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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cide Mio Sep 26. 2024

인터넷 아카이브와 열린 도서관(2)

COVID와 열린 도서관

* 앞 글에서 이어집니다.


열린 도서관(Open Library)

브루스터 케일은 “디지털 사서(Digital Librarian)”라고 스스로를 소개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인터넷 아카이브는 하나의 도서관이라고 자주 이야기하고 있지요. 그런 그였기에 인터넷 아카이브가 대중에게 공개되기 전인 1999년부터,  출판된 책을 디지털 화해서 인터넷으로 사람들에게 빌려주는 열린 디지털 도서관을 구상했고 그것이 실제로 나타난 것이 열린 도서관(Open Library)입니다. 

열린 도서관이 처음 시작된 것은 2006년이었는데 최초에 이 프로젝트에서 기술 부문을 맡았던 이가 아론 슈워처(Aron Schawrtz)였습니다.  이 이름을 들어보신 분들이 많이 계시리라 믿습니다만 아론은 크리에이티브 커먼과 RSS 등 열린 인터넷을 위해 노력했던 천재 프로그래머였습니다. 아직 20대이던 지난 2013년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지만 민주적이고 열린 정보 사회를 꿈꾸며 그 믿음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던 그는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브루스터나 아론 같은 이들이 모여서 시작한 도서관인 만큼 이 도서관은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도서관입니다. 지금도 누구나 간단히 이용자 등록을 마치면 이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전자책들을 온라인으로 빌려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열린 도서관에서 열람이 가능한 전자책은 특히 장애를 가진 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포맷으로 제공하기도 합니다. 기존의 전자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플랫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방식입니다.  


학교나 연구 기관에 소속된 이들이라면 자신의 기관에서 만든 도서관을 통해 필요한 자료들을 얻을 수 있지만 그런 여건에 놓여 있지 않은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이 열린 도서관은 아주 유용한 도움을 주는 존재이지요. 그리고 이용자가 살고 있는 지역에 구애를 받지 않으니 전 세계에서 도서관 서비스를 받기 힘든 이들에게 이 도서관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쉽게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인터넷으로만 공개된 이 전자 도서관을 열면서 브루스터가 법적인 기반으로 삼은 것은 “최초 판매의 원칙(퍼스트 세일 독트린, First Sale Doctrine)”이었습니다. 합법적으로 구입한 책은 그 구입자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판매하거나 대여할 수 있다는 원칙인데 이런 원칙 때문에 헌책방에서 책을 팔 수도 있고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브루스터는 이 원칙을 조금 더 확장해서 합법적으로 구입한 책에 대해서는 구입자가 스캐닝을 통해 디지털 화 한 후에 그것을 대여할 수도 있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단, 스캐닝한 원래의 책은 철저하게 통제하여 누구도 접근할 수 없게 한 후에 한 번에 한 사람만 디지털화 한 책에 접근을 하게 허락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 도서관 계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는 이른바 “통제된 디지털 대출(CDL, Controlled Digital Lending)”방식인데 이 방식으로 책을 대출하는 도서관에서는 철저하게 지키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먼저 합법적인 방법으로 인쇄본을 구입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 책을 디지털화한 후에 최초에 구입한 인쇄본 책은 창고나 기타 폐쇄된 장소에 누구도 접근할 수 없게 보관을 하고(통제, Controlled) 디지털 본을 인쇄나 다운로드가 불가능한 시스템을 이용해서 사람들에게 빌려 주되(디지털 대출 Digital Lending,) 그것도 한 번에 한 사람에게만 빌려주는 원칙을 따릅니다.  


즉, 온라인으로 책을 빌려간 사람이 그 책을 디지털 방식으로 이용하는 동안은 다른 사람들은 이용할 수 없으니, 결국 인쇄된 책을 구입한 도서관에서 한 번에 한 사람에게만 그 인쇄본을 대출하는 것과 실제적으로는 같은 방식으로 대출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이런 방식을 통해 도서관에서는 저작권을 보호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자세히 따져보면 이 방식이 종이책을 대출하는 것보다 저작권을 더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종이책을 도서관에서 빌리면 빌려간 사람이 쉽게 복사를 할 가능성이 있지만 디지털 대출은 그런 기회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고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시간이 걸리겠지만 각 각의 페이지를 스크린 캡처 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실제 그런 일을 할 사람이 많을지 아니면 종이책을 빌려 복사할 사람이 많을지는 쉽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열린 도서관의 대출 과정입니다.

국가 응급 도서관(National Emergency Library)

인터넷 아카이브에서 운영하는 열린 도서관은 2006년부터 통제된 디지털 대출의 원칙 아래에서 디지털 대출을 해 오고 있었습니다. Better World Books라는 인터넷상의 중고책 판매 사이트와 연결하여 한꺼번에 많은 책을 구입해 디지털화한 후 그 책들은 대형 컨테이너에 보관하여 아무도 접근할 수 없게 통제하고 디지털 버전의 책은 열린 도서관을 통해 대출을 했었지요.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도서관들이 문을 닫게 된 2020년 3월에 인터넷 아카이브에서는 국가응급도서관(National Emergency Library)이라는 과감한 조금은 무모해 보이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일반 도서관이 문을 닫았고 그래서 이용자들은 그곳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를 이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열린 도서관에서는 이런 이용자들을 위해 자신들이 제공하는 자료들을 더 많은 사람에게 확대해서 개방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그동안 지켜오던 원칙, 즉, 한 권의 책을 한 번에 한 사람에게만 제공하던 원칙을 깨고 여러 명이 동시에 같은 책을 읽을 수 있게 한 것이었습니다. 


코로나로 도서관이 문을 닫은 상황을 응급 상황으로 보고 원격 교육이나 연구와 업무를 위해 정보가 필요한 학생과 연구자 그리고 일반인들이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자료를 이용할 수 있게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것이 국가 응급 도서관의 서비스의 핵심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수가 동시에 책을 읽는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프로젝트는 시작하자마자 여러 출판사들과 저작권자들의 반발을 받았습니다. 


응급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인터넷 아카이브의 조치는 조금 과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같은 시기에 하티 트러스트(Hathi Trust)라는 연구(대학) 도서관 중심의 전자 도서관 컨소시엄에서도 열린 도서관과 유사한 서비스를 긴급임시자료제공서비스 (ETAS, Emergency Temporary Access Service)라는 이름으로 제공했는데 이 서비스에서는 앞서 말한 통제된 디지털 대출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런 방식이지요. 만일 우리 대학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책이 하티 트러스트에 디지털 버전으로 존재하면 우리 대학 도서관 이용자들을 로그인 과정을 거쳐 이용자 인증을 한 후에 디지털 버전의 책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온라인으로 읽는 것만 가능할 뿐 다운로드나 인쇄는 불가능했고 또 동시 접속 가능한 이용자의 숫자도 우리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권수에 맞추어 이루어졌습니다. 


즉, 디지털화된 특정한 책의 인쇄본이 우리 도서관에 한 권만 있다면 우리 도서관 이용자 중 한 사람만이 접속 가능했고 다른 이들은 그 사람이 이용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같은 책이 우리 도서관에 5권이 있다면 5명까지 동시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그런 방식이었지요.  그리고 설사 하티 트러스트에서 디지털 버전을 소장하고 있더라도 우리 도서관에서 인쇄본을 소장하고 있지 않으면 우리 도서관 이용자들은 그 책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엄격한 통제된 과정을 거쳐서 서비스가 제공되었기에 출판사를 비롯한 저작권자들은 하티트러스트에 대해서는 크게 반발하지 않았지만 열린 도서관의 무제한 공개에 크게 반발했고 저작원 침해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국가응급도서관은 3개월 만에 서비스를 중단해야 했고 열린 도서관의 서비스는 옛 날 방식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 재판은 진행 중인데 지난 9월 초에 내린 판결에 따라 열린 도서관에서는 그동안 통제된 디지털 대출 방식으로 제공하던 책들 중에서 50만 권을 온라인에서 내려야 했습니다. 브루스터와 인터넷 아카이브에서는 이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를 계획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2024년 9월 말 현재에도 열린 도서관에 접속하시면 여전히 대출하실 수 있는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작권이 살아있는 책들은 온라인으로 읽기만 가능하지만 1928년 이전에 출판되어 저작권이 소멸되었거나 그 이후에 출판되었더라고 하더라도 저작권 연장이 되지 않아 저작권이 소멸이 된 책은 전문을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전자책들은 광학문자인식(OCR) 과정을 거친 파일로 제공이 되기 때문에 자체 도서관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읽기 기능을 이용해서 음성으로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열린 도서관뿐만 아니라 인터넷 아카이브를 통해 접근이 가능한 문서 자료들은 책 이 외에도 많이 있고 그 숫자는 더 늘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언어를 한국어로 제한하고 찾아보시면 한글 자료들도 상당수 찾으실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도 업로드를 허용했기 때문에 그런 자료들 중에는 분명 저작권을 침해하는 자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인터넷 아카이브와 열린 도서관 전체를 닫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열린 도서관의 국가응급도서관 프로젝트가 촉발한 이 소송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이 기회를 이용해서 그동안 눈에 가시 같았던 열린 도서관과 통제된 디지털 대출 방식 전체를 법적으로 금지시키려 하고 있지요. 즉, 통제된 디지털 대출 방식은 기존의 여러 법리들을 해석하고 새로 등장한 기술적인 진보를 활용해서 만들어낸 새로운 방식의 대출 절차인지라 그것을 허용하거나 금지하는 기존의 법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티 트러스트를 비롯한 여러 대학 도서관들에서 시도하고 있는 이 방식에 대해 공식적으로 소송을 제기한 출판사나 저작권자는 아직 없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도서관들에서도 최대한 조심스럽게 저작권법을 생각하며 이 일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민간의 개인 도서관이라 할 수 있는 인터넷 아카이브의 열린 도서관에서는 그동안 관용적으로 묵인되던 방식의 제한을 한 단계 더 너머로 밀어붙였고 이것이 출판계의 강한 대응을 촉발한 것이지요. 


그래서 도서관 계에서도 이 소송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열린 도서관에 대해 지원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열린 도서관의 조금은 무모했던 국가응급도서관 프로젝트가 통제된 디지털 대출 방식 자체에 금지하는 법적인 조치로 이어질까 걱정스러운 것이지요.  그리고 더 나아가 이런 조치가 확대되다 보면 전자책에 대한 도서관의 권리를 점점 더 제한하게 될 수 있다고 보고 다각적으로 대응책을 찾고 있습니다. (도서관과 전자책에 대해서는 이 전의 글을 참고해 보십시오.)


저도 개인적으로는 열린 도서관의 도전 정신에는 찬사를 보냅니다. 그 덕분에 도서관과 전자책의 관계와 그것이 사회 전체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제대로 된 논의가 이루어지게 되었지요. 하지만 일반 도서관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서들과 관리자들은 저작권법을 따르고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사회 구성원 중의 누구보다 그 일에 신경을 씁니다. 그래서 통제된 디지털 대출과 같은 복잡하지만 법을 최대한 준수하고 이용자들의 편의를 돕는 업무를 만드는 것이지요.  


이 소송의 최근 결과에 대한 반응도 입장에 따라 엇갈리는데 열린 도서관에서 그동안 해 오던 통제된 디지털 대출 방식을 막는 것이 일부 대형 출판사들과 몇몇 작가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결국 손해가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해면 어떨까요?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작가들은 글을 쓰기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글을 읽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책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서 여러 가지 자료를 읽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이들 역시 자료를 쉽게 입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책을 쓰기 위해 읽어야 하는 책들을 모두 작가 본인이 구입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이들 역시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와 서비스를 이용해야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도서관에서 이용자들을 위해 제공하는 이런 대출 서비스들이 제약을 받는다면 결국 미래의 창작 활동과 정보 생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저작권의 궁극적인 목적은 저작권 소유자의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창작과 새로운 정보의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목적을 생각한다면 도서관이라는 기관을 통해서 저작물이 공유되는 것을 제한하는 일은 궁극적인 목적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인터넷 아카이브와 열린 도서관의 최초 설립 목적이었던 지구상의 모든 지식을 한 곳에 모아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대부분의 도서관 종사자들이 가지고 있는 꿈입니다. 특히 사라지기 쉬운 기록들을, 그것이 디지털이던 아날로그이던, 보존하고 정리하여 사람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도서관과 아카이브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의 의무입니다. 인터넷 아카이브와 열린 도서관을 둘러싼 논의도 사회 전체를 위한 공익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에서 본다면 다른 판단이 내려질 여지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사족으로 덧붙입니다. 과거의 기록을 제대로 보존하지 않으면 우리는 과거의 실수를 다시 반복할 것이고 미래는 더욱더 힘들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은 필요 없어 보이고 귀찮은 일 같지만 종류에 관계없이 기록을 보존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반만년의 우리 역사를 자랑하면서 화려한 고대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50년 전 우리의 기록, 심지어 15년 전 우리의 기록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런 50년 전의 기록들이 수천 번 모여야 자랑스러운 반 만년 역사를 우리 후손들이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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