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 르 펜 (Marine Le Pen)
출생 : 1968.08.05. 프랑스
소속 : 프랑스 국민전선
가족 : 아버지 장마리 르 펜
경력 : 프랑스 국민전선
2011.01. 프랑스 국민전선 대표
2004~2014 유럽의회 의원
프랑스 극우정치의 얼굴을 떠올리라고 하면 대부분은 삭발한 스킨헤드, 프랑스 국기를 흔드는 군중, 혹은 거리에서 고함을 지르는 전형적인 극우 지지층을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21세기의 프랑스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내놓았다.
그 중심에는 마린 르펜(Marine Le Pen)이 있다.
그리고 그녀가 들고 있는 것은 깃발도, 확성기도 아닌 고양이다.
왜 고양이냐고?
이유는 단순하다. 발톱이 있는 메시지를 부드럽게 포장하기 위해서는 발톱 있는 동물을 활용하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즉, 고양이는 그녀가 정치적 위험을 ‘일상 속 귀여움’으로 세탁하는 가장 완벽한 소품이었다.
1976년, 여덟 살의 마린 르펜은 집이 폭탄 테러를 당하는 경험을 한다.
그녀는 훗날 이렇게 말한다.
“그날 밤, 국가는 약해질 수 있고, 약해진 국가는 시민을 지키지 못한다는 걸 배웠다.”
이 사건은 그녀의 정치적 중심축이 된다. 강한 국경, 강한 정체성, 강한 통제.
이 모든 담론은 공포에서 출발한다.
게다가 그녀는 극우정치의 뿌리 위에서 자랐다.
아버지 장 마리 르펜은 국민전선(Front National)의 창당자이자 유럽 극우정치의 ‘원조 설계자’였다.
그의 망언은 셀 수 없이 많았고, 그만큼 많은 사람을 상처 입혔다.
마린 르펜이 극우정치에 발을 들이는 건 숙명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숙명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어갔다.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던 그녀는 결국 아버지의 정당으로 들어왔다.
2004년 유럽의회에 진출하면서 전국구 정치인으로 성장했고, 당 내부에서는 곧바로 ‘차세대 후계자’로 떠올랐다.
왜 그녀였을까?
마린 르펜은 아버지와 다르게 말이 부드러웠고, 공격 대신 분석을 제시하는 스타일이며, 일반 시민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극우 메시지를 풀어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극우정치의 날 선 메시지를 “온건한 포장지”에 싸는 데 탁월했다.
2011년, 마린 르펜은 당 대표가 되자마자 자신의 아버지를 정당에서 내쫓는다.
그 배경은 단순했다.
장 마리 르펜의 홀로코스트 희화화 등 여러 망언은 정당 전체를 파괴할 수준의 리스크였기 때문이다.
마린 르펜은 이렇게 판단했다.
“정치도 이미지다. 극우정당도 브랜드 관리가 필요하다.”
그녀의 첫 번째 혁명은 ‘아버지 지우기’였다.
프랑스 언론은 이를 “극우정치 최초의 세대교체 쿠데타”라고 불렀다.
2018년, 그녀는 당명을 ‘국민전선’에서 ‘국민연합’으로 바꾼다.
이것은 단순한 간판 교체가 아니라 전면적 리브랜딩이었다. 바뀐 건 당 이름만이 아니다.
고양이 사진, 파스텔 톤의 배경, 시민과 소통하는 일상 영상, 부드러운 인터뷰 등 이 모든 요소들이 합쳐져 극우정당은 더 이상 과격한 이미지를 풍기지 않았다.
프랑스 언론은 이렇게 말했다.
“마린 르펜은 파시즘의 외피를 파스텔 톤으로 재포장했다.”
르펜의 정치세계관은 매우 명확하고 일관적이다.
프랑스 정체성은 외부로부터 위협받고 있으며 이민은 국가의 안정성을 흔드는 위험요인이다
이슬람은 공공 영역에서 제한되어야 하고 EU는 프랑스의 주권을 훼손한다.
말투는 온화하지만 그 속에는 배타적 국가 모델이 자리 잡고 있다.
2017년 대선에서는 히잡 금지, 이민쿼터 강화, 국적 제한 복지 등 매우 구체적이고 강력한 정책을 내놨다.
그녀는 온건해진 것이 아니라, 말투만 바뀐 것이었다.
마린 르펜은 프랑스 대선 무대를 단순히 '도전'한 것이 아니라, 꾸준히, 집요하게, 그리고 점점 더 무거운 발걸음으로 문을 두드렸다.
2012년 첫 번째 도전에서는 프랑스 사회가 “극우정당이 이렇게까지 표를 가져간다고?”라며 눈을 비비게 만들었다. 프랑스 극우 역사상 최다 득표를 기록하며 정치권을 뒤흔들었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에이, 그래도 결선까지는 아니겠지.” 하지만 2017년, 그녀는 결선에 올랐다.
프랑스 국민은 그날 깨달았다.
극우라는 것이 더 이상 프랑스 정치를 맴도는 주변 소음이 아니라 정치의 중심 스피커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가 말 한마디 하면, 더 이상 ‘오버하는 소수’가 아니라 ‘국가 단위 토론’이 열렸다.
그리고 2022년. 르펜은 41.5%라는, 프랑스 정치사에서 극우 후보가 얻은 가장 높은 지지율을 들고 다시 결선에 등장했다.
그 순간이야말로 프랑스가 속으로 중얼거린 시간이었다.
“잠깐만... 이 정도면 그냥 ‘야, 너도 할 수 있어’ 같은 도전이 아니라 진짜 집권을 하겠다는 건데?”
그녀의 대선 성적표는 ‘한 번의 돌발 현상’이 아니라 ‘지속되는 구조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가 됐다.
프랑스 사회는 더 이상 극우를 변두리에 놓아두지 못했다.
마린 르펜은 어느새 정치 한복판, 엘리제궁과의 거리를 한 걸음 단축한 경쟁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 정치판은 그제야 깨달았다.
극우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고양이 필터를 씌우고 귀엽게 다시 등장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르펜의 국제정치 행보는 언제나 프랑스와 유럽의 전문가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겉으로 보기엔 단호하고 확신에 차 있지만, 막상 하나씩 뜯어보면 자기 주장과 자기 행동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묘한 정치적 구조물이 드러난다.
예컨대 그녀는 러시아에 대해 “프랑스의 주권은 어떤 외압도 거부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러시아계 은행에서 900만 유로 대출을 받았다.
이를 비판하는 기자들에게 그녀는 태연하게 답했다.
“그게 뭐가 문제죠? 은행은 은행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 은행이 ‘푸틴과 가까운 은행’이라는 사실 때문에 정치권은 며칠 동안 머리를 싸매야 했다.
또한 그녀는 EU를 “프랑스의 주권을 침식하는 괴물”이라고 규정하지만 정작 유로화를 폐지하겠다는 계획은 접었다.
프랑스 국민들이 유로화 폐지에 민감하게 반응하자 그녀는 태도를 조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주권 회복과 유로화는 동시에 가능합니다.”
말은 그럴듯했지만, 정작 논리는 어딘가 미끄러졌다.
정치평론가들은 이를 “문을 닫겠다고 말하면서 손은 계속 문고리를 잡고 있는 격”이라고 설명했다.
NATO에 대한 입장은 더 흥미롭다.
그녀는 NATO를 “미국 중심의 시대착오적 기구”라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프랑스의 국방력은 더 강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군사동맹은 싫지만 동맹이 제공하는 안전망은 놓치고 싶지 않은 셈이다.
이에 대해 정치 분석가들은 이렇게 평했다.
“룸메이트는 싫지만 공과금은 같이 내줬으면 좋겠다는 논리죠.”
이렇게 서로 부딪히는 주장들을 묶어놓고 정치학자들은 결국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르펜의 국제정치는 일관성보다는 상황별 취향이 먼저인 전략이다.”
즉, 원칙이 아니라 그 순간에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는 선택을 고르는 방식이었다.
이는 프랑스 외교의 딜레마가 아니라, 르펜식 ‘선택적 취향’의 고급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그녀의 국제정치 노선은 언제나 단호하면서도 애매하고, 분명해 보이면서도 설명하다 보면 흐릿해지는 독특한 정치적 미스터리였다.
르펜의 SNS에 고양이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고양이는 모든 것을 부드럽게 만든다.
극단적 발언을 한 직후 고양이 사진을 올리면 사람들은 그녀를 다시 ‘평범한 사람’으로 본다.
프랑스 정치평론가들은 말한다.
“마린 르펜 정치의 핵심은 정책이 아니라 분위기다.”
정서적 인상 조작. 그녀는 이 기술에 누구보다 능숙하다.
그러나 그녀가 꾸려온 상승 곡선은 정치적 라이벌이 아니라 법원에서 멈춰 섰다.
2025년, 프랑스 법원은 유럽 의회 보조금 횡령 사건에 대해 마린 르펜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판결 내용은 냉정했다. 징역형(전자감시 포함) 그리고 벌금, 5년간 공직 출마 금지.
이는 그녀가 꿈꿔오던 2027년 대선 출마를 사실상 가로막았다.
그녀는 판결을 “정치적 공격”이라 비난했지만 법정은 정치적 의도보다 단순한 문장 하나를 강조했다.
“법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리고 이 문장이 그녀의 정치적 미래를 가로막는 가장 단단한 벽이 되었다.
마린 르펜은 20세기 극단적 극우의 거친 이미지를 21세기 대중이 견딜 수 있는 방식으로 세련되게 재포장한 정치인이었다.
그녀의 온화한 말투와 고양이 사진은 정치적 메시지를 부드럽게 만들었지만, 그 안의 세계관은 변하지 않았다.
오늘날 극우는 과격한 군중 속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부드러운 조명, 안정된 미소, 그리고 고양이라는 일상적 이미지 뒤에서 등장한다.
마린 르펜은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극우주의의 가장 세련된 포장지, 현대 정치 마케팅의 대표적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