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가까워지면 보이는 것들

by 유자와 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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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티셔츠에 구멍 난 걸 발견했다. 엄마에게 말하니 시간 날 때 꿰매겠다고 한다. 며칠이 지나도 티셔츠 구멍은 그대로다. 어느 날은 아빠 바지 밑단이 뜯어져 있는 걸 발견한다. 아빠에게 말하니 알겠다고 하고 끝이다. 몇 주가 지나도 엄마는 여전히 구멍 난 티셔츠를 입고 있다.


“1분만 시간 내서 꿰매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귀찮아? 줘봐. 내가 꿰맬게.”

“정말? 네가 바느질 해줄래? 바늘귀 꿰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게 뭐가 힘든데?”

“눈이 침침한데 실을 바늘귀에 넣는 게 쉽겠니. 넌 그게 보이니?”


아차차. 그 말을 듣자 와락 눈물이 났다. 바느질이 귀찮아서가 아니라 노안 때문에 실을 꿰매기 어려워 그런 거였구나. 그럼 꿰매달라고 부탁하면 되지 왜 말도 안하고. 몇 년 전 부모님이 천안에 사실 때도 단추가 떨어진 옷을 입고 계신 걸 본 적이 있었다. 그때도 단추가 떨어졌다고 지적만 했을 뿐(알고 있다고 했다)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가까워지니 보이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지저분한 안경 같은 거. 아빠가 컴퓨터를 할 때 쓰는 안경이 있다. 어느 날 책상 위에 놓인 안경알이 지저분해 보여 안경닦이로 꼼꼼히 닦았다. 아빠는 깨끗하게 닦인 안경을 쓰고 모니터를 보더니 말한다.


“화면이 훨씬 잘 보이네.”

“아빠. 안경은 하루에 한 번 닦는 거예요. 잊지 말고 닦으세요.”


아빠는 건성으로 대답한다. 실천은 잘 하지 않는다. 눈이 침침해져 지저분한 안경을 쓰나 깨끗한 안경을 쓰나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경알 닦는 걸 깜박하기도 하고. 그 뒤로 나는 집에 갈 때마다 집안 곳곳에 놓인 안경, 돋보기, 선글라스를 반짝 반짝 닦아 놓는다.


옷에 묻은 얼룩도 있다. 엄마가 운동할 때 입는 패딩 조끼에 얼룩이 잔뜩 묻어 있기에 손빨래 하면 금방 지워진다고 말하니 나중에 세탁기에 돌리겠다고 한다. 손빨래를 해야 깨끗하게 지워진다고 닦달한다. 엄마는 관절이 아파 손빨래는 힘들다고 대답한다. 이런, 관절은 생각도 못해봤네. 언젠가는 인터넷으로 새 수면 등을 고르고 있는 아빠를 보며 물었다.


“아빠, 전기세 아깝게 왜 거실에다 밤새 수면 등을 켜놔?”

“깜깜하면 밤에 화장실 가거나 물 마실 때 잘 안보여서 부딪칠 수 있거든.”


서울 용산에는 대한노인회서울시연합회 노인생애체험센터가 있다. 방문객은 특수 장비를 착용하여 직접 노인의 몸을 체험해 볼 수 있다. 간접적으로 노인의 육체를 느껴봄으로써 노인을 이해하고, 노인을 위한 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데 목적을 둔다. 참가자는 관절 부위에 억제대를 찬다. 손목과 발목에는 모래주머니를 찬다. 억지로 허리를 구부정하게 해주는 조끼를 입고 특수 안경과 귀마개까지 착용하면 일반적인 80대 노인의 육체가 된다.


노인이 되어 본 젊은 참가자들은 시야가 좁고 흐려짐에 따르는 불편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눈이 침침해지니 제품에 적힌 유통기한 숫자를 읽을 수 없다. 몸에 균형을 잡기 힘들고, 계단 경계가 잘 보이지 않아 한 걸음 내딛기도 힘들다고 한다. 몸이 무거워 신발을 신고 벗는 사소한 동작도 느려지진다. 파란 신호가 바뀌기 전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게 보통일이 아니라고도 말한다.


그동안 노화는 나와 상관없는 주제였다. 언젠가는 나도 부모님처럼 나이가 들 테지만 지금 당장은 생활에 아무 불편이 없으니 부모님이 일상에서 겪는 사소한 어려움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부모님 곁에 살게 되면서 노인이 되어가며 겪는 일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알아가고 있다. 부모님 옷을 바느질하고, 바늘귀마다 실을 미리 꿰어놓고, 얼룩이 생긴 옷을 손빨래 하고, 안경을 닦으며 생각한다.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내 기준으로만 부모님을 바라보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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