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엄마, 집에 과일 있어?”
“과일 많아. 사오지 마.”
엄마는 항상 집에 먹을 게 넘친다고 하니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 과일이 ‘많다’고 했으니 적어도 두 세 종류의 과일은 있겠구나 추측하며 집에 도착한다.
“엄마, 배고파. 과일 좀 줘.”
“부엌에 과일 있으니 먹어.”
식탁 위를 보니 건자두 몇 봉지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과일이 냉장고에 있나 싶어 문을 열어본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엄마 과일 어딨어? 건자두 밖에 없는데”
“건자두 있잖아. 그게 과일이지.”
부모님 집에 갈 때마다 나눠먹을 음식을 챙겨간다. 예를 들면 사과 3개, 귤 5개, 시루떡 한 팩. 엄마도 내가 집에 오면 이것저것 챙겨준다. 도시락 김 2개, 직접 끓인 미역국 2인분, 치약 한 개. 둘 다 그 정도면 충분히 넉넉하다고 느낀다. 얼마 전 동생에게 전달해 줄 물건이 있어서 남편과 길을 나서려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집에 들러서 귤 좀 가져갈래? 강은이한테도 갖다 주고. 선물로 귤이 엄청 많이 들어왔는데 이걸 다 어쩌지.”
우리는 차를 돌려 부모님 집으로 향했고 곧 도착한다고 전화를 했다. 주차장에 들어서니 부모님이 기다리고 있다. 한 손에는 귤이 잔뜩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서. 귤을 받은 후 동생네 집으로 가는데 남편이 묻는다.
“근데 아까 어머님이 귤 많이 주신다며? 저게 전부야?”
“저 정도면 많은 거 아닌가?”
“그런가. 난 처음에 비닐봉지를 건네 주시길래 귤 담은 박스는 어디에 있나 생각했거든. 확실히 우리 부모님과 너희 부모님은 많고 적음의 기준이 다른 것 같아.”
맞다. 친정과 시댁의 ‘양’에 대한 기준은 확실히 다르다. 시어머님은 여름마다 옥상에서 수확한 토마토와 오이를 택배로 보내준다. 주변에 다 나눠주어 조금밖에 못 보낸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택배를 열어보면 왕 토마토 50개, 왕 오이 50개가 들어있다.
신혼 초에는 ‘조금’의 기준이 친정과는 너무 달라 시댁에서 택배를 받을 때마다 막막하기만 했다. 이걸 언제 다 먹지. 언젠가 시댁에 내려갔을 때 어머님께 굵은 소금 좀 가져가겠다고 하니 옥상 장독대에서 마음껏 퍼가라고 한다. 세숫대야만한 바가지로 한가득 퍼서 봉지에 담았다. 어머님이 호통을 쳤다.
“그까짓 거 가져가려면 가져가질 말어.”
시부모님 성향은 남편에게 그대로 이어진다. 코로나 기간 때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자 남편은 빵 만드는데 관심을 보였다. 식빵 만들기에 성공한 남편은 밀가루로 창조 할 수 있는 모든 음식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규모가 남다르다. 팬케익을 해주겠다며 밀가루를 들이붓더니 한번에 20장을 굽지 않나, 빵에 바를 당근 잼을 만든다며 하루 종일 강판에 당근을 갈고 있지 않나, 부엌이 온통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가장 큰 희생자는 나다. 일주일 내내 남편이 산더미처럼 만든 음식을 먹고 또 먹어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한적했던 식품 저장실이 계피가루, 아몬드가루, 인스턴트효모, 비정제 설탕, 바닐라 익스트릭트, 찹쌀가루, 쌀가루, 통밀가루, 호밀가루, 강력분, 중력분, 박력분, 코코넛 오일, 각종 견과류에 점령당해 버렸다.
남편은 여전히 부족한 재료가 많아 제대로 맛을 낼 수 없다며 아쉬워한다. 양가 부모님의 많고 적음의 기준이 다른 게 확실하다는 걸 남편이 몸소 보여주었다. 다르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