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멀리 떨어져 살던 시절 나와 동생은 엄마를 가끔 계모라고 불렀다. 동생이 군대에 입대한다고 할 때 엄마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얼마나 좋니. 국가가 세 끼 밥 다 줘. 월급도 줘. 몸도 튼튼해지고.”
보통 엄마들은 아들이 군대에 입대하거나, 첫 휴가를 나오거나, 손 편지를 받으면 눈물을 흘린다던데 우리 엄마는 보통 엄마가 아니었다. 최전방에 배치된 아들을 보러 면회 한 번 오지 않았다. 남들에게는 한없이 정이 넘치고 사랑을 베푸는 엄마가 나와 동생에게는 쌀쌀맞게 대할 때마다 우리는 속삭였다.
“우리 엄마는 계모가 맞나봐. 아빠한테 진지하게 물어볼까?”
부모님이 수원으로 이사를 오며 교류가 잦아졌다. 물리적으로 가까워지면 마음도 가까워진다는 걸 새삼 느낀다. 엄마를 관찰하다보니 엄마의 감정표현이 서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속정은 깊지만 그걸 밖으로 표현을 잘
못해 우리가 쌀쌀맞다고 느꼈던 거다. 어느 날 엄마는 지나가는 말로 말했다.
“네가 결혼한다고 할 때 마음이 일 년은 힘들었잖니.”
“뭐? 진짜?”
“너무 허전하고 괴로워서 힘들더라. 혼수도 같이 고르러 다니고 싶었는데 네가 혼자 다 결정하니 섭섭하기도 했고.”
“뭐? 진짜?”
“그래서 나중에 강은이가 결혼한다고 할 때는 겁이 덜컥 나더라. 또 힘들까봐. 그래서 지은 자매한테 기도 좀 해 달라고 부탁했어. 마음 힘들지 않도록. 다행히 6개월 지나니 좀 괜찮아지더라.”
“뭐? 진짜?”
나와 동생은 그런 엄마 마음을 전혀 몰랐다. 우리가 결혼하여 가정 꾸리는 걸 원하셨기에 ‘이제는 후련하시겠지’ 라고만 생각했다.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집에는 언제 오냐고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기에 우리를 보고 싶어 할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하였는지도 모른다. 깊이 숨겨져 있던 엄마 마음을 십 년이 훌쩍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동생에게 이 얘길 전해줬더니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에이, 설마.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고? 진짜?”
반면 아빠는 엄마보다 마음 속 표현을 잘 하는 편이다. 내성적이라 평소 말씀은 없지만 다정다감하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색하는 아빠 모습을 지켜본다.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하고도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며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 안 심심해?”
“응.”
“안 외로워?”
“응.”
그러고 나면 대화는 끝이다. 그런데 가끔 아빠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하나도 안 심심해. 그런데 집에 또 언제 온다고?”
아빠와 둘이 소파에 앉아 가만히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빠가 말한다.
“네가 가까이 살아 자주 오니 심심하지 않고 좋다.”
토요일 아침, 집에서 책이나 보며 쉬려 했는데 날이 하도 화창해서 남편과 물빛 수목원으로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부모님과도 함께 가려고 전화를 했다.
“아빠 오늘 뭐해?”
“그냥 있지.”
“그럼 날도 좋은데 이따가 산책이나 갈까?”
“안와도 돼. 주말인데 너희끼리 재밌게 놀아.”
“같이 가요, 아빠. 오후 2시까지 갈 테니 준비해 놓으세요. 엄마 옆에서 듣고 있죠?”
바쁘니 절대 오지 말라는 엄마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얼른 전화를 끊었다. 우리는 느긋하게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부모님 댁으로 갔다. 도착하니 12시 40분. 너무 일찍 와서 어쩌지 하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엄마 아빠는 외출복을 입은 채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