가 제대로 하고 있다는 뜻이다.”


국내 정치에서 그녀가 한 일들은 사실 꽤 ‘비인기 과제’에 가깝다.

파산 위기의 공무원 연금을 손봐야 한다며, “지금 세대가 조금 양보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는 아무것도 못 받는다.”며 연금개혁을 밀어붙였다. 당연히 공무원 사회는 들끓었고, 지지율도 곤두박질쳤다

그뿐만 아니었다.

2019년, 대만은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다.

보수 진영의 거센 반대와 국민투표 패배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 판결을 근거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정치적으로는 위험한 선택이었지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민주주의는 숫자만이 아니라, 소수의 권리도 지키는 것이죠. 헌재가 말했잖아요. 해야죠.”

코로나19 대응도 빼놓을 수 없다.
2019년 말 중국 우한에서 이상한 소식이 들려오자, 대만은 WHO 회원도 아니면서 먼저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마스크 수출 금지, 입국 통제, IT를 활용한 동선 추적.

그 결과 2020년 한 해 동안 대만은 확진자, 사망자 모두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했고, ‘방역 모범국’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물론 영원한 성공은 없다.

백신 확보가 늦어지며 “방역은 잘했는데 백신은 왜 이 모양이냐”는 비판도 받았지만, 그래도 대만의 코로나 성적표는 다수의 민주국가들 사이에서 꽤 준수한 편이었다.


이런 크고 작은 이슈에도 차이잉원은 2020년 대선에서 57%가 넘는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고, 국제 언론은 그녀를 “중국에 맞서는 작은 민주주의의 얼굴”이라 불렀다.

차이잉원 리더십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톤’이다.

그녀는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트럼프처럼 새벽에 트윗으로 상대를 공격하지도 않고, 어떤 포퓰리스트들처럼 마이크를 잡고 군중을 자극하는 연설을 즐기지도 않는다.

대신, 그녀는 고양이 사진과 함께 길고 건조한 캡션을 달며, 민주주의·주권·국제연대에 대해 말한다.

한 손에 고양이, 한 손에 방위산업 보고서를 들고 말이다.

세계적으로 ‘소리 큰 지도자들’이 뉴스를 장식하는 시대에, 차이잉원은 다른 의미의 이단아였다.
그녀는 “대만은 이미 민주주의 국가다”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정작 독립 선언은 하지 않는다.

중국에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그 대신 국방비를 늘리고, 미국·일본 등과의 비공식 협력을 강화하며, “현상 유지”라는 말의 내용을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정치학적으로 말하면 ‘전략적 애매함’이고, 일반인 입장에서 보면 ‘싸우진 않지만 만만하진 않은 이웃’이다.


이제 차이잉원은 더 이상 현직 대통령이 아니다.

2024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고, 지금은 “고양이와 강아지 사진을 더 자유롭게 올리는 전직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대국 사이에 끼인 작은 민주주의는 어떻게 살아남는가?”
“소리치지 않는 리더십은, 계속해서 유권자를 설득할 수 있는가?”
“고양이와 함께 찍는 사진이, 전쟁을 막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분명한 건 하나다.
차이잉원은 “나는 왕이로소이다.”라고 외치는 타입의 지도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나는 고양이 집사이고, 동시에 2,300만 명의 민주주의를 관리하는 매니저입니다. 둘 다 하루라도 소홀히 하면 바로 난리가 나거든요.”


차이잉원은 독립을 선포하지 않았고 중국과 통일하지도 않았고 전쟁도 일어나지 않게 만들었다.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충족한 정치인은 세계 어디에도 거의 없다.
그녀는 고양이를 안아 올리는 손으로 중국, 미국, 대만 내부 여론이라는 세 개의 불덩이를 균형 있게 들고 있었다.
그녀는 왕도 아니었고 장군도 아니었고 선동가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고양이 집사이자, 2,300만 명의 민주주의를 관리하는 조용한 기술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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