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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cide Mio Jul 30. 2024

사랑의 찬가 혹은 만가

에디트 피아프와 마르셀 세르당

지난 주 파리 올림픽 개막식 행사에서 캐나다의 가수인 셀린 디온(Celine Dion) 이 부르는 "사랑의 찬가(Hymm A L'Amour)"를 들으며 눈시울이 뜨거워 졌습니다. 남자가 나이가 들면 여성 호르몬이 많아져서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요즘은 영화나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 말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mKqMiGXxl4


에펠탑의 중앙에서 파리와 센 강을 내려다보며 노래하게 하는 극적인 분위기도 인상적이었지만 이 노래를 부르는 셀린 디온의 목소리와 표현력은 듣는 이들을 단숨에 휘어잡을 만큼 대단했습니다. 셀린 디온은 이 노래의 가사를 쓰고 처음 사람들 앞에서 불렀던 에디트 피아프(Édith Piaf, 1916-1963)가 불렀던 것과는 다른 느낌의 "사랑의 찬가"를 불러주었습니다. 극적이고 열정적으로 이 노래를 부르는 셀린 디온과 달리 1950년 처음 이 노래를 녹음하고 앨범으로 발표한 에디트 피아프는 절제되고 담담하게 하지만 애절하게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 이 노래의 배경에는 에디트 피아프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있습니다. 에디트 피아프는 1940년대 말 당시 프랑스를 대표하는 가수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었고 이미 여러 차례 당대 최고의 문화인, 예술가들과 염문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노래를 만들 무렵 그녀는 프랑스 최고의 권투 선수였던 마르셀 세르당(Marcel Cerdan, 1916-1949)과 열정적인 사랑에 빠져 있었습니다.


1946년 경에 그녀가 공연하던 클럽에서 이들의 만남이 시작되었는데 마르셀은 한눈에 그녀에게 빠졌다고 합니다. 처음 그들이 만나던 날 공연을 마치고 마르셀과 친구가 앉아 있던 테이블에 앉은 에디트가 토마토 주스를 시키자 마르셀도 그녀를 바로 따라 했다고 하는군요. 겉으로 보기에 당당한 체격의 미들급 권투 선수인 마르셀과 143 센티미터의 키에 왜소한 체격이었던 에디트, 그리고 권투 선수와 가수라는 두 사람은 여러 면에서 달랐고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이었을 뿐만 아니라 삶의 여러 면에서 공통점을 가진 이들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어렵고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고 자신의 실력과 노력으로 각자의 분야에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이었지요. 그랬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더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이었을 겁니다. 에디트에 대한 마르셀의 사랑은 거의 숭배에 가까울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숭배에 가까운 이 사랑에 대해 에디트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개의치 않을" 사랑으로 답해 주었습니다.


불우하게 자라나면서 문화적인 면과는 담을 쌓고 지낸 마르셀에게 에디트를 책을 권해주고 또 음악을 권해 주면서 그를 문화적으로 성숙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에는 한 번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연인의 삶이라 할 수 있는 권투에 관심을 가지고 그가 경기를 할 때면 늘 링 옆에서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도 에디트였습니다. 때로는 주위에서 에디트가 그에게 불운을 가져온다고 했지만 마르셀은 그녀가 자신에게 행운을 가져온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이 무렵 에디트는 미국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고 마르셀 역시 유럽 챔피언에 이어 세계 챔피언의 자리를 노리면서 미국의 여러 선수들과도 시합을 하면서 그 이름을 알렸습니다. 마침내 1948년 마르셀이 세계 챔피언에 도전하던 시합이 미국 뉴저지에서 열렸는데 그 자리에는 미국에서 공연을 하고 있던 에디트도 같이 있었고 마르셀이 세계 챔피언이 되는 것을 보면서 기뻐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뜨거운 사랑과 함께 1948년에서 1949년으로 이어지는 시기는 에디트의 예술적인 영감이 꽃피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셀린 디온이 불렀던 "사랑의 찬가"가 바로 이 시기에 만들어진 노래이지요. 이 노래의 가사를 쓴 에디트는 그 가사 안에 마르셀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담았습니다. 에디트는 1949년 9월에 시작된 뉴욕의 공연에서 이 노래를 처음 불렀다고 하는 데 노래의 클라이 막스에서 "설사 당신이 죽어서 우리가 헤어진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나는 당신을 따라갈 겁니다. 저 푸른 하늘에서 영원히 함께 할 거예요. 신은 연인들을 다시 맺어줄 거니까요, "라고 하는 가사는  몇 달 후 벌어진 비극을 생각하면 참으로 의미 심장한 가사가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1949년 여름에 마르셀은 미국의 디트로이트에서 세계 챔피언 방어전을 했는데 그 시합 자리에는 에디트가 공연 때문에 참석하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인지 이 시합에서 마르셀은 1 라운드에 쓰러지면서 오른쪽 어깨가 빠지는 부상을 입게 됩니다. 어깨가 빠진 채로 9 라운드까지 시합을 이어가던 그는 결국 의사의 권유에 따라 경기를 포기하고 챔피언 벨트를 미국의 권투 선수인 제이크 라모타(Jake LaMotta, 1922-2017)에게 뺏깁니다.


*사족입니다만 제이크 라모타는 1980년 마틴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만든 영화 "Rising Bull(1980)"의 실제 모델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로버트 드 니로가 그의 역을 맡았지요.


이 경기를 지켜본 많은 이들은 한쪽 팔을 쓰지 못하는데도 9 라운드까지 경기를 이어간 마르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만일 그가 두 손을 다 쓸 수 있었다면 제이크는 상대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평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재대결이 계획되었는데 여러 차례 연기를 거친 끝에 1949년 12월로 경기 날짜가 잡혔습니다.  경기 날짜가 미루어지면서 미국에서 그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하던 에디트에게 가족들이 있는 카사블랑카로 잠시 돌아가겠다고 말한 마르셀의 결정은 그녀를 화나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그런 일로 깨어질 정도는 아니었지요.


그 해 10월에 프랑스에 있던 마르셀에게 에디트는 빨리 자신의 곁에 와달라는 편지를 보냅니다. 그래서 시합 전 훈련을 위해 미국행을 준비하고 있던 마르셀은 원래 계획이었던 여객선을 타는 대신 비행기를 타고 그녀가 공연을 하고 있던 뉴욕으로 날아갑니다. 하지만 이 계획 변경은 그들의 사랑에는 치명적인 일이었습니다.  마르셀이 타고 가던 비행기가 중간 급유를 위해 대서양에 있는 아조레스 섬에 도착하면서 이 비행기가 추락하였고 타고 있던 승객 모두가 사망하는 사고가 벌어진 것이지요.


그가 오기만을 학수고대하던 에디트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공연을 앞두고 준비를 하면서 마르셀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던 에디트는 자신이 귀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위에서 그날 저녁의 공연을 취소하라고 했지만 그녀는 공연을 하겠다고 했고 공연이 시작되었을 때 그녀는 "오늘은 마르셀을 위해 노래하겠어요."라고 하면서 노래를 이어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곡으로 "사랑의 찬가"를 부를 때 그녀는 마지막 클라이막스 부분, 신이 사랑하는 연인들을 하늘에서 이어줄 것이라는 가사를 채 마치지 못하고 실신했다고 합니다. 아마 그런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앨범으로 소개된 그녀의 "사랑의 찬가"는 슬프고 애절합니다. 셀린 디온이 보여준 극적인 표현이 아니라 슬픔이 안으로 갈무리되어 담담하게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세상을 떠난 연인을 기억하면서 그를 그리워하는 애절함이 들어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PjRR7LoE5o


열정적이고 비극적인  이 두 사람의  사랑은 세간의 관심을 받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에디트를 만났을 때 마르셀은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고 세 명의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사랑에 빠졌고 에디트는 이 사실 때문에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그 두 사람에게는 뜨거운 로맨스였겠지만 1940년대 말 프랑스에서 이들의 사랑은 불륜이었고 지탄을 받을 수 있는 사랑이었지요.  


에디트는 마르셀에게 단지 아내만 있다면 개의치 않고 그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겠지만 그의 아이들이 상처받고 고통받는 것은 결코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 그가 결혼을 깨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마르셀이 죽은 후 에디트는 마르셀의 자식들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베풀기도 했었지요. 아버지와 같은 이름을 가졌던 마르셀 세르단 주니어도 권투 선수로 활동을 했는데 그에게 권투를 권한 것도 에디트였고 마르셀 주니어는 에디트를 어머니처럼 따랐다고 합니다. 마르셀의 죽음 이후 폐인이 되다시피 할 정도로 고통을 겪던 에디트에게 손을 내민 마르셀의 아내와도 가까운 관계를 이어갔다고 합니다. 한 남자를 사랑한 두 여인이 그 남자의 죽음 이후 가까워지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쉽게 이해 되지는 않습니다만 마르셀에 대한 에디트의 사랑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마르셀이 세상을 떠나고 에디트는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에디트에게도 병이 찾아왔고 슬픔과 고통을 잊기 위해서였는지 그녀는 알코올에 탐닉하면서 여러 번 재활 기관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몇 번의 교통사고를 겪으면서 만신창이가 된 그녀의 몸은 진통제 없이는 살기 힘든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계속 노래를 발표했고 40대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3년은 특히 그녀의 예술적인 정열이 불타올랐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건 또 다른 이야기가 되겠군요.


겉으로 보기에 그녀는 결코 화려하고 글래머러스한 가수는 아니었습니다. 모든 이의 눈을 한눈에 사로잡는 외모를 가진 그런 가수는 아니었지만 그녀가 노래를 시작하면 그녀의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무대를 가득 채웠고 그녀의 노래에 따라 사람들은 울고 웃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그러한 음악에 대한 열정은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그녀는 늘 사랑을 갈구했습니다. 마르셀을 만나기 전에도 그랬고 마르셀이 떠나간 이후에도 그녀 곁을 지나쳐간 남성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여러 차례에 자신이 가장 사랑한 남자, 진정으로 사랑한 남자는 마르셀 뿐이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떤 이들은 그녀가 그렇게 느끼는 것은 마르셀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마르셀이 그런 사고를 겪지 않고 에디트 곁에 다른 남자들처럼 머물렀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에디트가 먼저 그를 떠났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에디트의 남성편력을 생각하면 그럴 법하게도 들립니다만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할 이유는 없지요. 하지만 그 두 사람의 사랑을 통해 탄생한 "사랑의 찬가"는 그들의 사랑에 대한 사람들의 이런저런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우리 곁에서 감동을 주고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겁니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모든 이들에게 그 사랑이 이어갈 수 있는 영감과 힘을 줄 것입니다.


 "남과 여(1966)"라는 영화로 우리에게도 알려진 끌로드 를루슈(Claude Lelouch) 감독은 1983년에는 이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에디트와 마르셀(Edith et Marcel, 1983)"이라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마르셀의 역을 맡은 이는 다름 아닌 마르셀의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가수와 바람난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서 아들이 아버지의 역을 한다는 것이 무척 "프랑스" 식이라고 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에디트와 마르셀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이별에는 그저 가수와 복서 사이의 그렇고 그런 스캔들로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XUtmDnM0zE


에디트 피아프가 죽은 연인 마르셀 세르당을 위해 이 노래를 불렀다면 올림픽 개막식에서 우리에게 감동을 준 셀린 디온은 누구를 혹은 무엇을 위해 이토록 감동적인 노래를 불렀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현재 셀린 디온은 "강직인간증후군"이라는 병을 앓고 있고 그로 인해 지난 4년간 무대에 서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올림픽 개막식에서 이토록 감동적인 공연을 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물론 셀린 디온은 2015년에 American Music Award 시상식에서도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지난 주 올림픽 개막실에서 불렀던 것과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이 이렇게 절실하게 노래하게 만들었는지 생각해 보다가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한 달 전쯤에 그녀는 미국의 한 언론인과 인터뷰를 하면서 비록 자신이 병을 앓고 있지만 그 병은 아무것도 자신으로부터 앗아가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기어서라도 무대에 오르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손으로라도 노래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은  그것이 해야 할 일이거나 할 필요가 있는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기 때문에 하는 일이고 그것이 바로 셀린 디온 자신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셀린 디온이 부르는 절절한 사랑의 찬가는 자신의 일생을 같이 한 음악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셀린 디온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왜냐하면 신이 그녀가 사랑하는 음악과 이 세상에서 다시 이어지게 해 주었으니까요,

https://youtu.be/JoTlmekON-U?si=MB6vSOc9wZR7tVML&t=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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