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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Jul 27. 2020

25. 둘이서 라면 하나 - 참깨라면

참깨라면

비 내리는 여름의 주말 오후, 타닥타닥 빗소리를 들으며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다면 감자전을 만들 시간이다. 비 + 여름 + 햇감자 + 휴일 은 감자전을 부치기 위한 최고의 조합이니까. 약속 하나 없는 주말 오후, 소파에 누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핑크 마티니의 ‘splendor in the grass'를 들으며 비바람에 흔들거리는 창밖의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역시 감자전이 떠오른다.


“남편, 감자전 해먹자.”



 요리는 자주 할수록 익숙해지기 때문에 살림 연차가 쌓일수록 맛과 시간 면에서 유리하다. 하지만 강판에 감자를 갈아야 하는 감자전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부지런히 해 먹는 게 낫다고 말하고 싶다. 오십견에 걸리고 관절이 아프고 팔 마디에 힘이 없어 강판에 감자를 가느니 차라리 안 먹겠다고 선언하는 날이 머지않아 닥칠 터이니. 믹서기에 갈면 되지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 물으신다면 손으로 강판에 박박 간 감자전을 꼭 한 번 드셔보시고 다시 질문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나물 무침만 손맛이 중요한 게 아니다. 감자전이야말로 전적으로 손맛이 맛을 좌우한다. 우리 엄마는 감자전을 끔찍하게 좋아하는 아빠를 위해 햇감자가 나오면 감자를 믹서기에 갈아 감자전을 부친다. 엄마도 아빠도 감자를 직접 강판에 갈기에는 힘이 부치기에 믹서기의 힘을 빌리는 것이지만 나는 매번 감자전을 해먹었다는 아빠 목소리에 숨겨진 아쉬움을 포착한다.


 나보다 튼튼한 남편 손에 햇감자 네 알과 강판을 쥐어준다. 남편은 비장한 표정으로 감자를 간다. 감자를 다 갈면 감자 전분이 생기는데 고인 물만 살짝 따라 버린다. 감자에 부침 가루 두 숟가락(순수하게 감자만 부쳐도 된다)과 소금을 조금 넣고 청양고추를 쫑쫑 썰어 넣는다. 감자를 갈고 남은 감자 4조각은 쫑쫑 썰어 감자전 부칠 때 모서리에 놓고 함께 구우면 된다. 잘 달궈진 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잠시 기다린다. 기름 온도가 올라가면 국자로 감자를 듬뿍 떠서 팬에 올린 후 평평하게 펴 준다. 실패없이 뒤집으려면 감자전 크기는 둥그런 팬의 80%만 채우는 것이 좋다. 이제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다. 뒤집고 싶은 마음이 슬슬 들 때가 오면 좀 더 참아야 한다. 감자전이 지글지글 익는 모습을 들여다보다 남편이 말한다.


“참깨라면이랑 같이 먹으면 잘 어울리겠는걸.”

“흠. 그러려나?”



 참깨라면은 1994년 오뚜기에서 처음 출시되었는데 보통의 라면답지 않게 고소하여 옛날부터 좋아했던 라면이다. 참깨라면이라면 온유하고 담담한 감자전 맛을 해칠 것 같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신나게 참깨라면을 끓이기 시작한다. 노란색 라면 표지가 참깨라면의 고소함을 물씬 살려준다. 초록색으로 중앙에 쓰여진 참깨 라는 글자가 참으로 참깨스럽게 생겼다. 단정하면서도 귀엽다는 말이다. 라면 그릇 위에는 ‘계란이 들어있어요!’ 라고 적혀 있는데 진짜 계란은 아니고 압축된 계란 블록이 들어있다. 이름은 참깨라면인데 어째 주인공인 참깨보다 계란 비중이 더 큰 느낌이다. 그럼 참깨 비중은 얼마나 될까? 면발에는 참깨 0.12%, 스프에 참깨 2.2%가 들어 있다고 적혀 있다. 나쁘진 않군. 다 끓인 후 넣는 유성스프는 참기름과 고추기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고소하면서도 매운맛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


 감자전도 노릇노릇하게 익었고 라면도 다 끓었다. 이제 맛을 볼 시간. 감자전을 한 입 먹어본다. 쫀득쫀득하고 고소한 감자의 맛. 순수하고 담백한 감자의 맛이 입안에 가득하다. 라면을 한 입 먹어본다. 고소하면서도 매콤한 라면의 맛, 계란지단과 참깨의 맛이 느껴진다. 와. 정말 둘이 잘 어울리는 걸. 참깨라면은 계란 블럭과 조미 참기름 때문에 밥을 말아먹을 때 가장 맛있는 라면으로 손꼽히기도 한다지만 감자전과도 잘 어울린다. 감자전과 참깨라면을 먹으며 빗소리를 듣고 있자니 기쁨이 참깨처럼 타다닥 타닥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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