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cide Mio Jul 25. 2024

(짧은 글) 시베리아에서 온 소리

오투켄(Otyken)

많이 더우시지요? 들으시는 분들이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음악을 소개해 보려 합니다. 먼저 음악부터 한 번 들어보고 이야기를 시작하지요.  오투켄(Otyken)이라는 그룹이 부르는 Storm이라는 제목의 노래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qwrwwOzVcQ


특이하지요? 들으시는 분에 따라서는 불편하고 거북하면서, 뭐 이런 것도 음악인가 싶은 생각이 드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헤비메탈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좀 더 흥미롭게 들으셨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음악 전체에 깔려있는 북소리와 비명처럼 내지르는 보컬의 목소리가 막힌 제 속을 뚫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기타를 닮은 전통 현악기와 북소리, 그리고 내지르는 목소리와 건반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정신없이 몰아치면서 마치 눈보라가 몰아치는 벌판에서 정신없이 바람을 맞으며 걸어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바람이 잠시 멎고 짧게 정신을 차릴 여유를 주지만 다시 소리의 폭풍이 온몸을 휘감아 옵니다. 처음 듣자마자 몇 번을 반복해서 들으며 빠져들었던 음악입니다. 


음악이 어쨌든 간에 겨울 시베리아의 화면이 펼쳐지는 이 음악을 들으면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더위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15년에 시베리아의 중앙에 있는 크리스나야르스크 지역에서 민속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던 안드레이 메도노스는 박물관을 찾는 이들에게 그 지역의 전통 음악을 소개할 요량으로 인근 마을에서 음악을 하는 이들을 모아 오투켄(Otyken)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비록 시베리아에서 대대로 살아온 민족 출신은 아니었지만 안드레이는 그곳에서 태어났고 그곳 원주민들의 생활과 전통, 역사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민속박물관을 운영하는 것과 함께 그 지역의 전통적인 양봉 방식으로 꿀을 만드는 방법을 배웠고  또 그와 같은 시베리아 지역의 전통적인 문화가 계속 이어가기를 바랐었지요. 박물관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전통 음악을 들려주는 것도 그런 그의 노력 중 하나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실제 시베리아 지역에는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민족들이 살아가고 있는데 20세기 초반 러시아의 일부가 이래 그들의 문화와 언어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룹 오투켄이 부르는 노래들은 러시아어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그 지역 원주민들의 언어로 만들어진 노래들입니다. 특히 이들이 노래에서 자주 사용하는 출림(Chulym)어의 경우, 2020년 센서스에 의하면 그 언어를 말할 수 있는 이들이 이제 300명이 조금 넘을 정도라고 합니다.  

오투켄의 그룹 멤버들은 모두 인근 시베리아 지역의 원주민 마을 출신이고 전문적인 음악인들이 아니라서 공연이 없을 때는 각자 생업에 종사하다가 공연할 때만 모여서 음악을 연주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이들이 2018년에 첫 앨범을 내고 온라인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최근에는 러시아는 물론이고 유럽의 여러 지역 그리고 미국에서도 많은 이들이 이들의 음악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시베리아 민족들의 전통 음악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재즈, 블루스, 펑크, 하우스, 그리고 록 등 현대적인 요소를 가미한 이들의 음악은 한 번 들으면 쉽게 잊을 수 없는 개성 있는 음악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의 반복적인 리듬과 색다른 멜로디, 그리고 몽골의 전통 음악을 통해 잘 알려진 목 노래 창법(Throat Singing)으로 내는 음악은 중독성이 있습니다. 드럼 비트에 몸을 맡기다 보면 이들의 음악이 클럽에서 울리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전통과 현대가 적절하게 조화된 이들의 음악만큼이나 이들이 무대에 입고 나오는 의상 역시 시베리아 원주민들의 전통 의상에 현대적인 요소를 더하여 직접 만든 것으로서 보그와 같은 패션 잡지에서 다룰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들의 의상과 무대 위의 멤버들의 퍼포먼스, 그리고 시베리아의 전통 음악과 현대 팝의 요소들이 아주 얄미울 정도로 적절하게 어울린 음악을 보고 듣다 보면 어떤 전문가가 서구의 청중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취향에 맞추어 이 모든 것을 철저한 매니지먼트를 통해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온라인으로 이들의 음악이 알려진 이후 여러 유명 DJ 들은 물론이고 다른 음악인들이 이들과 함께 작업을 하고 있고 지난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에도 초청을 받았지만 이들의 국적이 러시아라는 이유 때문에 유럽 각 국의 반대로 참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러시아 밖에서는 공연을 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만 온라인으로 두꺼운 팬층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저도 그 팬 중의 한 사람이구요.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과 소리는 자연으로부터 온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시베리아의 타이가 숲에서 들리는 여러 동물들의 소리, 그리고 폭풍과 바람, 바람에 움직이는 나뭇가지와 나뭇잎 등, 자연의 소리가 이들의 음악에 녹아 있는데 키보드와 기타 같은 서양 현대 악기도 이용하지만 시베리아의 전통 현악기와 북과 방울 등으로 만들어내는 소리는 우리에게도 낯설게 들리지만은 않습니다. 특히 북과 방울소리가 섞인 이들의  음악을 들을 때면 씽씽밴드로 알려진 추다혜 님의 앨범에 실렸던 비나수 라는 음악이 떠올랐습니다. 


오투켄이라는 말은 출림어와 인근의 다른 투르크계 언어에서 "성스러운 땅"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전사들은 싸움을 멈추고 무기를 내려놓고 대화를 하면서 분쟁을 해결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자연에 대해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그들의 음악에서 많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발표한 그들의 싱글인 "츄코트카(Chukotka, 시베리아의 가장 동쪽에 있는 지역)"의 가사에서는 특히 인간들이 파괴하는 자연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바다의 동물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당연히 이로 인한 피해는 인간에도 돌아오는 것이겠지요.

https://www.youtube.com/watch?v=PENk6NBEyPs


늘 접하는 미디어에서 들리는 음악이 아닌 이런 종류의 음악을 듣는 것도 우리 삶을 풍부하게 해 줍니다. 이런 음악을 들으며 우리와는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해 배우고 그들의 음악에 실린 그들의 삶과 생각을 통해 우리 자신을 살펴볼 수도 있지요. 제가 세계 여러 곳의 음악에 호기심을 가지고 듣는 이유입니다.  


*유튜브에 있는 오투켄의 채널을 연결합니다. 이들의 다른 음악들과 인터뷰, 공연 동영상 등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래 전의 다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