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엄마 친구는 내 친구

by 유자와 모과

부모님 집에 가면 거실 소파에 앉아 빈둥거릴 때가 많다.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하다보면 엄마가 슬그머니 옆으로 와 두서없이 말하기 시작한다.


“어제 엄마 친구 순이가 전화를 했는데 요즘엔 무슨 자격증을 딴다고 공부하고 있다네.”

“아 옛날에 피아노 학원 했다는 그 친구 말이지? 여전히 열심이시네.”

“그러게 말이야. 남편이랑 같이 아동 상담센터를 운영하려나봐. 걔는 참 열심히 산다니까.”



엄마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엄마 친구 순이가 처음 피아노 학원을 시작한 계기는 사소했다. 부모가 일을 해서 집 앞 동네 놀이터에서 하루 종일 노는 아이들이 몇 명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순이는 집에서 취미로 피아노를 치고 있었는데, 아이들 몇 명을 데려다 바이엘(피아노 기초 교본)을 무료로 가르쳐 줬다.


그게 입소문이 났다. 순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달라는 부모들이 늘어났다. 피아노 전공도 하지 않았고 피아노를 잘 치지도 못했던 순이는 얼떨결에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규모가 점점 커지자 그녀는 피아노를 정식으로 배워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한다.


순이를 비롯하여 엄마가 자주 언급하는 친구 몇 명이 있다. 영자, 숙자, 동자 등등. 엄마 친구들을 한 번도 만나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분들이 어디 사는지, 건강은 어떤지, 자식들은 무얼 하는지, 요즘 걱정거리가 무엇인지는 그럭저럭 알고 있다.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이미지가 그려지면서 한 분 한 분이 오랜 세월을 함께한 내 친구처럼 느껴진다. 엄마 친구가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으면 엄마가 슬픈 만큼 내 마음도 슬퍼진다.


상황은 시댁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댁에서는 상황이 한층 더 복잡하다. 어머님 친구와 친구 자식들까지 상상 속 내 친구가 되어버린다. 어머님을 만나면 나는 자연스럽게 묻는다.


“수복이라는 어머님 친구 분은 잘 지내세요?”


그러면 어머님은 그간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알려준다. 수복이랑 밭에서 천년초를 잔뜩 채집해 대추와 생강을 넣고 즙을 내린 얘기, 그 집 딸이 안경점을 폐업하고 잡화점을 새로 개업했는데 온라인 판매가 잘 되고 있다는 얘기, 그 집 손자가 용돈이 떨어지면 슬리퍼를 신고 택시를 탄 후 친구 집에 온다는 얘기 등을 실타래 풀듯 풀어놓는다. 맞장구를 치며 듣다보면 수복이가 내 친구였던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어머님 단짝 친구 중에는 경희도 있다. 경희는 동네 친구이자 교회 친구이기도 한데, 그 딸 이름이 경미다. 경미는 남편과 동갑내기라 둘이 어렸을 땐 몇 번 같이 놀기도 했단다. 결혼 안한 경미는 부모님과 같이 살기에 이야기 속에 경희와 경미가 콤비로 등장할 때가 많다.


“경미가 이번에 경희 차 새로 바꿔준 거 아니? 흰색 산타페인데 크고 멋지더라. 며칠 전에 경희가 경미랑 여수에 놀러갔다 왔대. 바다가 보이는 호텔에서 잤는데 풍경이 그렇게 좋더래. 경미가 보너스를 받았다고 밥을 사줘서 먹고 왔는데 고기가 진짜 부드러운 거 있지.”


나는 어머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나와 동갑인 경미 얼굴을 그려보고 상상한다.


작년 성탄절에 시댁에 내려갔다. 시부모님이 다니시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후 교회 밖을 나서는데 어머님이 갑자기 소리쳤다.


“어머 경희가 경미를 데리고 왔네. 경미야, 경미야.”


어머님이 부르는 소리에 경미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는 순간적으로 경미 손을 잡으며 반갑게 인사했다.


“네가 경미구나. 경미야 반가워. 그동안 얘기 많이 들었어. 너 부모님한테 엄청 잘한다며. 앞으로 부모님한테 아무것도 사주지 말고, 같이 놀러도 다니지 마. 너 때문에 내가 힘들어.”


내 앞에 서 있는 경미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키가 크고, 머리 길이가 짧고, 이목구미가 뚜렷하고, 명랑한 모습이었다. 나는 마침내 경미를 만나 진심으로 기뻤다.

이전 10화10. 그까짓 걸 가져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