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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랑냥이 Feb 05. 2020

마음의 유연성을 위한 상상력 훈련 (프롤로그)

마음의 유연성을 위한 상상력 훈련 (프롤로그)


이런 게 있어요. 우리는 자신이라는 존재를 어떠한 방식으로 인식하고 판단할까요? 전 그것을 감각기관의 해석을 통해서라고 저는 항상 말을 해요. 우리는 과연 우리의 뇌를 어떻게 작동시킬까요. 저는 무한한 반복을 통해 세상의 수많은 것들은 인지하고 판단 내린다고 믿어요. 그리고 그 인지와 판단 내렸던 수많은 고민과 행동들을 통해 나 자신이라고 하는 스스로를 인식하게 만드는 거죠. 안타깝지만 우리의 뇌는 항상 명확하고 분명하게만 수많은 자극들은 인식하고 수용하지는 않아요. 항상 약간의 오류를 가지고 있고, 때론 분명하지 않은 것에 대한 굉장한 착각 속의 판단을 내리기도 하며, 같은 상황을 실수라는 이름 속에 반복적으로 오류를 일으키기도 하죠. 우리는 언제나 완전한 존재가 되지도, 될 수도 없는 존재니까. 


감각의 자극은 크게 외부의 자극과 내부의 자극으로 구분할 수 있어요. 외부의 자극은 세상의 현상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인지하고 해석하는 것이고, 내부의 자극은 내 몸의 상태를 같은 방식으로 인지하고 해석하는 것이라 할 수 있어요. 우리는 이 두 방향의 자극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으로 자신이라고 하는 본질을 규정하게 만들죠. 


과거에는 흔히 오감(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라고 하는 감각이 인간이 느끼는 전부라고 말했지만 지금의 학계는 그렇지 않아요. 그것들보다 더욱 여러 가지 감각들이 인간에게 존재한다고 말하죠. 통증을 느끼거나 인지하는 통각, 온도를 인지하거나 느끼는 온각, 두 발로 서 있거나 자신의 흔들림을 조절하는 균형감각과 아직은 우리가 규정하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다른 종류의 여러 감각들을 통칭하는 기타 감각이라는 구분으로 감각들을 얘기해요.


지금의 저는 이 기타 감각이라 표현되는 감각 기관에 조금 집중을 하고 있어요. 사랑을 할 때 느끼는 따스함의 감정, 자신이 믿는 신념에 대해 표현하고자 할 때 발현되는 열정, 사랑하는 존재를 잊게 되었을 때 내가 인지하는 세상이 부서지고 무너지는 듯한 느낌의 감각과 우울함에서 동반되는 무기력의 감각,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프레임 인식력과 리처드 H. 탈러, 캐스 R. 선스타인의 ‘넛지’ 등 시스템을 인지하는 능력 역시 감각의 영역에 부합되는 것이 아닌지를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쯤에서 개인적인 제 소개를 간단히 하자면 전 위대한 학자나 대단한 선생님은 아니에요. 꽤나 오래도록 무기력을 동반한 우울감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이 스스로의 마음의 다짐이나 형태에 문제가 아닌 여러 종류의 인식의 오류를 통해 더욱 크게 느끼고 있다고 판단 내리는 사람이에요. 


전 우울이라는 감정을 압력이나 압박에 의해 형성되는 감정이라 여겨요. 사랑이라고 하는 연인과의 관계, 금전적인 부라고 할 수 있는 돈과 나의 관계, 친구와 친척 사회생활 속에서 이뤄지는 인간관계 및 부모의 기대감, 비슷한 연령대의 타인과의 비교, 자신의 건강상태 등등 수많은 상황과 현실 등에 의해 이 감정이 형성된다고 스스로가 경험을 했고 이에 대해 그렇다고 믿고 있죠. 물론 던지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느끼는 압박과 압력의 무게는 같지 않아요. 제가 예민한 종류의 인간일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이러한 종류의 감정을 때론 무심하게 인지하고 이해하기도 하니까요. 개인적으로 느꼈던 부분은 저라는 존재는 이 압력과 압박을 꽤나 크게 인지했다는 점이었어요. 물론 이는 감각의 오류일 수도, 얕은 경험치에 의한 무뎌짐을 활용하지 못한 점도 있었겠지만 결론적으로는 이 부담은 현명한 방식으로는 이겨내지를 못했죠. 그래서 꽤나 다양한 방식의 반복과 오랜 시간이 흘러야만 했어요.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내 뇌가 인지하는 오류임을 인식하고 이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방식을 몰랐기 때문이죠. 


저는 프로이트의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메슬로우의 ‘최고의 경험’의 방식으로 상상력 훈련을 진행해보려 해요. 물론 이 두 학자는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학자들이지만 최근 심리학계에서는 크게 언급되는 인물들은 아니에요. 그들의 방식이 현대의 사회과학적 분석의 방식과는 크게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활용의 범위가 넓다고 여기고 있어요. 인식의 압력을 넓힘으로써 그 압박의 강도를 줄이고 압력의 지점을 조금 더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으며, 창의력과 상상력 그리고 인식의 유연성을 높임으로써 자신의 잠재력과 모든 능력을 ‘완전히 기능하는 것’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에요.


물론 이 방식은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단지 저와 같거나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사람, 마음에 여유 공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 심리적 상상력을 통해 육체적 따뜻함을 담고 싶은 사람과 온전하고 차분하며 조화로운 느낌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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