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육체의 기쁨과 슬픔

by 유자와 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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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한낮, 아빠와 함께 일월 공원을 산책중이다. 아빠가 쓸쓸하게 말한다.


“붕어빵 마음껏 먹는 사람이 그렇게 부럽더라.”


그 당시 아빠는 급격한 과로로 다시 소화기능이 약해져 생야채나 밀가루 음식을 함부로 먹지 못했다. 장의 연동운동이 원활하지 못해 음식을 가려 먹어야 했다. 젊을 때는 그토록 튼튼한 아빠였는데 나이가 들수록 체구가 작아지며 살이 빠지신다. 자코메티의 조각상처럼 뼈만 남은 모습이다. 살이 빠지니 기운이 없고, 기운이 없으니 공원 한 바퀴 걷는 것도 쉽지 않다. 조깅을 하며 우리 곁을 지나는 사람을 바라보며 아빠는 감탄하듯 말한다.


“얼마나 건강하면 저렇게 뛸까?”


어느 날은 부모님 댁에 갔더니 아빠가 활짝 웃으며 말한다.


“아침에 바나나 같은 대변을 봤어. 엄마가 이제 먹고 싶은 빵 마음껏 먹어도 된대.”


아빠가 신나니 내 마음도 기쁘다. 빵돌이 아빠가 소화를 못해 고생하는 걸 지켜보던 엄마는 밀가루 음식 금지령을 내렸다. 바나나 똥을 확인한 후 금지령을 잠시 풀어준다. 아빠와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잽싸게 집 앞에 있는 꽈배기 집으로 달려간다. 우리는 꽈배기와 팥 도넛을 산 후 식탁에 앉아 입가에 설탕을 잔뜩 묻혀가며 먹는다.



공원 가는 길에 수원 시에서 운영하는 공유자전거 타조(Tazo)가 곳곳에 놓여 있다. 호기심 많은 아빠는 사용 방법을 묻는다. 나는 아빠가 공유자전거를 탈 수 있게 카드를 등록해 준다. 아빠는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일월공원을 한 바퀴 돈다.


“아빠 오랜만에 자전거 타니 어때?”

“기분이 엄청 좋아. 재밌어.”


아빠는 공유 전동 킥보드(일명 씽씽이)를 가리키며 묻는다.


“저것도 타보고 싶은데. 나도 탈 수 있을까?”

“그럼. 저것도 운전면허증 등록만 하면 되요. 한번 타보실래요?”


그러자 엄마가 나선다.


“여보. 그건 위험해요. 저렇게 빨리 가는데. 그러다 넘어지면 어쩌려고요. 우리 나이에 넘어지면 큰일나요. 절대 안돼요.”


아빠는 엄마 말에 수긍하며 씽씽이를 포기한다. 씽씽이 탄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부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아빠.

엄마는 소화기관은 튼튼하지만 관절이 약하다. 경사가 조금만 있어도 걸음이 느려지며 히말라야를 등산하듯 한발 한발 걸음을 뗀다. 엄마는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걷고 의자만 보이면 잠시 쉬었다 가자고 한다(신기하게 여행할 때는 다리 아픈 걸 잊는다). 부모님과 집 근처 왕송 호수를 걷다 흔들의자에 앉아 한참을 쉬고 있는데 엄마가 말한다.


“젊을 때 할머니들이 공원 의자에 하염없이 앉아 계신 거 보면서 얼마나 지루할까 생각했거든. 근데 내가 할머니 돼 보니까 조금만 걸어도 쉬고 싶네. 가만히 앉아 나무도 보고 사람도 구경하니 심심하지도 않고.”


엄마와 몇 번 운동 겸 산책을 하고 나니 공원이나 수목원에 갈 때마다 쉴 수 있는 의자가 곳곳에 놓여 있는지 확인부터 하게 된다.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오면 엄마 관절이 조금 아프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춥거나 눈이 오면 아빠가 운동하다 미끄러지면 안 되는데 하는 걱정이 생긴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며 애태우는 마음이 이런 걸까?


이른 아침이나 저녁에 부모님께 전화가 오면 무슨 일이 생겼나 가슴부터 뛰고, 목소리나 안색이 안 좋아 보이면 어디 아프신 건 아닌지 심장이 내려앉는다. 지인 부모님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으면 눈물부터 나고, 우리 부모님께는 비슷한 증상이 없는지 도서관으로 달려가 관련 책을 읽으며 증거를 찾으려 한다. 어른이 될 때까지 나를 먹이고 입히고 키워준 부모의 수고에 비하면 나는 그저 걱정하는 흉내만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시골 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일상을 담은 이야기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몸이 점점 약해지던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위해 벽에 거울을 걸려고 한다. 젊을 때는 한 손으로도 가능했던 사소한 일도 나이가 들면서 쉽지 않은 도전이 된다. 할아버지가 힘에 부쳐 부들부들 떠는 손으로 벽에 거울을 걸려고 애쓰는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아빠가 되새김질 하듯 천천히 음식을 씹어 드시는 모습을 보면, 할머니가 된 엄마가 걸음을 막 뗀 아기처럼 조심조심 골목길을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 눈물이 날 것 같다. 나를 목마 태우던 아빠와 내 등을 박박 밀어주던 엄마 모습이 아직도 선명한데 어느새 내가 그때의 부모님 나이가 되어 버렸다. 부모의 육체는 조금씩 작아져간다. 부모님께 딜런 토머스의 시를 들려주고 싶다.


‘저 편안한 밤 속으로 온순히 가지 마세요. 노년에는 날이 저물수록 더욱 타오르며 몸부림쳐야지요. 꺼져가는 빛을 향해 분노하고 분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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