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민기 님을 생각하며
몸은 멀리 있지만 인터넷 덕에 한국의 뉴스를 접하는 일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김민기 님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도 바로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으면서 든 생각은 한 시대의 상징이 떠나면서 그와 그의 음악이 대표하던 그 시대는 이제 무대 뒤로 사라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번도 그가 직접 노래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지만 그의 음악은 카세트테이프에서부터 시작해서 늘 제 곁에 있었고 50대 중반이 된 지금도 아이폰에는 그의 모든 앨범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몇 주 전부터 갑자기 김민기 님의 음악이 더 듣고 싶어 트레드밀에서 운동을 할 때 그의 읊조리는 듯한 저음의 목소리를 들으며 명상하는 시간을 가졌었었지요, 어쩌면 이 소식을 들으려고 그렇게 그의 음악이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 이기적인 생각이기는 합니다만, 그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으며 그의 음악과 함께 살았던 오래 전 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십 대 후반의 치기 어린 마음이었겠지요, 저는 1986년 대학에 입학하던 첫날 신입생들이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침 이슬'을 불렀고 그것으로 선배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제 전공이 역사학이었으니 그 시대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대충의 상황을 짐작하실 겁니다. 대학 입학 전부터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모든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는 저였기에 그날 이후 김민기의 음악은 저의 대학 생활을 같이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시작한 대학 생활에서 1987년 4월의 어느 날 밤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 해 4월은 대통령의 호헌 선언과 함께 전국이 들끓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날도 저는 최루탄 냄새가 가득 찬 교정에서 밤늦게 잔디밭에 앉아 친구들과 막걸리잔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낮에 있었던 시위에 대해 이야기하고 암담하게만 보이던 당시의 상황에 대해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지요. 막걸리 잔이 돌아가고 취기가 오르면서 자리에 있던 친구들은 점점 우울해져 갔습니다. 20대 초반의 어린 학생들의 힘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보잘것없게 생각되었고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했습니다.
그러다가 같이 앉아 있던 친구들 중 한 사람이 노래를 시작했고 그것은 곧 합창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김민기의 노래였지요. 가슴속에 쌓인 울분을 노래로 풀어버리려는 듯 우리 모두 악을 써댔지요. 그러던 중 갑자기 어디에선가 '조용히 해. 공부 좀 하자'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마침 저희들이 앉아 있던 잔디밭이 도서관 근처였고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몇몇 학우들에게는 우리의 노랫소리가 방해가 되었나 봅니다. 어두운 밤이라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금이 도서관에서 한가하게 공부나 할 때냐?" "너 학생 맞냐? 짭새 아니냐" 등등 친구들도 지지 않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깜깜한 교정에서 십여 분 서로 고함만 쳐대다가 결국 끝이 났지만 그 와중에 도서관에 있던 그 사람이 던진 한 마디 말이 제게 큰 충격으로 와닿았습니다. "이 XX들, 20년 후에 어떻게 되나 보자." "뭐? 20년 후... 그래. 20년 후에는 내가 어떻게 되어 있을까?" "그런데, 만일 20년 후에 내가 힘이 있어서 이 더러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면?" 아마 이런 식으로 제 생각이 흘러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제 마음속에는 자리 잡은 한 가지 생각은 "지금의 이 마음을 결코 버리지 말고 20년 후 아니 40년 후에까지 가지고 가자. 그래서 만일 그때 내가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면 지금 내가 원하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87년을 정신없이 보내고 남들처럼 군대에 갔지요 그리고 제대 후 이리저리 떠돌다가 학교로 다시 돌아간 것이 94년이었습니다. 많이 변했더군요. 제 마음은 87년 4월 그날 밤에 했던 결심을 잊지 않았지만, 그리고 그러다 보니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학교 2학년의 마음이었지만 저를 보는 주위의 눈들은 달랐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87년의 '투사'들이 이제는 도서관 밖 잔디밭이 아니라 도서관 안에 앉아 자신의 진로를 위해 공무원 시험이나 취직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고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로부터 또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저는 여전히 87년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나이 값을 못한다는 이야기도 듣지만 제가 느끼는 제 자신은 여전히 대학교 2학년입니다. 물론 그동안 세상을 돌아다니며 많은 경험을 했고 또 그 경험만큼 비겁해지는 방법도 배웠지만 여전히 그때의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려 합니다. 안타깝게도 그때의 꿈과 소망을 현실에 옮길 힘은 아직 얻지는 못 했지만요. 어쩌면 지난 세월 동안 제가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대학교의 근처를 떠난 적이 없었다는 점이 20대 때 가졌던 마음을 아직까지도 간직하게 해 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렇겠지요. 그렇게 본다면 저는 행운아입니다.
지금 저는 그때의 그 '투사'들이 궁금합니다. 그들도 모두 저마다의 생활 속에서 여전히 '투쟁'하고 있겠지요. 종종 그때의 '투사'들 중에서 마침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 이들을 봅니다. 그런데 그들의 위치가 달라진 만큼 그들의 말과 행동도 달라져 있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그때와는 달라졌지만 여전히, 어쩌면 그때 보다 더 좋지 않은 문제들이 있고 이제 정말 그들이 과거에 가졌던 순수한 열정이 필요할 때인데 "아니 저 사람이 왜 저러나." "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나?" 하는 의문을 생기게 하는 '투사'들이 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변하게 만들었는지 안타까웠습니다.
우리가 젊은 시절 가졌던 순수한 열정과 정의감은 우리 마음속에 보존하고 언제든지 기회가 오면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어야 할 것들입니다. 80년대의 '가열찬 투쟁'을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그때 자신이 가졌던 마음도 함께 기억해 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기억나시거든 그 마음들이 떠나가기 전에 붙들어 두십시오. 그리고 80년대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마음속에 순수한 열정과 정의감을 가지신 분들은 그것들을 평생 놓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생각하십시오.
당장의 우리가 가진 힘은 약하고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런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우리 사회는 결국 우리가 원하는 그런 모습으로 바꾸어질 것이라 믿습니다. 혁명의 방아쇠는 투사들이 당길지 볼라도 진정한 혁명의 시작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힘은 변화에 대한 열망과 정의감에 불타던 우리 젊은 시절의 순수한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는 것으로부터 나온다고 믿습니다.
일부에서는 지난날 불의에 대항해 일어섰던 젊은이들의 열정을 이야기하면서 현재 젊은이들의 사회에 대한 무관심을 안타까워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의 젊은이들이 그때와 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처한 상황이 달라졌을 뿐이지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있는 순수한 열정과 정의감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여전히 우리의 젊은이들은 순수하고 정의롭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과거에도 젊은이들의 100%가 운동에 나섰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학에는 '투사'도 있었고 공부에만 열중한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리라 생각합니다.
대학을 휴학하고 떠돌아다니던 1991년 무렵 이탈리아에서 들었던 칸초네 한곡을 올려봅니다. 지노 파올리라는 이탈리아의 싱어송 라이터가 부른 "네 명의 친구(Quattro Amici)"란 노래인데요. 60년대 유럽의 강력한 학생 운동을 경험한 청년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변해가고 90년대에 들어서 새로이 만난 젊은이들은 그때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가사를 살펴보시면 여러 가지 생각되시는 것이 있을 겁니다. 저는 90년대 초반 이 그 노래를 들으며 아름다운 멜로디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에 섬찟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Quattro Amici (네 명의 친구)
Eravamo quattro amici al bar che volevano cambiare il mondo
destinati a qualche cosa in più che a una donna ed un impiego in banca
si parlava con profondità di anarchia e di libertà
tra un bicchier di coca ed un caffè tiravi fuori i tuoi perché e proponevi i tuoi farò.
우리들은 바에 모여서 세상을 바꾸려 하던 네 명의 친구들이었지.
여자나 은행의 취직 자리보다는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추구했었어.
(그때 우리는) 무정부주의와 자유에 대해 깊이 이야기했었지.
한 잔의 콜라와 커피를 나누며 너의 '왜'와 '반드시 그렇게 할 거야'를 자신 있게 이야기했지.
Eravamo tre amici al bar. uno si è impiegato in una banca
si può fare molto pure in tre mentre gli altri se ne stanno a casa
si parlava in tutta onestà di individui e solidarietà
tra un bicchier di vino ed un caffè tiravi fuori i tuoi perché e proponevi i tuoi però.
세 명의 친구들이 바에 모였지. 한 친구는 은행에 취직을 했다는군.
뭐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다 집에 있는 동안 우리 세 사람 만으로도 많은 일을 할 수 있겠지.
정말 순수하게 개인과 단결에 대해 이야기 했어.
한 잔의 포도주와 커피를 나누며 너의 '왜'와 '하지만'을 이야기했지.
Eravamo due amici al bar. uno è andato con la donna al mare
i più forti però siamo noi. qui non serve mica essere in tanti
si parlava con tenacità di speranze e possibilità
tra un bicchier di whisky ed un caffè tiravi fuori i tuoi perché e proponevi i tuoi sarò.
두 명의 친구들이 바에 모였지. 한 친구는 여자 친구와 바다에 갔다는군.
뭐 그래도 우리가 더 세잖아. 숫자가 많다고 더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니 말이야.
우리는 끈질기게 희망과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지.
한 잔의 위스키와 커피를 나누며 너의 '왜'와 '아마 그렇게 하는 게 맞겠지만."을 이야기했지.
Son rimasto io da solo al bar. gli altri sono tutti quanti a casa
e quest'oggi verso le tre son venuti quattro ragazzini
son seduti lì vicino a me con davanti due coche e due caffè
li sentivo chiacchierare han deciso di cambiare tutto questo mondo che non va.
나 혼자 바에 남아 있었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집에서 가 있었지.
그런데 오늘 3시 쯤되니 4명의 청년들이 들어오더군.
두 잔의 콜라와 두 잔의 커피를 두고 내 근처에 앉아 있는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바꿀 거라고 하더군.
Sono qui con quattro amici al bar che hanno voglia di cambiare il mondo.
이제 나는 여기 세상을 바꾸려 하는 네 명의 친구들과 바에 앉아 있다네.
" E poi ci troveremo come le star a bere del whisky al Roxy Bar
o forse non c'incontreremo mai. ognuno a rincorrere i suoi guai."
그러고 나서 우리는 스타들처럼 만나 록시 바에서 위스키를 한 잔 할 거야.
어쩌면 아마 다시 만날 일이 없겠지 그리고는 저마다 자신의 문제에 정신없이 매달리겠지.
https://www.youtube.com/watch?v=0QGN62xiRU8
마지막에 이어지는 노래는 이탈리아의 록커인 바스코 로시가 80년대에 발표한 "무모한(대담한, 위험한) 삶, Vita Spericolata)"의 일부입니다. 이 노래는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위해 무모하게 질주하는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 노래로서 80년대 이탈리아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사랑한 노래입니다.
자신의 과거와 친구들을 노래하던 지노 파올리가 친구들이 다 떠난 자리에 새로이 등장한 젊은이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엉망진창인 세상을 바꾸려 하는 것을 보고 같이 그들과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런데 세상이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하는 것만 같을 뿐 그들의 생각과 이상은 과거의 젊은이들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저마다의 문제를 가지고 그것을 향해 질주해 나가는 것이 이 새로운 네 명의 청년들이 나누는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이 노래가 삽입된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만 이 노래에서 말하던 60년대의 젊은이들이 추구하던 이상과 그것을 위해 돌진하던 그들의 삶 역시 '무모한(대담한) 삶'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방법과 지향점이 이 다를 뿐 이상을 항해 돌진하는 것, 그래서 위험할 수도 있지만 대담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젊음이 가진 특권이 아닐까요.
김민기 님의 명복을 빕니다. 비록 그의 육신은 세상을 떠났지만 우리가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의 음악을 듣는 한 그는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를 기억하는 것처럼 젊은 시절 우리가 그의 음악을 들으며 가졌던 마음을 다시 한번 더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다짐을 우리가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