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cide Mio Sep 18. 2024

너를 사랑하면서

Amando Ti

잔나 난니니(Gianna Nannini)라는 이탈리아의 여가수가 있습니다. 축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 보셨을 목소리입니다. 1990년에 이탈리아에서 월드컵이 열렸을 때 에두아르도 벤나토(Eduardo Bennato)라는 남자 가수와 함께 '이탈리아의 여름(Un Estate Italiana)'이라는 공식 주제 음악을 부르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탈리아의 여가수라면 우리가 떠올리는 이미지와 잔나 난니니는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90년대 초반에 이 가수를 처음 보았을 때 저는 남자인 줄 알았습니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무대 위에서 머리를 흔들던 모습이며 허스키한 목소리까지 전형적인 이탈리아의 여가수와는 사뭇 달랐지요. 만일 부드러움이 여성스러움의 특징이라고 말한다면 잔나 난니니는 그런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가진 가수는 아닙니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은 부드러워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톰보이의 이미지로 거칠 것 없이 무대를 종횡으로 누비며 뛰어다니는 그녀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여성 록커입니다.


그녀는 일흔이 되어 가는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데 올해 초에 새로 발매한 앨범의 노래들을 들어 보면 일흔이 된 그녀의 나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젊은 시절 보여주였던 그녀의 거칠 것 없던 열정은 일흔이 된 그녀의 성숙한 내면과 합쳐지면서 훨씬 깊이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로커의 영혼이 살아있는 힘이 넘치는 노래들을 불러주고 있습니다. 그녀의 분위기에서는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강한 '포스'가 느껴집니다.


지난 2004년 그녀는 'Perle(진주)'라는 제목의 새 앨범을 내놓았는데 그중에서 한 곡, Amandoti(아만도띠, 너를 사랑하면서)를 "같은 노래 다시 부르기" 매거진의 첫 노래로 여러분들에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이 노래는 CCCP라는 이탈리아 펑크 그룹이 1990년에 발표한 노래인데 원곡의 독특한 분위기는 그 누구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그런 노래였지요. 아래에는 뮤직 비디오가 아닌 앨범 버전의 노래를 연결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CBYnC4m8QU

노래의 시작과 함께 들려오는 CCCP의 싱어인 지오반니 린도 페레티(Giovanni Lindo Ferretti)의 목소리는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지치게 만들어. 내 속의 모든 것을 비워내는 것 같아"라고 하면서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그것에 엮인 여러 혼란스러운 감정에 지친 한 사람의 마음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지오반니는 이 노래의 가사를 직접 썼던 사람이었던 만큼 그것을 제대로 표현해 낼 수 있었겠지요. 


그런데 이 노래가 처음 발표되고 10여 년이 지난 후 잔나 난니니는 이 노래를 자신만의 분위기로 새로이 해석하여 들려주고 있습니다. 아래의 클립은 그녀가 쉰이 되었던 2004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오리지널보다는 좀 더 더 세련된 편곡과 함께 이 음악의 리듬을 타며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열정적인 로커의 모습보다는 음악을 즐기며 여유 있게 그 음악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표현해 내는 노련한 가수의 모습이 보입니다. 멋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h1WVdaCNbY

지금 열렬한 사랑에 빠져 있는 분들에게는 좀 죄송한 말 입니다만 사랑이 오래되다 보면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분명 상대를 사랑하지만 바로 그 사랑 때문에 나 자신이 힘들어지는 경우가 있지요. 내가 알던, 내가 사랑하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상대에게서 보고 실망하고 화를 낼 수도 있고 또 그렇게 실망하고 화내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이것밖에 사랑하지 않았나." 하면서 말이지요. 그러면서 어느 날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인생이 그런 거고 또 사랑이 그런 거지." 하고 스스로를 위로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감정에 한 동안 사로잡혀 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상대에게서 기쁨을 얻고 같이 보낸 시간을 생각하며 또다시 사랑을 느낍니다. 그것을 우리 어른들은 정이라고 불렀는지도 모르겠군요.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울고 웃고 다투면서 같이 인생을 살아가는 게 사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상황을 생각하시면서 이 노래를 한 번 들어보시지요. 아래에 가사와 함께 옮겨 봅니다.

Amandoti
Amarti m'affatica mi svuota dentro
Qualcosa che assomiglia a ridere nel pianto
Amarti m'affatica mi da' malinconia
Che vuoi farci e' la vita. E' la vita, la mia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지치게 만들어. 내 속의 텅 비워 내는 것 같아.
그것은 마치 울면서 내뱉는 웃음과 같은 것이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지치게 하는구나. 그리고 나를 우울하게 만들어.
어떡하겠니.. 인생이 그런 거지 뭐. 내 인생이...
<후렴>
Amami ancora fallo dolcemente
Un anno un mese un'ora perdutamente
Amami ancora fallo dolcemente
Solo per un'ora perdutamente
여전히 나를 사랑해 주렴. 달콤하게 말이야
한 해, 한 달 아니 한 시간 동안이라도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그렇게.
여전히 나를 사랑해 주렴. 달콤하게 말이야
단지 한 시간이라도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그렇게.
Amarti mi consola le notti bianche
Qualcosa che riempie vecchie storie fumanti
Amarti mi consola mi da' allegria
Che vuoi farci e' la vita
E' la vita, la mia
너를 사랑한다는 것이 잠 못 드는 하얀 밤에 나를 위로하는구나.
연기처럼 사라져 가는 옛 날 이야기들을 다시 가득 채우는구나.
너를 사랑한다는 것이 나를 위로하고 나에게 기쁨을 주는구나.
어떡하겠니 인생이 그런 거지 뭐. 내 인생이...
<후렴>

앨범에 녹음이 된 노래는 상당히 절제되고 부드러운 것이었지만 잔나 난니니가 공연에서 이 노래를 부를 때는 로커로서 그녀의 모습이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같은 노래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느껴졌으니까요. 어쩌면 이 노래를 "떼창" 하는 관객들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래에는 2009년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이탈리아의 아브루조(Abruzzo) 주를 돕기 위한 자선 공연에서 조르지아(Giorgia)라는 다른 가수와 함께 이 노래를 부르는 잔나 난니니의 모습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1DPxBG28G0


저에게 이 노래는 처음 듣는 순간부터 멜로디가 귀에 바로 와닿아 잊을 수 없는 그런 노래였습니다. 그래서 2004년에 처음 들은 이후부터 늘 제 곁에 두고 자주 듣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이들이 부르는 이 노래도 귀에 들어왔는데 최근 만들어져서 넷플릭스를 통해 소개된 영화 "무솔리니 납치(Rapiniamo il Duce)"에서 배우인 마틸다 데 안젤리스(Matilda De Angelis)가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보이더군요.


1990년에 만들어진 노래가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불려진다는 것이 좀 불편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노래를 제대로 표현해 내는 마틸다 데 안젤리스의 노래 솜씨가 뛰어나다 보니 좋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마틸다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참 슬픈 일이구나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XJkMydg1tI  

이 노래를 부른 다른 가수 중에는 한국의 젊은 층에 최근 많이 알려진 이탈리아의 록그룹 모네스킨(Måneskin) 도 들어 있습니다. 아래에 연결한 영상에서 보이는 이 그룹은 그렇게 두드러지는 점이 보이지 않습니다만 기존의 모든 규칙과 통념을 거부하는 이들의 반항적인 스타일과 퍼포먼스는 처음 접하시는 분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음악이 주는 신선함과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이들이 이탈리아를 벗어나 전 세계에서 인기를 얻게 만들었습니다. BTS 가 영어권에서 인기가 있는 것과 연결 지어 한 이탈리아 밴드가 영어권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모습을 비교하시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특히 Amandoti라는 이 노래를 처음 발표한 이들이 펑크 록 밴드인 CCCP였던 만큼 모네스킨이 부르는 노래는 원곡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까요? 노래의 후반부에 가면서 몰아치는 기타와 드럼의 소리는 7,80년대의 하드락을 연상케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_mBWUcIUL74

마지막으로 세계 각 국에서 유행하고 경연대회 프로그램을 통해 등장한 가수  두 사람이 부르는 이 노래를 소개 합니다. 


"The Voice"의 이탈리아 판에서 입상을 한 안드레아 세템브레(Andrea Settembre)가 재해석 한 이 노래를 연결합니다. 원곡을 노래하는 중간에 랩을 삽입했는데 특히 자신의 고향인 나폴리 사투리로 쏟아져 나오는 랩이 이 노래에서 들려주는 사랑에 빠진 이들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더 잘 표현해 주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EeUwr8LayY 

Xfactor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등장한 가수 탈레아(Talèa)가 기타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이 노래는 록커들이 보여주는 에너지는 없지만 여전히 이 노래가 주는 느낌을 살리며 사랑에 대해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에서는 사랑에 혼란스러워하는 모습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갈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여러 버전의 이 노래 중에서 여러분은 어떤 것이 가장 마음에 드시는 지요? 

https://www.youtube.com/watch?v=2Xdv9akeSy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