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닭볶음면
시댁에 다녀왔다. 시댁과 친정이 극명하게 다른 부분이 있다면 음식이다. 친정에 가면 야채와 과일 외에는 먹을 게 없다. 친정 부모님이 드시는 양이 적기도 하거니와 엄마가 요리를 썩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온다한들 특별한 반찬이 추가되는 일은 절대 없다. 따라서 친정에 가기 전엔 미리 든든하게 배를 채워두는 게 낫다. 반면 시댁은 온갖 먹거리가 풍성하다. 시댁 부모님이 워낙 잘 드시기도 하거니와 어머님이 요리를 끝내주게 잘하셔서 온갖 음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따라서 시댁에 가기 전엔 미리 배를 텅 비워두는 게 현명하다. 그래봤자 집으로 되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배가 너무 불러 간신히 숨만 쉬고 있을 게 뻔하지만.
집에 도착하니 저녁 8시.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났지만 배가 불러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 하지만 밤이 되면 아쉬워질지 모르니 간단하게라도 먹어야겠지. 아주 담백하거나 아주 매운 걸로 조금만 먹고 싶다고 하니 남편이 의기양양하게 외친다.
"그럼 불닭볶음면이 딱이겠네."
난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말하려 했는데... 10년이나 같이 살았는데도 텔레파시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남편은 신나게 냄비에 물을 넣은 후 가스불에 올려놓는다.
불닭볶음면은 삼양에서 2012년에 출시된 라면으로 매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워낙 매운 라면으로 소문이 나 있기에 해외에서도 불닭볶음면 먹기를 도전하는 유튜브 영상이 제법 올라온다고 한다. 표지 왼쪽에는 투블럭 머리모양을 한 암탉 한 마리가 입에서 불을 뿜고 있는데 이름은 호치다. 닭을 포함한 조류들은 매운 맛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 하니 호치는 라면을 먹고 매워서라기보다는 화가 나서 불을 내뿜고 있는 게 아닐까? 액상스프에는 국내산 닭고기가 0.82% 들어 있다고 적혀 있다. 호치는 왜 자신의 몸을 불에 볶느냐고 무언의 항변을 하는 게 아닐까? 국내산은 닭고기가 들어갔지만 수출용은 닭고기가 전혀 없는 비건식이라고 한다. 국내도 닭고기를 좀 빼주시면 안될까요?
라면 표지는 전체가 검은색이다. 우측 상단 뚝배기엔 시뻘건 라면이 담겨있고 그 아래 불닭볶음면 화끈한 매운맛! 이라 적혀 있는데 검은 바탕색과 대비되어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온다. 지금까지 다룬 라면 표지 디자인은 라면이 담긴 그릇은 실제 사진으로 찍혀 있고 나머지가 이미지로 표현되었는데 불닭볶음면은 표지 전체를 그래픽으로 작업한 것 같아 새롭다.
불닭볶음면은 물에 면을 끓여 물을 조금만 남기고 따라버린 후 액상스프와 후레이크를 넣어 비벼먹는 비빔면 방식이다. 라면이 완성되었다. 한번 먹어볼까? 호로록. 라면 국물을 조린 맛이 난다. 달콤하면서도 짜다. 생라면에 묻은 스프 맛 같기도 하다. 입안이 얼얼하긴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는 먹을 만하다. 단짠단짠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라면이다. 후레이크에 들어있는 김가루와 참깨가 라면 맛과 색을 살리는 데 한몫을 한다. 살짝 카레 맛과 향이 느껴져 살펴보니 원재료명에 보니 치킨카레맛베이스가 들어가 있다. 치킨과 카레라. 궁합이 좋군.
음식의 궁합을 생각하니 떡볶이와 쿨피스가 떠오른다. 매운 떡볶이를 먹을 때 쿨피스를 함께 먹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유에 들어 있는 카제인은 매운 맛 성분인 캡사이신을 녹인다고 한다. 쿨피스에는 탈지분유가 들어 있기에 떡볶이의 매운 맛을 감소시켜 주는 것이다. 매운 음식을 먹어 고통스러울 땐 매운 것과 전혀 다른 음식을 먹는 게 도움이 된다. 우유, 야채, 밥, 빵 등은 입안의 매운 맛을 제거하는 데 효과적인 음식이다. 맵다고 탄산음료를 마시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 되고 만다. 캡사이신 성분으로 민감해진 구강 점막을 탄산이 또 자극하여 통증이 오히려 심화되기 때문이다. 매운 음식을 먹다보면 매운 걸 완화시키기 위해 다른 걸 곁들여 먹기 때문에 금방 배가 불러온다.
매운 맛을 대비하여 오이를 잔뜩 썰어 놓았다. 라면 하나를 끓여 남편과 나눠먹고 있는데 오이는 이미 두 개째 먹고 있으니 그야말로 주객전도. 배가 부른 게 라면 때문인지 오이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