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인도 현실판 슬럼독 밀리어네어

나렌드라 모디 (Narendra Modi)

by 한자루
출생 : 1950.09.17. 인도
소속 : 인도(총리)
수상 : 2019년 제14회 서울평화상
2015년 미국 타임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지도자부문
경력 : 2014.05.~ 인도 총리
2014~ 인도 바라나시의회 의원


인도의 정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이 나라엔 인구가 너무 많아서 정치도 서사형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다.”

그리고 바로 그 서사 경쟁에서 가장 오래, 가장 크게 살아남은 인물이 나렌드라 모디다.

그의 인생은 마치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인도판 정치 스핀오프처럼 보인다.
차이점이 있다면, 퀴즈쇼 대신 선거가 있고, 상금 대신 국가가 걸려 있다는 점이다.


모디의 어린 시절은 정치인에게 가장 이상적인 출발선이다.

가난한 집, 기차역, 차이(Chai)를 파는 소년.

인도에서 이 설정은 서민 감수성과 근성 그리고 신뢰를 한 번에 소환하는 패키지다.

이 이야기는 그가 직접 말하지 않아도 지지자들이 먼저 퍼뜨린다.

“그는 우리 중 하나였다.”, “엘리트의 언어가 아니라, 역의 소음을 아는 사람이다.”

이때부터 모디는 정치인이 아니라 정체성의 증거물이 된다.


모디는 젊은 시절 집을 떠나 인도를 떠돌았다고 알려져 있다. 히말라야, 은둔, 명상, 자기 수련.

사실 여부를 따지기엔 이 이야기는 너무 정치적으로 완벽하다.

가족보다 국가, 사생활보다 사명, 안락함보다 수행.

이 설정은 그를 “권력을 탐한 인물”이 아니라 “권력이 그를 찾아온 인물”로 만든다.

정치에서 이 차이는 크다. 사람들은 야망보다 소명에 관대하기 때문이다.


모디의 정치적 뿌리는 힌두 민족주의, 정확히 말하면 힌두트바다.

이는 단순한 종교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국가 단위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다.

모디는 이 사상을 노골적인 배타성 대신 “문화적 자부심”이라는 말로 포장했다.

사람들은 이렇게 느낀다. “누군가 우리를 다시 중요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정치적으로 이 감정은 복지보다 강하고, 정책보다 오래간다.


2002년 구자라트 폭동은 모디의 이력서에서 절대 삭제되지 않는 문단이다.

법적으로 그는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란 법정 판결로 끝나지 않는다.

이 사건 이후 모디는 한 가지를 배운다.

사과는 논쟁을 연장하고, 서사는 논쟁을 덮는다. 그는 과거 대신 미래를 말하기 시작한다.

개발, 성장, 인프라, 자부심.

사람들이 질문하기 전에 다음 장면을 보여준다.


총리가 된 나렌드라 모디는 인도를 더 이상 “운영되는 국가”가 아니라 “업데이트되는 프로젝트”처럼 다루기 시작했다.

그의 통치는 이념보다 일정표에 가깝다. 슬로건이 있고, 단계가 있고, 마감일이 있다.
국가가 하나의 거대한 파워포인트 파일처럼 관리된다.


모디의 가장 분명한 업적은 인프라 확장이다.

고속도로와 철도망은 이전 정부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늘어났고, 농촌 지역까지 전기가 보급되면서 “전기가 안 들어오는 나라”라는 오래된 이미지도 많이 사라졌다.

이건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수천만 가구가 처음으로 전기를 경험했다.

모디에게 인프라는 단순한 편의시설이 아니다.
그건 이렇게 번역된다. “국가가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그는 다리를 놓을 때도 항상 카메라 각도를 함께 계산한다.
콘크리트는 연결을 만들고, 영상은 신화를 만든다.


모디 정부의 또 하나의 핵심 프로젝트는 디지털 인도다.

주민등록을 통합한 아다르(Aadhaar) 시스템, 모바일 결제의 폭발적 확산, 정부 서비스의 온라인화.

덕분에 인도는 현금 중심 사회에서 QR 코드가 통하는 나라로 급속히 이동했다.

이건 단순한 편리함의 문제가 아니다.
부패를 줄이고, 행정 비용을 낮추고, 국가가 국민을 “직접” 관리할 수 있게 만든다.

지지자들은 말한다.

“우리는 드디어 서류 대신 스마트폰으로 국가를 만난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이렇게 덧붙인다.

“국가도 우리를 스마트폰으로 본다.”


2016년, 모디는 하룻밤 사이에 고액권 지폐를 무효화했다.

명분은 명확했다. 부패 척결, 탈세 차단, 그리고 지하경제 박살

이 결정은 세계 정치사에서도 손꼽히는 고위험, 고강도 실험이었다.

결과는 복합적이다.

부패 자금이 사라졌다는 증거는 제한적이었고, 중소상인과 서민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
은행 앞에 줄이 생겼고, “현금이 없는 가난”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등장했다.

그럼에도 모디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프지만 필요한 수술이다.”

여기서 그의 통치 스타일이 드러난다. 설득보다 결단, 합의보다 인내를 요구하는 방식.

그래서 이 결정은 지지자에겐 용기, 비판자에겐 오만으로 기억된다.


모디는 인도를 “도와줘야 할 나라”가 아니라 “없으면 곤란한 나라”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Make in India, 반도체, 방산, 글로벌 기업 유치 전략이다.

미국과는 전략 동맹, 러시아와는 실리 외교, 유럽과는 시장 협력.

모디는 이념보다 사진 속 구도에 강하다. 누구 옆에 서 있느냐가 어떤 조약보다 빠르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래서 국제무대에서 그는 늘 환영받는다.

인도는 크고, 모디는 그 얼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모든 속도와 효율의 대가다.

언론 자유 위축, 시민단체 압박, 종교적 소수자 불안, 비판자에 대한 강경 대응

모디 정부는 말한다.

“질서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비판자들은 말한다.

“질서라는 이름의 침묵이다.”

그래서 이런 평가가 나온다.

“모디는 민주주의를 폐기하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리모델링 중이다.”


모디의 정치 업적은 분명하다.

인프라는 늘었고, 행정은 빨라졌고, 인도는 국제무대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그러나 동시에 정치는 점점 연출 중심이 되었고, 민주주의는 관리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그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그는 인도를 앞으로 밀어냈다.
다만, 모두가 같은 속도로 걷고 있는지는 아직 아무도 확신하지 못한다.


나렌드라 모디는 정치인이자 이야기꾼이다. 그는 인도를 정책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감정, 상징, 이미지로 이끈다.

차를 팔던 소년은 국가 브랜드의 주연이 되었고, 그 브랜드는 지금도 전 세계에 상영 중이다.

이 이야기가 인도의 재도약 서사로 남을지, 아니면 너무 매끄럽게 편집된 이미지 정치의 교과서가 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분명한 건 하나다. 모디는 왕이 아니다.
독재자라 부르기엔 아직 민주주의의 형식이 남아 있다.
그는 더 현대적인 존재다.
10억 명의 관객 앞에서 민주주의라는 무대 위에 가장 오래 서 있는 주연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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