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축구에 진심인 좌파원주민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 (Evo Morales)

by 한자루
출생 : 1959.10.26. 볼리비아
출생지 : 볼리비아 오리노카 칸톤
경력 : 제65대 대통령 2006.01.~2019.11.
볼리비아 대통령
볼리비아 사회주의운동당 총재
볼리비아 공화국 오루로주 이사야비 (現 볼리비아 오루로주 이사야비)
정당 : 사회주의운동당
자녀 : 에바 리스 모랄레스 알바라도, 알바로 모랄레스 파레데스
종교 : 로마 가톨릭교회


에보 모랄레스. 그의 시작은 성경보다 극적이었다.
볼리비아 알티플라노의 황량한 고원,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 소외된 아이마라족 소년 에보 모랄레스는 신발이 없었다.

여섯 형제 중 넷을 가난과 질병으로 잃었고, 살아남은 그는 라마를 몰며 흙먼지 속에서 허기를 견뎠다.

그의 손에 쥔 것은 책이 아니라 코카잎이었다.

안데스인들에게 그것은 피로를 달래고 공동체를 잇는 신성한 식물이었지만, 제국의 시선 속에서 그것은 ‘마약의 원료’로만 존재했다.

소년은 일찍 깨달았다.

“내 입에 든 이 잎사귀가 범죄라면, 내 존재 자체가 범죄겠구나.”

이 자각은 그를 코카 재배 농민 운동가로 만들었고, 마침내 볼리비아 건국 181년 만의 첫 원주민 대통령으로 밀어 올렸다.
개인의 성공이 아니라, 다수의 억눌린 정체성이 처음으로 국가의 얼굴이 된 순간이었다.



2006년, 대통령궁에 입성한 모랄레스는 서구식 양복을 거부했다.
알록달록한 원주민 문양의 재킷은 그 자체로 선언이었다.
그는 “내 주인은 국민이다”라고 말하며, 다국적 기업이 장악해온 천연가스를 국유화했다.

때마침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은 상승 곡선을 그렸고, 그의 정치는 성과라는 언어를 얻었다.

빈곤율은 떨어졌고, 문해율은 올랐다. 혁명은 더 이상 구호가 아니라 숫자로 증명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균열은 성공의 내부에서 시작됐다.
그는 ‘어머니 지구’를 외치며 생태주의를 설파했지만, 동시에 고속도로를 뚫기 위해 원주민 거주지를 관통하는 개발을 강행했다.

입으로는 생태를 말하고, 손으로는 불도저의 레버를 당기는 기술.

혁명가들이 자주 빠지는 ‘실용적 위선’이 여기서 모습을 드러냈다.


모랄레스는 끝까지 ‘서민 대통령’의 이미지를 놓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그의 축구 사랑은 유별났다.

그는 축구를 좋아한 것이 아니라, 축구가 되고 싶어 했다.

2008년, 그는 현직 대통령의 신분으로 볼리비아 2부 리그, 경찰 산하 구단 클루브 리토랄과 정식 선수 계약을 맺고 실제로 리그 경기에 출전했다.

국가 원수가 현역 선수로 등록되어 공식 경기를 뛴 전례 없는 장면에 언론은 열광했고, 사람들은 웃었다.

“대통령이 우리와 같은 운동장을 밟는다”는 연출은 그가 가장 즐겨 쓰던 언어였다.

그러나 권력이 공을 차기 시작할 때, 경계는 흐려진다.
2010년 라파스에서 열린 친선 경기에서 그는 경기 도중 자신의 정강이를 걷어찼다는 이유로 상대 선수의 급소를 걷어차는 해프닝을 일으켰다.

그는 곧 사과했지만, 이 장면은 상징처럼 남았다.

놀이 속에서도 그는 선수이면서 동시에 권력이었고, 심판이 없는 경기에서 규칙은 언제나 흔들렸다.

그는 곧 사과했지만, 이 장면은 상징처럼 남았다.


성공한 지도자의 가장 큰 적은 언제나 거울 속에 있다. 모랄레스는 점점 자신을 국가와 동일시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없으면 볼리비아는 다시 백인 엘리트들의 손에 넘어갈 것이라는 위험한 자기확신이 자리 잡았다. 2016년, 그는 4선 연임을 위해 헌법 개정을 국민투표에 부쳤다.

국민의 답은 분명했다. “No.”

그의 정치는 여기서 멈췄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대법원을 동원해 헌법을 무력화했고, 전무후무한 논리를 세상에 내놓았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나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수백만 명의 인권을 위해 싸워왔던 투사가, 이제는 자신의 영구 집권 가능성을 인권이라 부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이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풍자가 아니라, 민주주의 논리의 자살이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트레이닝복을 입고 축구를 하며 ‘서민 대통령’의 이미지를 놓지 않았다.
그러나 거리의 함성은 더 이상 응원이 아니었다.

2019년 대선 조작 의혹은 불에 기름을 부었고, 시위는 전국으로 번졌다.

군부마저 등을 돌리자, 그는 멕시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박수칠 때 떠나지 못한 자’의 씁쓸한 뒷맛만 남았다.
혁명가로 왕좌에 올랐던 그는, 내려올 때는 그가 평생 경멸해 온 독재자의 뒷모습을 닮아 있었다.


모랄레스의 이야기는 비행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멕시코를 거쳐 아르헨티나로 향한 그는 망명 중에도 자신을 “축출된 대통령”이 아니라 “강제로 쫓겨난 정당한 지도자”로 불렀다.
쿠데타라는 단어가 그의 입에서 반복되었고, 지지자들 역시 그 언어를 받아 적었다.

정치적으로 그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신화가 되었다.

볼리비아 안에서는 그를 그리워하는 목소리와 그를 두려워하는 피로가 동시에 자랐다.
한쪽에선 “그가 있었기에 우리가 존재했다”고 말했고, 다른 쪽에선 “그가 돌아오면 우리는 다시 멈춘다”고 중얼거렸다.

모랄레스는 직접 권좌로 돌아오지 못했다. 대신 후계자를 세웠고, 그림자처럼 정치 위에 머물렀다.
혁명은 퇴장했으나, 혁명의 주인은 퇴장하지 않은 상태였다.


에보 모랄레스는 여전히 말한다. 자신은 역사의 피해자라고.

자신이 아니었다면 볼리비아는 다시 과거로 돌아갔을 거라고.

이 말은 틀리지 않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문제다.

그는 진짜로 변화를 만들었고, 진짜로 억압된 다수를 정치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그래서 그의 그림자는 그의 실책보다 더 오래 남는다.

하지만 혁명가에게 가장 잔인한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이 떠난 뒤에도 당신이 만든 국가는 스스로 걸을 수 있는가?”

모랄레스는 권력을 잡는 법은 알았지만, 권력을 비워 두는 법은 끝내 배우지 못했다.


에보 모랄레스의 정치 입성은 볼리비아의 승리였고, 그의 퇴장은 볼리비아의 상처였다.

그는 원주민들에게 역사상 처음으로 ‘주어’를 돌려주었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마침표’를 허락하지 않았다.

혁명은 권력을 잡는 순간 자신이 싸웠던 체제와 닮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닮음은 의도가 아니라 집착에서 완성된다.


모랄레스는 우리에게 아직 끝나지 않은 질문 하나를 남긴다.
당신이 만든 세상이 당신의 부재를 견디지 못한다면, 그것은 해방인가, 또 다른 의존인가.
박수 소리가 가장 클 때 무대 뒤 어둠으로 걸어 들어갈 줄 모르는 영웅은, 결국 자신이 무너뜨렸던 괴물의 초상을 닮아갈 뿐이다.
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